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에 잔액이 부족합니다.” 요즘은 많이 들을 수 없지만 충전식 교통카드가 많이 쓰이던 시절에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하루에 한 번씩은 듣던 말이다. 중국의 한 여대생은 교통카드에 돈이 충분히 있는데도 이 말을 듣자 화가 나 지하철 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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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쑤저우 대학생 샤오우 관련 뉴스. 교통카드에 잔액이 부족함을 알리는 화면. / 출처 = 중국 중앙방송
쑤저우(蘇州) 대학에서 법을 전공하는 샤오우(小吳)는 쑤저우 시내의 지하철을 이용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개표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통과하려는데 잔액부족 표시가 뜬 것. 쑤저우 지하철의 기본요금은 2위안(327원)인데, 샤오우의 교통카드에는 7위안(1144원) 하고도 1마오(毛·16원)의 돈이 더 들어있었다. 산술적으로 지하철을 3번이나 탈 수 있는 돈인데, 개표구조차 통과할 수 없었던 것.
지하철 공사 직원에게 문의하자 “쑤저우 지하철 요금은 최장거리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교통카드에 최소 8위안이 있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최장거리를 갈 경우 8위안의 요금이 나오는데, 쑤저우 시민 우대를 받으면 5%가 할인돼 7.6원이 된다. 이를 기준으로 교통카드 잔액이 7.6원 미만이면 잔액부족 표시가 뜨고 개표구를 통과할 수 없는 것이다.
언뜻 보면 지하철 공사 직원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1회용 표를 구매하는 사람은 2위안만 내면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지도 않다. 목적지에 도착해 금액이 부족할 경우 추가로 돈을 내는 방법도 있는데, 유독 교통카드 이용자만 충분한 잔액을 갖고도 탑승조차 할 수 없는 것. 샤오우는 부당함을 느끼고 법대생의 기질을 발휘해 베이징·텐진·난징 등 다른 지역의 사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교통카드에 기본요금 이상의 잔액만 있으면 지하철 탑승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통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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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중교통카드 디자인 예시./ 출처 = 바이두
샤오우는 지난해 10월 쑤저우 법원에 이를 규정하고 있는 쑤저우시 교통관련 규칙의 ‘제 13조’에 대해 무효를 확인하는 소를 제기했다. 쑤저우 중급법원은 최근 제 13조가 공평 원칙과 소비자권익보호법에 위배되는 바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또 쑤저우 지하철 공사에 대해 2019년 말까지 기본요금인 2위안을 기준으로 해당 규정을 수정하고 시행할 것을 명령했다.
한 대학생이 이룬 ‘쾌거’에 대해 중국 언론은 의외라면서도 중국 사법계의 발전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자평했다. 법대생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이 대형 회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 또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 샤오우에 대한 감사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돈 몇 푼 때문에’라고 치부하기 쉬운 일에도 발벗고 나서는 이들이 있어 중국의 소비자 권익이 점차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중앙방송(CCTV)도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돈 몇 푼에 법적 싸움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는지 시청자들의 의견을 물었는데, 결과는 “잘했다. 고맙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