AI로 노랫말 입힌 조선왕실 행차음악 감상해볼까

국립국악원, 내달 13~14일 '행악과 보허자' 공연
이건회 예술감독 "기술 접목시켜 이 시대 관객과 함께 즐기고자 마련"

국립국악원 정악단원들이 25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정악단 연습실에서 열린 '행악과 보허자-하늘과 땅의 걸음' 제작발표회에서 공연 일부를 시연하고 있다. /국립국악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창작한 가사로 만들어진 조선왕실 행차음악이 관객과 만난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은 다음 달 13∼14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정기공연 '행악과 보허자-하늘과 땅의 걸음'을 선보인다. 왕의 행차를 따라 흐르는 웅장한 선율과 궁중 의례 속에 깃든 고고한 울림을 전하는 무대다.

행악은 왕실이 행차하거나 관찰사·사신 등의 행렬에서 연주한 곡이다. 국립국악원은 2016년 이후 6년 만에 행악을 주제로 공연한다.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보허자(步虛子)는 왕이 행차를 마치고 돌아온 뒤 베푸는 잔치에서 연주된 궁중 연례악의 하나다. 조선에서는 임금의 만수무강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의미로 연주됐다. 보허자는 '허공을 걷는 자'라는 의미인데, 신선들이 높은 직위의 상선을 알현하며 그의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모습에서 유래했다.

보허자는 원래 1∼3악장 중 1장과 2장에만 가사가 붙어 있고 3장은 선율만 전해진다. 국립국악원은 이번 공연을 위해 AI를 활용해 보허자의 3장 가사를 만들어냈다. 전통의 형식은 유지하면서 새로운 악기 편성과 AI 등 창작 기술을 접목해 궁중 예술작품의 레퍼토리를 넓히고자 하는 것이 이번 공연의 의도다.

국립국악원은 박진형 아트플랫폼 유연 대표와 서울대 국악과 석박사, 포항공과대학교 AI 박사 등과 함께 작업했다. 효명세자의 한시 350편, 정약용과 김정희의 한시 100여 편을 AI에 학습시킨 뒤 이를 바탕으로 3장의 노랫말을 지어내게 했다.

이건회 정악단 예술감독은 25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정악단 연습실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AI가 전 세계적으로 이슈이고 우리 음악도 전통에 기반한 AI 기술을 이용하면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면서 "이번 공연은 새로운 우리 시대에 맞는 정악의 확장"이라고 설명했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원들이 25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정악단 연습실에서 열린 '행악과 보허자-하늘과 땅의 걸음' 제작발표회에서 공연 일부를 시연하고 있다. /국립국악원

이번 공연은 왕이 궁을 나설 때 연주하는 '출궁악', 행차 중 연주하는 '행악', 궁으로 돌아올 때의 '환궁악', 환궁 이후 베푸는 연향(잔치)에서의 '연례악' 순서로 진행된다. 특히 이번 무대는 관객의 이해와 흥미를 높이기 위해 연출적 요소를 더했다. 출궁과 환궁, 왕과 백성의 조우 등의 서사적 요소를 도입했다. 또한 왕의 역할을 맡은 무용수가 무대에 올라 행차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이 예술감독은 "70여명의 가객에 우리 연주단을 포함해 100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 무대에 올라 웅장한 공연을 보여줄 것"이라며 "궁중음악의 소중한 자원들에 기술과 연출적 요소를 접목시켜 이 시대 관객들과 함께 즐기고자 이번 공연을 마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