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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계엄도 제대로 못하는데 내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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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2. 16. 18:00

이정훈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정훈TV 대표
이정훈 선배
이정훈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정훈TV 대표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로 12·3 계엄으로 조성됐던 '정치 불안' 하나가 해소됐다. 계엄 선포와 해제로 권위를 잃은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를 한덕수 총리가 받아, 통수권을 다시 가동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윤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심판에서 인용돼 파면되거나 기각돼 부활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통수체제를 점검해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12·3 계엄 선포를 내란으로 보고 탄핵소추했지만 필자는 다른 판단을 한다. 법으로 보장돼 있는 계엄보다 하기 어려운 게 '불법'인 내란이다. 계엄도 제대로 못한 것이 우리의 통수체제였는데 어떻게 내란을 일으키겠는가. 내란은 통수권자에 대한 도전인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켰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

12·3 전의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26으로 선포됐는데, 1981년 1월 24일 이 계엄이 해제됐다. 현역 최고참인 김명수 합참의장이 85학번(해사 43기)이라는 데 주목하자. 1981년 1월, 85학번은 중3 진급을 앞둔 중2였다. 대부분의 현역은 초등생 때도 계엄을 구경하지 못한 것이다. 극히 일부만 초급장교이던 1996년 강릉 잠수함 사건으로 위수령을 겪었는데, 이를 기억하는 이는 극소수일 것이다.

계엄을 법으로 보장한 것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을 당하면 계엄을 선포해 대응해야 한다. 12월 3일의 대한민국이 위기였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것이다. 윤 대통령은 위기로 보고 계엄을 발령했는데. 이 계엄이 제대로 발동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가동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통수권자와 국민 그리고 우리 군의 '오만' 때문으로 본다. 우리는 북한이 핵을 갖고 있지만 미국이 있기에 그 핵은 쓸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북한과 맞붙으면 이길 수 있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진 것이 인민군의 도발로 위기가 조성되면 우리의 안전을 위해 '계엄은 해야 한다'는 정도의 인식이었다.
그런데 계엄은 독재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으니 피하고자 했다. 때문에 군정권이 아니라 군령권이 있는 합참의 직무로 계엄을 선정하고 계엄과를 설치했다. 그렇다면 합참은 계엄작전을 만들고 이를 익히고 발전시키는 연습을 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 했으면 야당과 좌파가 시비를 걸 것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 군에서 가장 큰 작전사급 부대인 지작사와 해작사·공작사는 데프콘 3 이상이면 미군과 연합구성군사령부를 이루어 한미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때 합참은 육군의 2작사령부를 동원해 계엄작전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시가 되면 작전사급 부대를 지휘하지 못하는 합참이 작전사급 부대를 동원해 인민군과 싸우는 호국훈련은 연습해도, 2작사를 동원한 계엄작전은 만들지도 연습하지도 않았다.

자주국방과 언젠가 가져와야 할 작전통제를 위해 합참이 호군훈련 등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유사시 합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계엄작전을 발전시키지 않은 것은 큰 문제이다. 12·3 계엄에 2작사를 동원한 흔적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비상대책에 구멍이 많다는 증거이다.

이번 계엄에는 '친위부대'적 성격이 있는 방첩사·특전사·수방사 등이 동원됐다. 과거의 계엄에 이들이 주로 동원됐었다. 12·3계엄도 이들만 동원됐다는 것도 지금에 필요한 계엄작전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는 반증이다. 우리 통수체제와 군은 미국만 믿고 심각한 '근자감'에 빠져 있다.

12·3 계엄 후 김병주 민주당 의원의 유튜브에 한 사령관이 박선원 의원과 같이 출연해 자신이 동원됐던 계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게 했다. 기능 사령관 이하의 장교는 명령에 죽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라고 국군을 키워왔다는데, 이들은 명령에 대한 판단을 했다. 대령이 길거리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더 참담한 생각을 갖게 했다.

5·16과 12·12는 6·25전쟁과 월남전 참전 세력이 주도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실전을 통해 '사생관'을 갖고 '명령대로'를 수용한 이들이었기에, 이후의 국정 참여에서도 성공했다. 2003년 이라크전 이후 우리는 실전 파병을 회피하는 나라가 됐다. 공병이나 의무부대를 보내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북의 김정은이 1만 명이 넘는 폭풍군단을 러시아에 파병했다. 덕분에 러시아로부터 석유는 물론이고 무기 기술을 받아 경제와 무력을 증진시키고 있다. 전쟁 경험을 쌓은 이들이 돌아오면 인민군의 기세는 등등해질 것이다. 계엄도 바로 못하는 국군은 그런 '인민군의 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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