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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의도대로 흘러간 미러 협상...우크라, 제2 아프간 위험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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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5. 02. 19. 11:38

피침략국 우크라 빠진 미러 종전협상...'침략국' 러에 유리
'전쟁' 대신 '분쟁' 사용
러와 공관운영 정상화·미러 경제협력
21년 외무장관 라브로프 "미, 러 입장 이해"
종전 후 우크라, 제2 아프간 가능성
RUSSIAN-AMERICAN MEETING SAUDI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오른쪽)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디리야궁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UPI·연합뉴스
아시아투데이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기자 =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진행된 미국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은 러시아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내년 11월 실시되는 중간선거 등을 겨냥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촘촘하고 강력한 안전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서둘러 종전 협상을 마무리할 경우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체결해 아프가니스탄의 함락을 초래한 미국과 탈레반 간 평화 협정 '2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

◇ 피침략국 우크라 빠진 미·러 종전 협상...'침략국' 러에 유리한 합의
'전쟁' 대신 '분쟁' 사용...고립 러와 공관 운영 정상화, 종전 후 미·러 경제 협력 강조

피침략국인 우크라이나의 참여를 배제한 채 4시간 30분간 진행된 이날 협상에서 미·러는 △ 양국 외교 공관 운영 정상화를 위한 협의체 설치 △ 종전 후 미·러 경제 및 지정학적 이익을 위한 협력 토대 마련 △ 지속 가능하며 모두 수용 가능한 방식의 우크라이나 '분쟁(conflict)' 종식을 위한 고위급 팀 지명 △ 협상 프로세스 적시·생산적 진행을 위해 미·러 참여 지속 등 4개 항목에 합의했다고 미국 국무부가 밝혔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후 고립됐던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종전 후 사실상 러시아의 경제 복구를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침략국에 대한 '책임'보다는 '보상'에 중점을 둔 것으로 해석된다. 우크라이나 '전쟁(war)'을 '분쟁'이라고 규정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이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RUSSIAN-AMERICAN MEETING SAUDI
미국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왼쪽부터)·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부 장관(오른쪽부터)·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담당보좌관·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국부펀드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보이지 않음)이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디리야궁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가운데 왼쪽) 등이 참여하고 있다./UPI·연합뉴스
◇ 미국통 러 펀드 대표, 미국과 경제 협력 논의...21년 외무장관 라브로프 "미, 러 입장 잘 이해"
미·러, 서방의 대러 제재 완화에 공감한 듯...우크라 평화유지군 놓고 라브로프-트럼프 이견

미국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컨설팅업체 매켄지앤드컴퍼니에서 근무하다가 2011년부터 러시아 국부펀드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를 맡고 있는 키릴 드미트리예프가 이날 협상에 참여한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대가로 트럼프 행정부가 중시하는 러시아산 석유 등 자원 이권을 제공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드미트리예프 대표는 미국 측과 에너지를 포함한 미래 경제 협력을 논의했다며 "2~3개월 이내에 진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주유엔 러시아대사를 거쳐 2004년 3월부터 21년째 외무부 장관을 맡고 있는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양국의 상대국 주재 대사가 신속히 임명될 것이라며 "미국 측이 우리의 입장을 더 잘 이해했다고 믿을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서방의 제재를 겨냥한 듯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 협력 발전의 인위적 장벽을 제거하는 데 대한 (미국 측의) 강력한 관심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시도가 '현 상황'의 주요인 중 하나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다고 했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 회원국의 평화유지군 파병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평화유지군' 불용 입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과 차이가 난다.

그는 이날 사저인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유럽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고, 나는 전적으로 찬성"이라며 "유럽의 관점에서 보자면 군대를 주둔하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며 평화유지군에 미군이 포함돼야 한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요청은 거절했다.

Turkey Ukraine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회담한 후 공동 기자회견장에 도착하고 있다./AP·연합뉴스
◇ 루비오 미 국무, 대러 제재 완화 강조에 EU "강력한 카드 내주면 안 돼"
프랑스, 19일 2차 확대 정상회의 개최

쿠바계로 2011년부터 공화당 상원의원(플로리다주)을 지낸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유럽연합(EU)의 발발을 초래했다.

루비오 장관은 회담 후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모든 당사자의 '양보'가 필요하다며 "EU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 시점에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를 겨냥할 수 있는 추가 조처를 준비 중"이라며 16차 제재를 예고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이날 오후 공개된 EU 전문매체 '유락티브'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에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강력한 카드를 내주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제재 완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EU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주요 7개국(G7)·호주와 함께 러시아 제재를 주도, 자국 기관들이 보관해 온 러시아 중앙은행 보유 외환 2820억달러(406조5000억원)를 동결하고, 그 자산의 수익을 활용해 대출 형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17일 우크라이나와 유럽 안보에 대한 비공식 회의를 개최했던 프랑스는 19일 2차 회의를 열기로 하고, 1차 때 참석하지 않은 유럽 국가들과 나토 회원국인 캐나다도 초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 젤렌스키, 사우디 방문 전격 연기...미·러 종전 협상 '정당성' 부여 거부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튀르키예 앙카라를 방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회담한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EU·튀르키예·영국 등 유럽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6일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데 이어 튀르키예를 찾았는데, 19일 예정됐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다음달 10일로 돌연 연기했다.

미·러 종전 협상 다음날 사우디를 방문할 경우 그 협상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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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 트럼프-푸틴 정상회담 시기, 젤렌스키 참여 여부 주목...푸틴, 젤렌스키 임기 2024년 5월 끝나
트럼프 "젤렌스키 지지율 4%"...종전 합의 후 우크라 선거서 친러 정부 탄생시, 제2 아프간 사태

트럼프 행정부는 푸틴 정권과 논의를 지속하면서도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와의 이견을 좁히는 협상을 진행한 후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간 정상회담을 통해 '담판'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루비오 장관이 이날 사우디 협상 직후 프랑스·독일·이탈리아·영국 외무장관과 칼라스 고위대표에게 회담 결과를 설명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미·러 정상회담 시기와 젤렌스키 대통령의 참여 여부가 관심거리다.

이날 사우디 협상에 참여한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담당보좌관은 정상회담의 조건에 관한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며 "특정 날짜를 말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라며 2월 안에 푸틴과의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관련, 푸틴이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했지만, 푸틴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2024년 5월 임기가 끝난 후에도 재임하고 있다며 협상 상대로서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우크라이나에서는 선거가 치러지지 않았고, 사실상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라며 "말하기 싫지만, 우크라이나 정상은 지지율이 4%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의 이러한 시각은 종전 협상 타결 후 실시된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패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며 자칫 친러 정부가 들어설 경우 제2의 아프간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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