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국제사회의 규탄을 비웃듯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았다. 국제사회는 세계평화에 큰 책임을 진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가 자신들이 벌인 전쟁에 불량국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무책임성과 핵보유 빈소(貧小)국 북한의 끝 모르는 무모함에 진저리를 냈다.
이런 중에 한국의 정치권은 전황분석팀 파견과 관련하여 "국회 동의가 필요한 파병인가"를 둘러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국민은 북한의 참전이 한국의 안보에 미칠 영향과 대응책을 놓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기를 원했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이렇듯 북한의 파병에는 많은 나라들의 이해가 얽혀있다. 그래서 이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지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 봐야 한다.
◇'제2의 핵시대' 개막 알린 북한의 참전
국제정치 차원에서 보면, 북한군의 파병은 폴 브래큰(Paul Bracken)이 예고했던 '제2차 핵시대'의 도래를 증명해 보이면서 신냉전 대결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브래큰은 자신의 2012년 저서 '제2차 핵시대(The 2nd Nuclear Age)'에서 소수의 핵강국이 지배했던 제1차 핵시대의 마감과 함께 다극적 핵질서가 도래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는데, 그 제2차 핵시대는 무력을 통해 현 질서를 변경하려는 권위주의 세력과 이를 저지하는 자유세계와의 대결을 의미하는 신냉전과 함께 전개되었다. 러시아는 유럽의 하트랜드(heartland) 회복을 위한 전쟁을 시작했고, 이란은 자신이 양성·지원해 온 대리세력들을 통해 중동의 신질서를 꿈꾸는 중이며, 중국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신해양질서를 구상하고 있다. 북한의 참전은 권위주의 '신(新) 악의 축' 국가들이 '원팀'임을 과시했다. 그래서 국제정치 측면에서는 이 전쟁이 향후 국제질서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그리고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로 대만해협과 한반도가 신냉전의 다음 전장(戰場)이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북한군 파병이 전세를 결정하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인가, 나토의 대응적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확전으로 갈 것인가 등이 중요한 관심 포인트다. 여기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들이 나오고 있어 일단은 갈피를 잡기가 힘들다. 하지만, 나토의 대응적 지원으로 더 많은 살상과 파괴가 불가피한 소모전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 장비 및 실전경험 부족, 러시아군과의 소통 및 협력 애로 등으로 북한군이 게임체인저가 아닌 총알받이나 대포밥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북한이 얻을 것과 잃을 것
이번 파병을 통해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와 식량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북한군 현대화와 실전 경험을 더 원할 것이며, 더 절실한 것은 핵무력 고도화와 돈일 것이다. 실제로 정찰위성용 고첨단 카메라, 핵추진 잠수함, 대륙간탄도탄의 재진입 및 다탄두 독립비행체(MIRV) 등을 위한 기술을 얻는다면 한국 안보에 엄청난 악재가 될 것이다.
북한의 외화벌이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러시아가 계약병을 모집하면서 제시하는 조건과 해외 노동자 월급의 대부분을 정부가 가져가는 북한의 관행을 감안하고 5만명의 북한군이 유사한 대우를 받으면서 참전한다고 가정한다면, 어림계산으로도 매년 3조원 이상의 거금이 평양으로 들어간다. 전사자가 많아지면 수금액도 커질 것이다.
북한이 감당해야 할 딜레마들도 많다. 우선 북한군의 참전에는 반드시 후폭풍이 따른다. 평양의 기대대로 북한군이 전쟁에 크게 기여하는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의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빌미가 될 것이어서 북한은 국제전 확전의 주범으로 비판받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살상과 파괴를 수반하는 소모전이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북한군 파병이 '먹을 것이 없는 소문난 잔치'가 되어버린다면, 평양 정권의 체면은 손상되고 북·러 군사협력도 빛을 잃을 것이다. 북·중 관계의 악화도 북한이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북한 정권의 생존을 지켜주는 '뒷배'였지만, 북·러가 군사적 밀착을 급진전시키고 북한군의 파병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중국이 이를 괘씸한 '차이나 패싱'으로 보고 당황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비례하여 2016년 사드(THAAD) 배치 이후 악화하였던 한·중관계는 개선될 조짐을 보인다.
북한이 지불해야 할지도 모르는 최대의 비용은 '최악의 인권부재국' 오명의 자리매김과 그로 인해 북한 체제가 동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 휴먼라이츠워치 사무총장을 지낸 케네스 로스 프린스턴대 교수 등 서방 소식통들은 북한군이 장비 부족, 11월부터 시작되는 라스푸티차 등으로 고전할 것이며 러시아군을 대신하여 총알받이나 대포밥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우크라이나도 북한군에게 "북한을 탈출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내보내면서 심리전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사자, 탈영자, 투항자 등이 속출한다면, 국제사회의 인권 비난과 함께 북한 내부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 우리 아들들을 사지(死地)로 보냈다"는 원성이 일어나면서 북한의 체제가 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
◇한국에 던져진 안보·외교 과제들
북한군 파병은 안보·외교와 관련하여 한국에도 묵직한 과제들을 던지고 있다. 당장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체제 단속을 위해 K-팝 차단과 방벽 쌓기에 몰두해 온 북한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상자 및 탈영자의 속출로 내부 위기를 맞는다면 '내부 단속을 위한 외부 긴장 조성' 동기가 증폭하여 한반도를 격랑에 빠뜨릴 수 있다. 북한이 백령도를 무인기 이륙지로 선전해 온 것도 '원점 타격'을 빙자한 도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또한 러시아의 조력으로 북한이 대미(對美) 핵타격 능력을 갖춘다면 그것이 미국 여론을 흔들고 '동맹 이완'을 촉발하여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 지난 1일 북·러 외교장관 회담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는 날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한 최선희 북한 외무상에 화답하면서 "러시아는 귀국의 중요한 안보과제를 위해 중요한 것을 할 수 있다"고 한 세르게이 라브르프 외상의 말이 왠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대러 외교 과제도 만만치 않다. 정부의 한·미·일 치중 기조와 대러 강경 발언들이 북·러 동맹 복원과 북한군 파병을 초래했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신냉전하에서 한·미·일 공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으며, 북한이 병력, 무기, 탄약 등에 목마른 러시아군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러시아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았더라도 북·러동맹 복원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는 한국에 또다시 비극적인 역사를 강요할 수 있는 강대국이자 주적의 배후에 위치하는 이웃이다. 또한 중국이 미국의 주적인 아시아에서는 원만한 한·러 관계가 중·러 밀착을 견제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므로 동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러 외교를 펼칠 다소의 공간이 존재한다.
요컨대 한국이 협상 지렛대를 비축하는 차원에서 '단계적 대응'을 경고한 것은 필요한 외교 수순이었지만 최고위층 인사들이 나서서 필요 이상의 적대감을 표출할 필요는 없다. 종전 이후의 북방외교를 고려해서라도 동맹국을 성원하기 위한 우크라이나 지원은 의료진 파견 등 비전투적인 방법이 바람직하며 살상무기 제공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마땅하다.
김태우(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