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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사태 초기에 '폭동' '국헌문란' '내란' 프레임에 동원된 두 개의 폭로성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이 커졌다. 당시 국정원 1차장 홍장원의 "싹 다 잡아들여", 특수전사령관 곽종근의 "의원들 끌어내" 발언이다. 윤 대통령이 전화로 지시했다고 둘이 주장한 이 말은 '대통령 탄핵'이란 커다란 산을 쌓는 첫 삽질이었다. 수사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달려들었고, 내란죄 수사권도 없는 공수처가 대통령 체포 작전을 펼쳤다. 법원 쇼핑으로 선택된 사법부는 영장을 내줬고, 대면조사 한 번 못 한 검찰은 서둘러 구속 기소했다. 국회는 청문회를 연다고 법석이고, 헌재는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이 심리에 속도를 낸다.
"싹 다 잡아들여"의 대상엔 국회의장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뿐 아니라 당시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도 포함됐다. 야권과 좌파 매체들은 "야당 말살 획책"이라며 지지층을 끌어모았다. 여권은 둘로 쪼개졌다. 직전까지 대통령 탄핵 찬반 여부를 놓고 오락가락하던 한동훈은 이 의혹 제기를 계기로 완전히 등을 돌렸다. 윤 대통령 말대로 '공작'이었다면 그들로선 완벽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또 "의원들 끌어내"는 민주정치 부정 프레임에 이용됐다. 본회의장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강제로 해산시켜서 헌법에 규정된 비상계엄령 해체를 의결 못 하도록 시도했다는 주장이다.
사태 초기엔 "싹 다 잡아들여"와 "의원들 끌어내"가 윤 대통령이 직접 한 말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피청구인 윤 대통령과 증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홍장원과 곽종근, 전 수방사령관 이진우, 전 방첩사령관 여인형, 707 특임단장 김현태 등이 줄줄이 출석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정형식 헌법재판관 등의 송곳 심문으로 홍장원과 곽종근의 초기 진술 신빙성이 깨지기 시작했다. 언론의 추가 취재로 두 사람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았을 수 있다는 정황도 계속 드러난다. "싹 다 잡아들여"의 목적어는 '정치인'이 아니라 '간첩'이었음은 사실상 확인됐다. 홍장원이 여인형의 말을 듣고 작성했다는 체포 대상자 명단은 3자에 의해서 오염됐을 확률이 높아졌다. 또 "싹 다 잡아들여"의 목적어는 '의원'이 아니라 '인원'이었다고 곽종근이 실토했다. 윤 대통령이 '인원'이라고 한 걸 자기가 '의원'이라고 해석했다는데, 두 달 동안 그런 해명을 하지 않다가 정형식 재판관의 추궁에 자백했다.
더 심각한 진술 오염 정황이 있는 건 두 사람이 결정적 발언을 할 때마다 야당 국회의원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홍장원은 체포 대상 명단을 적은 메모지를 박선원에게 전달했다. 박선원은 문재인 정부 국정원에서 기조실장과 1차장을 지냈다. 홍장원은 국정원에서 잔뼈가 굵었고 역시 1차장 출신인데, 계엄 사태 초기에 이재명 대표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해직됐다고 한다. 정보기관의 '공작' 냄새가 물씬 풍긴다.
곽종근은 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해 12월 6일 민주당 의원 김병주의 유튜브 채널에 박선원과 같이 출연했다. 얼떨떨한 상태였던 곽종근은 윤 대통령 지시의 목적어가 '인원' '요원'이라고 했다가, '의원 아니냐'는 김병주의 유도 발언에 "예"라고 했다. 이후 목적어를 '의원'이라고 우기던 곽종근은 민주당 의원 박범계를 만난 뒤 "대통령이 문을 부수고라도 들어가서 의원을 끌어내라고 했다"고 수위를 높였다. 김병주는 군 시절 곽종근의 직속상관이었고, 박범계는 곽종근에게 '공익신고자' 신분 보장을 약속한 걸로 확인됐다. 회유 의혹이 나올만하다.
이제 내란 프레임의 두 기둥에 균열이 생겼다, 탄핵 정국에 불을 지핀 두 가지 발언의 신빙성이 흔들리고 있다. 당장 헌재의 탄핵 심리를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지금도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검찰의 공소장에 근거해 심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공소장의 신뢰성에도 금이 가고 있다. 검찰의 윤 대통령 공소장엔 '도끼로 문을 부숴서라도'라고 돼 있는데 곽종근은 '도끼'란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누가 '도끼' 말을 검찰에 했는지 헌재에서 확인해야 한다.
김용현 공소장엔 윤 대통령이 이진우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는, 사실이라면 무시무시한 내용이 들어 있다.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국회가 해제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진우는 헌재에서 "내가 하지 않은 말이 검찰 공소장에 상당수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헌재가 싹 다 불러 신문해야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파면해야 할지, 대선을 다시 치러야 할지를 결정하는 헌재 심리가 검찰의 공소장을 근거로 진행되는 건 막아야 한다. 꼭 그렇게 하겠다면 검찰이 참고인으로 불러서 진술 내용을 공소장에 적은 사람들(주로 군 중간 지휘관으로 추정)을 헌재가 다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 아니면 헌법재판소법 51조에 규정된 대로 형사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헌재 심리를 멈춰야 한다. "싹 다 잡아들여"와 "의원들 끌어내"는 단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다. 지금 따지는 건 '내란 미수' 여부인데, 그렇다면 당시 관련자들의 진술을 몽땅 들어야 한다. 헌재가 뭔가에 쫓기는 인상을 주면서 '거짓말로 쌓은 큰 산'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린다면 분노한 민심에 부닥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