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생산체계 활용해 수요증가 대응
2분기부터 켄터키 1공장 생산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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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이 2011년 모두가 반대하던 적자투성이 현대 하이닉스 인수를 결정할 때도 이랬을까. 끝내 그룹의 심장으로 거듭난 반도체 사업이다. 그룹 알짜 재원을 쏟아부어 키워가는 SK온에 대한 투자가, 무모하기보단 그 끝이 기대되는 배경이다.
2023년, 팽창하던 글로벌 전기차가 돌연 브레이크를 밟았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이전 저항하는 소위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의 도래다. SK온 분할설립 당시 세웠던 투자 자금 조달 시나리오가 틀어지게 됐다. 장기화 전망이 쏟아졌다. 고(GO)냐 스톱(STOP)이냐. 갈림길에서 SK의 미래를 위한 결단이 내려졌다.
최태원 회장은 사촌 동생 최창원 부회장에게 그룹 전체를 컨트롤할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지휘봉을 건넸고 대대적 리밸런싱이 단행됐다. 속전속결, 그룹은 SK온에 안정적 현금창출력을 갖춘 계열사들을 붙여 체력을 보강했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트레이딩, 터미널 사업까지 더한 SK온은 이제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과의 치킨게임에서 승부할 체력이 주어졌다.
전기차 급성장, 그리고 '캐즘'까지 드라마틱한 업황의 변화 속에서도 SK온은 3년간 묵묵히 20조원 넘게 들여 공장을 지어왔고 이제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원료 뿐 아니라 어디의 공장에서 만들어졌는지 꼼꼼히 따져 보조금을 쥐어주는 미국의 강력한 자국산업 보호주의에 발맞춰, 높아가는 비관세 장벽 허들을 넘었다. 그렇게 SK온은 올해 포드 합작사 블루오벌SK 켄터키 1공장을 본격 가동, 수익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19일 산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오는 4월 2일 수입되는 자동차 등에 대해 25% 정도의 고관세를 예고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에 미국 투자할 시간을 주겠다고도 전했다. 관세 발효 전까지 미국 현지에 생산 시설을 마련할 수 있도록 여유를 허용하겠다는 의미다.
사실상 북미에 생산 체제를 미리 확보해 둔 기업들이 대응 시간을 벌게 된 셈이다. SK온 또한 기존 조지아 공장을 비롯해 현지 생산체계를 적극 활용하며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완성차업체들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특히 조지아 공장에서는 현대차그룹향 배터리 생산을 주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 수익 확대가 전망된다.
결국 SK온이 그간 꿋꿋이 진행했던 북미 투자가 더 큰 성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SK온은 전기차 수요가 정점을 찍었던 2021년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 설립돼 공격적으로 증설 투자를 이어갔다. 당초 시나리오는 2022년쯤 흑자전환에 성공해 자체적으로 투자 자금을 확보하거나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단 구상이었으나, 예상보다 빨리 덮친 전기차 캐즘이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 모회사 SK이노베이션도 석유화학 업황 부진 등으로 수익성이 나빠지며, SK그룹 차원에서의 구조 개편이 본격화됐다. 투자는 주력 사업으로 집중시키고, 재무 안정을 위해 계열사들을 합쳐 나가면서다. 이 과정에서 SK온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TI), SK엔텀과 합병했다. 주로 석유제품 글로벌 거래를 맡던 SKTI와 이를 저장하는 터미널을 운영하는 SK엔텀은 안정적인 현금 창출력을 갖췄다.
SK온은 3사 합병으로 매출은 연간 62조원대로 늘고, 자산도 40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트레이딩 사업 노하우를 기반으로 원료 구매 비용 절감 등의 시너지가 기대된다는 평가다.
또한 올해로 대규모 투자가 종료되면서 수익성이 제고될 전망이다. 포드 합작사인 블루오벌SK와 현대차 합작사 등에 대한 투자가 완료되면서다. 올해 예정한 설비투자(CAPEX)는 3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7조5000억원에서 절반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블루오벌SK 테네시 공장 가동은 내년으로 미뤄졌지만 이에 따른 추가 투자비 소요는 없을 예정이다.
또 2분기 쯤 블루오벌SK 켄터키 1공장은 상업가동을 시작, 포드향 배터리 공급이 본격화되며 수익성 개선이 기대된다. 현대차그룹향 배터리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는 북미 지역 중심으로 성장세가 기대되는 만큼 두 자릿수 수준 판매량이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SK온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했지만 당장 IRA(인플레이션방지법) 등에 대한 변화 조짐은 없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현지 생산체계를 갖췄다는 점은 이점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