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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올해 1~9월 누적 미국 판매대수는 125만482대로, 전년대비 15%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올 3분기 43만302대를 팔며 역대 최대 3분기 판매량을 기록했다. 아직 판매량을 오픈하지 않은 포드를 뺀다면 현지 판매량 3위다. 9월 기준으로도 14만2869대로, 전년동기 대비 18.4% 늘면서 역대 9월 중 최다 판매고를 올렸다. 일부 판매량을 공개한 업체만 따지면 토요타에 이어 2위다.
◇현지 맞춤형 마케팅 전략 먹혔다… 전기차도 '씽씽'
올 상반기 현대차는 전 세계 판매량 365만8000대(도매 기준) 가운데 미국에서만 85만9000대를 팔았다. 전체 비중의 23.5%에 달한다. 미국 다음은 오히려 텃밭이라 인식되던 내수 '한국(18.9%)' 이다.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높아진 브랜드 인지도를 꼽는다. 2021년 2월 미국서 열린 골프대회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 참가한 타이거 우즈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에 전세계가 주목했다. 일부 보도에선 사고 차량이 '유명하지 않은 고급차'라는 표현도 나왔다. 하지만 우즈는 멀쩡했다. 불과 3주 후 퇴원했고, 약 9개월만에 풀스윙 했다는 보도가 나오더니, 심지어 그 해 12월 중순 쯤엔 PNC챔피언십에 나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렇게 1년만에 다시 제네시스 인비테이션 행사가 열렸을 때 우즈는 정 회장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고마워서 그랬다는 게 우즈의 설명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오히려 대형사고에도 운전자를 잘 보호 한 GV80, 제네시스였다. 스토리텔링은 순간적으로 이목을 집중 시키는 효과를 냈고 '안전한 차'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자동차 시장에서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이 영향은 단순히 제네시스에 한정되지 않고 현대차·기아에 대한 이미지를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검증되지 않은 전기차 영역에서도 이 영향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곧바로 이어진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 자동차 충돌평가에서 제네시스 전 차종은 톱 세이프티픽 플러스(TSP+) 등급을 받으며 우즈의 안녕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이에 대해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제네시스 미국 판매량이 늘은 건 GV80의 타이거 우즈 사고 이후로 오히려 안전성이 주목 받은 게 그 계기가 됐을 거라 본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토요타 고급브랜드인 렉서스 동급 차종 보다 더 웃돈을 얹어야 살 수 있는 게 제네시스"라고도 했다. 일반적으로 재계에선 브랜딩은 축적되는 스토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현대차가 70년대 포니를 복원하고 포니 쿠페 양산까지 추진하며 헤리티지를 전세계에 각인 시킨 이유다.
일각에선 미국시장에서 현대차 선전에 대해 틈새 라인업 전략이 유효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GM이나 포드 등 미국 완성차업체들은 완전 대형차와 픽업트럭, 또는 세단 중심이라 중형 SUV로 승부하는 현대차 경쟁력이 좋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3분기 현대차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 차는 준중형 SUV 투싼(5만2589대)와 싼타페(3만5020대)였고 기아도 스포티지(3만5695대) 였다.
완전히 새롭게 열린 시장인 전기차 영역에서도 선제적으로 달려든 현대차에 대한 호평이 잇따랐다. 올 상반기 현대차그룹은 테슬라에 이어 전기차 판매 무려 2위 자리에 올랐다.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관계없이 최대 7500달러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리스 등 상업용 판매 물량을 늘리고 전기차 모델에 인센티브(딜러에 지급하는 판매 보조금)를 공격적으로 지급한 단기 전략이 성과를 낸 덕분으로 분석된다. 이 원장은 "리스 차량에 집중한 현대차 전략이 통한 거 같다"고 진단했다.
◇먼저 변해야 산다… 리더 정의선의 힘
업계에선 테슬라 성공의 배경이 일론 머스크의 혁신적 사고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존 완성차업체들이 시도 하지 못한 딜러를 없애고 전공정 자동화에 촛점을 둔 생산라인을 만들었다. 변화의 시대, 리더의 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차가 3년만에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 역시 여기에 있다. 정 회장 취임 3년은 틀을 깨고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려는 끊임 없는 시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젊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 IT기업을 표방했다.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을 인수하며, 고정된 DNA를 바꾸고자 했다. 투자 해 온 '스트라드비전'에 집중했고, 이어 유망 스타트업 '포티 투닷'을 인수, 이들을 중심으로 글로벌소프트웨어센터를 추진한다는 전략도 내놨다. 모두의 예측을 깨고 소프트뱅크로부터 로봇 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건 향후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빌리티 영역에서 로봇의 유연함과 AI는 접목할 대목이 많아서다.
물론 과제도 적지 않다. 시작이 빨랐지만 이제 모두가 달려든 치열한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얼마나 가져갈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정통 완성차업체들이 미래를 걸고 달려들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 등에서 신생 전기차업체, 심지어 아마존이나 소니 같은 IT·빅테크 회사들 역시 뛰어들고 있어서다. 또 당장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에 따라 앞으로 한두달 정도 현대차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그림은 아닐 것이란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