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역사왜곡 뿌리 뽑지 않고 광복 70년, 통일시대 의미 없어
광복 70년, 창간 10주년 특별 기획
종북의 뿌리, 김일성 바로 알기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종북세력 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범행이 정신이상자의 돌출행동이었든, 조직적인 배후 세력 사주였든 한국 사회의 종북세력 문제는 이제 그냥 덮어두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이 종북 세력의 정점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란 존재가 있다. 지금 북한의 인민과 종북이 아니더라도 한국사회의 많은 지식인, 진보진영, 대부분의 탈북자 등이 날조된 ‘김일성 항일무장 투쟁사’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한국의 일부 보수 진영을 제외하고는 남북한의 대다수 국민들이 김일성의 항일무장 투쟁사를 곧이곧대로 수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내의 다수 역사학계도 포함된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국내의 대다수 초중고 역사 교과서가 집필되는 것도 현실이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는 해방 후 성립된 남북한 정권 가운데 북한 정권이 더 정통성이 있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어진다. 즉 시작은 좋았으나 중간에 잘못해서 북한이 지금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북한 체제를 탈출한 한국사회의 27,000여 탈북자조차도 김일성은 옳았는데, 김정일·김정은이 잘못해서 북한이 살기 힘든 나라가 되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 북한을 탈출했지만 아직도 남북한 가운데 역사적 정통성은 북한에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모든 인식들이 북한의 역사왜곡에 기인한다. 그 뿌리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전’을 어떻게 취급하는가?
우선 북한에서 전기라고 하는 것은 김일성에게 어떻게 충실했는가 하는 유일한 척도로만 따른다. 때문에 극소수의 인물 전기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사람으로 단행본이 되는 일은 거의 없고 대개는 여러 사람이나 수십명이 한데 묶여 있다. 그것도 김일성에게 충실했다고 평가되는 인생의 일 시기를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항일 무장투쟁 시기에 김일성 이상의 투쟁을 한 김책의 전기도 전 생애를 그린 것은 없다. 북한의 ‘김일성전’은 문학 장르의 전기 개념에서도 크게 벗어나고 있다. 보급되는 점도 특이하다.
북한에서 출판물은 자유 판매제가 아니라 보급제여서 어떤 종류의 출판물도 간행되면 그 분야에 해당하는 전문가나 학생, 도서실이나 당의 고급간부에게만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전이 김일성에 관한 출판물은 모든 주민에게 보급되고 있다.
더욱이 김일성전은 읽는 책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학습하는 책이다. 한 번쯤 읽었다거나 내용은 알고 있다거나 책 전부를 읽었다고 해서 안 읽으면 용납이 되지 않는 책이다. 알고 있다고 해서 학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김일성전의 학습이란 그저 찬성하고 칭찬하기 위하여 전기를 받들어 읽는 작업이다. 그 학습의 성과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학습토론회에서 발언을 요구하여 토론하는 형식을 통해 당조직에 알려진다.
아픈 환자라 하더라도 주민이 학습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당 조직이 짠 학습시간에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환자는 당조직이 그 환자를 위해 따로 학습시간을 짠다. 그 공무로 결석하면 보충수업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토론을 못하게 되면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
이 거대한 역사왜곡의 덩어리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사’라는 유령은 북한 전역과 남한 사회까지도 장악하고 한반도를 떠돌고 있다. 이 뿌리를 뽑아버리지 않고서는 광복 70년도, 우리가 맞이할 통일시대도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