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통계가 '물가안정' 가리킨다…최근 두 달째 '1%대'
통계상으로는 고공비행하던 물가는 내려앉았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4.69로 작년 같은 달보다 1.3% 상승하며 3년 9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를 밑도는 수치다.
정부는 이 같은 지표를 '물가 안정'이라고 정의했다. 이날 소비자물가지수 발표와 함께 기획재정부는 "45개월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로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고, 한국은행은 "물가상승률이 크게 둔화됐다. 물가안정의 기반이 견고해지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물가지표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 상승률도 1.8%로 '1%대'를 기록했다. 이른바 '밥상 물가'로 불리는 신선식품지수도 1.6% 상승률을 기록하며 1%대로 내려왔다.
◇시중에선 "물가 안정이 웬 말"…'상승분 누적'에 부담 여전
정작 시중에선 "물가 때문에 죽을 지경인데 안정이 웬 말이냐"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물가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반응을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물가지표다", "물가가 안 오른 것만 골라서 조사했나", "대표적인 통계조작이네" 등의 반응이 대세를 이룬다.
그럼 통계로 잡히는 물가와 체감물가의 괴리는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우선 최근 3년 간 누적된 물가 상승분을 고려하면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 수준 자체는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0.5% 수준이던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2.5%, 2022년 5.1%, 2023년 3.5%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현재 물가상승률이 1%대로 내려앉았지만, 쌓일 대로 쌓인 물가부담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2년 사이 5000원에서 7000원으로 크게 뛰었는데, 이듬해 물가가 안정돼 7500원으로 소폭 오르더라도 소비자들이 여전히 '짜장면 비싸네'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시장 전문가와 당국자들은 "적어도 2년간 물가 안정세가 지속돼야 물가안정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준'과 '표현' 문제도…"물가 하락 아닌 상승률 하락"
여기에 물가를 둘러싼 오해의 기저에는 통계의 '기준'과 '표현'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우선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지수는 통계청에서 매월 작성해 공표한다. 조사 대상은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구매하는 상품과 서비스 458개 품목이다. 이들의 가격이 오르거나 내린 변동폭이 물가지표로 잡힌다. 비교하는 시점은 1년 전의 물가 변동인 '전년동월비'를 사용한다. 즉 '물가상승률 1.3%'의 의미는 1년 전 보다 물가가 1.3% 올랐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물가는 경제성장과 함께 상승곡선을 그린다. 1965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2019년 물가상승률이 0.4%를 기록해 역대 최저치를 찍었지만,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가가 떨어졌다"는 얘기는 '물가상승률'이 기준 시점보다 낮아졌다는 의미인데, 주요 상품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만약 '물가가 하락했다'고 하면 나라경제가 완전히 망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런 사태는 있어서도 안 된다"며 "상승률은 특정 기준 시점보다 떨어지거나 오를 수도 있는 것인데, 의미 차이를 잘못 이해하는 분들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챙기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