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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와 가까운 브로커 이모씨(55)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정 대표의 항소심을 맡게 된 재판장에게 술과 향응을 제공했고, 며칠 뒤 식사 자리에서 정 대표를 보석으로 빼달라고 하자 놀란 판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갔다는 얘기였다.
지금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실관계와는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그 같은 부적절한 식사 자리가 실제 있었고, 사건이 재배당 됐다는 건 당사자나 법원이 인정했으니 완전 터무니없는 제보는 아니었던 셈이다.
내가 들었던 얘기는 술자리가 다는 아니었다. 해당 술자리에 브로커 이씨가 데려온 연예인(알려지지 않은 탤런트)도 있었고 판사와의 부적절한 만남이 있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물론 확인이 됐다는 게 아니라 제보 내용이 그랬다는 말이다.
이씨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관여했으며 연예계에도 상당한 인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 정 대표가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을 때 유명 탤런트 J씨는 정 대표의 형에게 전화를 걸어 “3월에 나올 수 있게 해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는 증언도 있다.
당시 재배당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몇 군데 루트로 확인을 벌이다 여의치 않아 취재를 접어두었다가, 이번에 최유정 변호사가 정 대표에게 구치소 접견실에서 폭행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제대로 물 먹은 꼴이 됐다.
하지만 벌써 일부 언론에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듯이 정 대표와 브로커 이씨가 벌인 로비의 대상은 법원만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지금 불거진 ‘전관 로비’ 건은 ‘새발의 피’라는 게 네이처를 아는 주변인들의 증언이다.
수사 과정에서의 경찰, 검찰은 물론, 개발사업과 관련된 로비에는 5선 국회의원과 국회 고위공무원, 지방자치단체장, 현직 경찰서장 등이 등장한다. 대부분 브로커 이씨와 오랜 기간 친분을 갖고 공생관계를 유지해 온 인물들이다.
그리고 로비가 실패로 돌아간 사업에서는 폭력조직을 동원한 살인 청부 스토리도 끼어있었다.
정 대표의 폭행 사건이 벌어진 뒤 불거져 나온 네이처리퍼블릭 박모 부사장의 강간미수 피소 건 역시 이 회사 경영진의 도덕불감증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회부에서 법조 기자 생활을 꽤 오래 했지만 지금처럼 법원, 검찰, 경찰이 긴장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각자 레이더망을 최대한 곧추 세우고 다음은 또 어떤 비리 의혹이 터질까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언론이 수사를 리드해가는 상황인 만큼 보도를 주시하면서 다른 기관과 관련된 의혹이 새로 나오면 반가와(?) 하고 자기 조직의 얘기가 이슈가 되면 빨리 또 다른 의혹으로 관심이 옮겨가길 기다리는 모습이다.
세 기관 어느 곳도 정 대표의 로비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검찰의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될지 모르겠다. 전 직원 등 네이처를 잘 아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이모씨의 로비 실체가 드러나면 대한민국이 뒤집힐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인, 공무원은 물론이고 국가 정보기관까지 등장하니 다칠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란다.
검찰 수사도, 언론의 취재도 그만큼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씨를 소환조사할 검찰에 앞서 네이처 측에서 이씨와 합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벌써 그런 얘기가 들리고 있다.
사전에 입을 맞추지 않고 검찰로 들어가는 이씨는 그야말로 ‘핵폭탄’이라는 게 네이처 관계자들의 표현이다.
막상 검찰이 이씨의 신병을 확보하더라도, 이씨의 전방위 로비 의혹을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칼끝 어딘가에 아군이 숨어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수사기관과 언론, 진실을 알고 있는 네이처 관계자 등 모두가 한 뜻으로 힘을 합쳐야 실체에 접근이 가능한 상황이다. 정 대표와 이씨를 둘러싼 로비 의혹 수사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어쩌면 대한민국의 도덕적 수준을 가늠해볼 기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