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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 미만 벌금형이면 "1심 재판부 판단을 존중한다. 2심에서 무죄를 받아내겠다"였을 터다. 반면 국회의원직을 포함한 모든 게 날아가고 당에는 434억원 국고 반환의 부담을 지우는 피선거권 박탈형이 나왔을 경우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상이 어려웠다. 사법 체계를 부정하면 안 될 위치의 정치 지도자가 제시해야 할 정답이 있기는 하다. '매우 아쉬우나 재판부 판결을 존중하며 항소심에서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취지의 말이다.
그보다 더 신뢰를 주려면 1심 선고 법정에 들어가기 전 확실한 메시지를 냈어야 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존중하겠으며 유죄든 무죄든 그에 따른 혼란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뒤엉켜 함성을 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얼굴에 웃음기를 띠며 아무 말 없이 법정으로 들어갔다,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뒤 법정 밖으로 나온 이 대표는 입술을 꽉 깨물며 일성을 날렸다. "현실의 법정은 아직 두 번 더 남아 있고,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 정치적 광기(狂氣)가 감돌았다. 다음 날 장외집회에 나가선 지지자들에게 건재를 알리며 선동했다. "이재명이 팔팔하게 살아서 인사드린다. 이재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 정치적 살기(殺氣)가 서려 있다.
첫 유죄 선고에 대한 이 대표의 대응은 향후 정국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웠다. '현실의 법정'이 두 번 남아 있다고 했지만 '법원 존중' 표현은 없었다. 오히려 강성 지지자들은 1심 판사들에게 좌표를 찍어 '탄핵'을 외친다. 선거법 위반 사건 2심과 3심에서도 유죄가 인정된다고 해서 그걸 받아들여 정치구호를 철회할 것 같지 않다. 더구나 선거법은 시작이다. 오는 25일 위증교사 1심 선고가 이어지고 대북송금, 대장동 등 사건의 심리도 빨라지고 있다. 현재 기소된 4건의 재판에서 1, 2, 3심을 합치면 모두 12번의 선고가 예정돼 있는데, 이제 겨우 하나가 나왔을 뿐이다.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이 곧 기소되면 남은 선고가 14번으로 늘어난다. 이 대표 선고 결과에 따른 사회적 갈등, 충돌이 최소 14번 예고된 셈이다. 정자동 개발 특혜, 대선 비선 캠프 운용, 재판거래 의혹을 비롯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들도 잠재적 시한폭탄이다.
이 대표가 '민심과 역사의 법정'을 입에 올린 건 현실의 법정에서 도출된 유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한명숙 전 총리가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대법원 확정판결로 구속되면서 남긴 말이 "나는 역사의 법정에선 무죄다"였다. 국민적 합의인 실정법 체계를 무시하는 비민주적인 발상이다. 이 대표는 여기다 '민심의 법정'이란 말까지 붙였다. 광화문 광장에 불러 모은 열성 지지자의 구호를 '민심'으로 포장한 왜곡 선동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탄생한 문재인 정부 때 김명수 대법원장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재판을 강조한 적 있다. 이후 우파 정권 출신들에 대한 대대적인 '적폐 몰이'가 시작됐는데, 그때의 국민 눈높이는 좌파 맞춤형이었다. 지금 이 대표가 말하는 '민심'은 좌파 중에서도 극히 일부 극성 지지층의 심중일 뿐이다. 그들이 거리의 법정을 만들어 '이재명 무죄'를 스스로 세뇌하고 당사자가 그걸 부추긴다.
다시 복기하자. 12번의 예정된 선고 중 하나가 나오기까지 사회적 에너지가 얼마나 소모됐었나. 제1야당은 대부분의 정치 일정을 당 대표의 사법 일정에 맞추느라 사법의 정치화를 일상으로 만들었다. 나라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사회적 논쟁은 '이재명 사법 위기' 해석에 뒤덮였다.
주말마다 광장엔 '이재명 구속'과 '이재명 수호' 구호가 뒤섞여서 울려 퍼졌다. 대통령 꿈을 꾸는 유력 정치인이 2, 3일마다 법원에 재판받으러 가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뉴스를 장식한다. 이제 어린아이들도 '이재명' 하면 '수사' '재판'을 떠올린다. 지독한 피로감 속에 사회적 갈등의 골은 점차 깊게 파이고 있다.
이 대표가 지지자들을 향해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한 말은 섬뜩하다. 지금까지 방탄을 위해 했던 일들을 멈추지 않겠다는 선언이기에 그렇다. 제1야당의 당력을 대표 방탄에 쏟으며, 의회 권력으로 검찰과 법원을 겁박하고, 거리로 뛰쳐나가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일을 지속하겠다는 말이다. 남아 있는 선고가 다 끝날 때까지 무한반복 하겠다는 광기와 살기다. 이 대표가 스스로 질주를 멈출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사태를 정리할 유일한 도구를 쥐고 있는 쪽은 '현실의 법정'을 갖고 있는 사법부다. 선거법 선고 일정은 6·3·3(1심 6개월, 2·3심 각 3개월)이 원칙이다. 1심은 2년 넘게 끌었지만 2, 3심이라도 시간을 지켜 내년 봄엔 유죄든 무죄든 확정하는 길밖에 없다.
송국건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