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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모든 여행은 익숙함을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뜻하지 않게 주어진 7만톤급 호화 크루즈에서의 일주일은 크루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능숙한 영어 실력·화려한 파티 의상·각종 엔터테인먼트를 적극적으로 즐길 오픈 마인드 등 크루즈를 즐기기 위한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완벽히 크루즈에 적응한 스스로를 마주했다.
롯데관광개발의 ‘인천항 승선 부산항 하선 크루즈 전세선’을 체험했다. 인천항을 출항해 일본 오키나와·아마미아오시마·가고시마·나가사키를 관광하고 부산항에서 하선하는 6박7일 코스다. 낯설고 어색한 듯, 어려운 듯 익숙해지는 크루즈 여행의 묘한 매력을 5가지 키워드로 소개한다.
하나, 호화 크루즈의 화려한 위용
크루즈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호화 크루즈 자체에 있다. 크루즈에 탑승한다는 것 자체가 크루즈 여행의 매력이다. 롯데관광이 5년 연속 진행하고 있는 이탈리아 크루즈 선사 ‘코스타 크루즈’(COSTA Cruise) 전세선 ‘빅토리아’호는 승객 2394명과 승무원 800명이 동시 탑승 가능한 7만5000톤급 규모의 중형급 크루즈다. 가이드에 따르면 타이타닉의 2배에 63빌딩을 옆으로 엎어놓은 것과 같은 크기라고 하니, ‘7만5000톤급 크루즈’가 와 닿지 않는다면 이 설명을 참고하면 되겠다.
크루즈 여행은 비행기를 이용하는 여행과는 달라서 공항이 아닌 여객터미널에서 여행이 시작된다. 아직 우리나라는 크루즈 여행이 대중화되지 않아 공항버스나 공항철도처럼 국제여객터미널까지 가는 직항 교통편은 없다. 롯데관광은 이 같은 교통 불편함을 최소화시키고자 인천역에서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제2국제여객터미널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마련했다.
크루즈 승선은 지루했지만 힘들지 않았다. 총 승객 1200명이 동시 수속하는 만큼 대혼란이 예상됐었으나 30분 단위로 조별 미팅을 진행하고 그 순서대로 승선 절차를 밟았다. 빅토리아호가 정박된 인천항 북항까지 버스로 20분. 가는 동안 가이드로부터 크루즈에 대한 설명과 선내 주의사항·당일 일정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드디어 크루즈에 도착. 크루즈를 가까이에서 실물로 보는 것은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화려한 위용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승선을 위해 엑스레이 및 여권 검사 등을 마치고 10분 만에 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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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내데스크가 있는 5층으로 올라가 가이드와 함께 간단히 선상 투어를 진행했다. 빅토리아호는 총 13층 높이에 그 길이만 252m이다. 도무지 배 안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구성된 선내는 마치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건물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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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여행은 객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내부가 투명한 중앙 엘리베이터를 타고 중앙 데스크가 있는 5층부터 11층까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객실 열쇠 겸 선내 결제수단으로 이용되는 코스타 카드를 지참하고 본격적으로 크루즈 탐방에 나선다. 코스타 카드는 5층 메인 홀에서 신용카드 또는 현금을 등록해야 결제 가능하다.
크루즈는 여유롭고 고급스러우며 자유롭다. 5층 메인 홀에서는 라운지 라이브 음악이 흘러나오고 6층 그랜드 바에서는 칵테일 한잔과 공연을 즐길 수도 있다. 6·7층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페스티벌 극장에서는 밤마다 각종 공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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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극장이 앉아서 보는 수동적인 공연이라면 콘코르드 플라자에서는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공연 위주로 진행된다. 콘코르드 플라자로 가는 길에는 카지노가 있는데 무리한 투자만 아니라면 이곳에서 운을 시험해 보는 것도 좋다. 11층에는 뷔페식 레스토랑이 있고 레스토랑 밖의 갑판에는 야외 수영장과 자쿠지(물에서 기포가 생기게 만든 욕조)가 마련됐다.
각 층마다 놀랄 만한 엔터테인먼트 시설들을 구경하는 동안 사람들은 이미 여행을 시작했다. 밤 10시까지 운영되는 자쿠지에는 수영복 차림의 아주머니들이 앉아 노천욕을 즐기고 있었고, 12층의 조깅트랙 위로는 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승선 첫 날, 바로 몇 시간 전의 긴장감은 크루즈를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사람들은 마치 원래 크루즈에 살았던 것처럼 크루즈의 모든 부대시설을 마음껏 이용하기 시작했다.
셋, 완벽한 일상 탈출의 기쁨 만끽
△잘생긴 다국적 승무원들과의 늦은 밤 클럽 파티 △브라질 현지인에게서 배우는 삼바댄스 △선장이 주최하는 갈라 디너 △갑판 위 야외 수영장에서의 선탠. 크루즈 여행의 백미는 역시 완벽한 일상 탈출에서 오는 기쁨이다. 크루즈 자체만으로도, 완벽히 갖춰진 선내 시설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만 그래도 크루즈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생활이 정말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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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에는 절대로 입지 않을 것 같은 휘황찬란한 드레스를 크루즈 여행에서는 입게 된다. 게다가 더욱 화려하게 꾸미고 싶어진다. 오랫동안 현실에 찌들어 꾸미는 법을 잊은 어머니들도 크루즈에서는 화려한 여성으로 변신하게 만든다.
매일 객실에 배달되는 투데이지(선상 일정을 시간대별로 설명한 선상 신문)를 기다렸다가 그 날 저녁·다음 날 저녁식사의 드레스코드를 보고 그에 맞춰 옷을 코디하고 화장도 제법 진하게 해본다. 보타이를 맨 아저씨들이 낯설지 않은 곳이 바로 크루즈다. 아침에 일어나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하고 11층 시레나 바에서 아침 산책을 하거나 무언가를 배운다. 기항지 관광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서는 밤늦게까지 마련된 각종 공연들을 두루 섭렵한다.
오후 8시부터 시작되는 메인 공연에서부터 밤 11시쯤 시작되는 파티까지, 매일 밤 공연과 파티를 즐기고 다시 고요한 객실에 들어와서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누워 TV를 켠다. 이틀 단위로 바뀌는 한국영화를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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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여행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일주일간 머무는 내 공간을 소중히 다뤄준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크루즈에 함께 탑승했던 아주머니들은 늘 집안일에 매달려왔기 때문에 거의 실시간으로 행해지는 객실 서비스를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레스토랑에서도 크루즈 탑승자는 항상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한국인을 위한 한국어 메뉴와 김치가 늘 준비돼 있고 영어를 특별히 사용하지 않더라도 스태프들이 이미 간단한 한국어를 익혀 한국인 탑승객에게 맞췄다.
크루즈 여행 중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기항지 관광 후 크루즈가 기항지를 떠나기 전, 기항지에서 준비한 공연을 볼 때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지역 전통공연을 크루즈 선내에서 직접 선보였고, 두 번째 기항지였던 아마미와 세 번째 기항지였던 가고시마에서는 음악 공연을 선사했다.
곧 출발을 앞둔 크루즈와 탑승객들을 향해 계속해서 손을 흔들고 깃발을 날리며 아쉬움을 표현하는 그들을 보는 것은 매우 독특한 기분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타국 사람들이지만 이곳에서의 여행이 즐거웠길 기원하는 그들의 손 인사는 애틋하기까지 하다. 일반적인 여행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환영과 아쉬움의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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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정을 마치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면 오묘한 기분이 든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하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파도가 침대를 미세하게 흔들기 때문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움직임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몽롱해지고 잠에 빠져든다.
사실 크루즈 여행에서 그리운 기억도 잠들기 전, 침대의 미세한 떨림이다. 버스와 기차·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꽤나 설레는 일이지만 몸이 고되다. 거의 하루를 이동 시간으로 날리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그런 여행을 해오고 있어 크루즈 여행은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루 종일 즐기고 호텔 객실에서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목적지에 도착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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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지 키워드로 크루즈의 매력을 설명하기엔 턱도 없다. 6박7일 간의 일정을 줄줄 읊으며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것 역시 크루즈 여행의 진정한 매력을 알리기엔 부족하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그래서 더욱 답답하고 아쉬운 것이 크루즈 여행이다. 크루즈 여행은 모든 것을 갖췄을 때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탑승해 좋은 인연을 만들고 고급스러운 매너를 자연스럽게 배우며 안목을 넓히는 채움의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