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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 섬에서 ‘바다’의 뜻을 알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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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기자

승인 : 2014. 12. 04. 06:00

거문도 여행 백미는 불탄봉~보로봉~거문도등대 3시간걷기
눈물처럼 뚝뚝 떨어진 동백꽃 지천...패키지 이용하면 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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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기와집 몰랑을 지나 목넘어로 내려오는 길의 ‘365계단’.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붉은꽃들이 뚝뚝 떨어져 있어 마치 천국의 계단을 보는 듯하다.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받아’주기 때문이다./‘괜찮다’/그 말 한 마디로/어머닌 바다가 되었다.”(문무학의 ‘바다’)

여수 거문도는 꼭 그 바다를 닮았다.

아무리 생떼를 써도 생채기 한 번 없이 그저 허허 웃으며 반긴다. 2시간여 뱃길에 이리 저리 들썩이다보면 사는 삶은 다 그렇다고 대답해주니 말이다.

섬 여행은 겨울에 제 맛이다.
날이 추워져 옷깃을 여미 듯 12월이라 이제는 마음까지 여며야 할 때다. 올해는 유난히도 여며야 할 것들이 많은 해여서 섬 여행이 그래서 더 각별해진다. 거문도 불탄봉 오르는 길에 만난 해국(海菊)은 마치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처럼 여행자들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걱정마라. 다 잘될거야”하고 말이다.
/거문도=글·사진 양승진 기자 ysyang@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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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함에 모든 사물이 멈춘 듯 일출이 시작된 거문도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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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신선바위를 지나 기와집 몰랑에서 본 거문도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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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바다에서 본 거문도등대 일몰.
◇‘남해 동부 먼 바다’ 그곳이 거문도

거문도는 여수 앞바다 끝이다.

날씨 예보를 들을 때마다 ‘남해 동부 먼 바다’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여수에서 남쪽으로 114.7km, 제주에선 86km 떨어져 있다. 맑은 날엔 한라산이 보여 육지보다는 섬이 더 가깝다.

거문도는 행정구역상 여수시 삼산면이다. 동도·서도·고도 3개 섬으로 이뤄져 ‘ㄷ’자 형태를 이루고 터진 바다도 좁아 마치 인공 섬처럼 보인다. 이 3개의 섬을 삼산(三山)이라고도 하고 여수에서 갈 때 들렸다가는 손죽도, 초도까지 합해 부르기도 한다.

예전에 인구가 많을 때는 3개 섬을 합해 1만1000명까지 있었다지만 지금은 1000명 남짓이다.

여객선터미널과 면사무소가 있는 고도는 거문도의 중심지다.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로 연결돼 있고 동도와 서도를 잇는 연륙교는 한창 공사 중이어서 내년 초에 개통될 전망이다.

거문도는 거문(巨文) 또는 거문(巨門)으로 불린다.

1885년 영국 해군이 무단 점령하기까지 섬은 삼도(三島)라고 불렸다. 당시 조선을 제치고 영국, 러시아와 협상을 벌이던 청나라의 작품이다.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문장이 훌륭한 선비들이 많이 사는 섬’이라고 해서 붙여졌다. 그가 거문도 주민들과 자주 필담을 나눴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그 해박함에 놀란 나머지 조정에 섬 이름을 거문도(巨文島)라고 해달라고 청했다는 것이다. 고종실록에도 1885년 이후 ‘거문도’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또 다른 거문은 지형학적 요충지여서 붙여졌다. 대륙으로 가던 바다로 가던 동아시아 관문이어서 거문(巨門)이라고도 부른다. 근대 서구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수난을 당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해국
불탄봉 오르는 길에서 만난 해국. 멀리 수월봉과 그 앞으로 삼호교가 보인다.
◇섬 한 바퀴...3시간의 짜릿한 행복

거문도 여행하면 대부분 백도(白島)나 거문도 등대를 보고는 다 봤다고 얘기하는데 사실 거문도의 백미는 걷기에 있다.

고도에서 시작해 삼호교를 건너 유림해수욕장~목넘어~거문도등대 코스는 차가 다닐 만큼 큰 길이어서 산책하듯 다녀오면 좋다.

제대로 된 섬 산행을 하고 싶다면 덕촌마을에서 불탄봉(195m)~보로봉(170m)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제법이다. 5km로 3시간쯤 걸린다.

덕촌마을에서 불탄봉쪽으로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 돌담 안 밭에는 쑥이 자란다. 거문도 쑥은 ‘해풍쑥’으로 봄에 수확해 살짝 데친 뒤 냉동보관하면서 틈날 때마다 먹는다. 한 해 3번 수확하는 ‘해풍쑥’은 이곳 특산품으로 찾는 이가 많지만 수요를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어서 귀하다.

불탄봉으로 들어서면 이 때부터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룬다.

빨간 동백꽃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진 길을 걸으면 동박새들의 지저귐도 동행한다. 동백나무 터널은 대낮인데도 어두울 만큼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능선 길을 따라 가면 오른쪽으로 청산도가 멀리 보이고 잠시 억새 군락을 따라가다 다시 또 동백터널이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확 터지면서 바위가 바다에 박힌 듯이 보이면 신선바위(115m)다. 꼭대기는 평탄해 누워서 하늘을 보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하다.

신선바위를 지나면 박석(薄石) 깔린 기와집 몰랑이다. 몰랑이란 ‘산마루’란 뜻의 사투리로 바다에서 보면 거대한 기와집 지붕을 이뤄 그렇게 붙여졌다. 길은 지붕을 밟고 가는 통에 깎아지른 절벽이 늘어선다. 오른쪽으로 거문도 등대가 숨바꼭질을 하는 듯하다 ‘365 계단’이란 판석으로 만든 계단길을 내려서면 목넘어다. 목넘어는 물이 넘나드는 곳으로 섬이 됐다 뭍이 됐다 하는데 수월봉(水越峰)도 물이 넘는 뜻이어서 같은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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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숲길에서 본 거문도등대. 왼쪽에 작은 등대가 남해안에서 가장 먼저 불을 밝힌 등대다.
◇남쪽엔 거문도등대-북쪽엔 장산곶

거문도 등대가 있는 수월봉(196m)도 동백나무가 길을 인도하는 건 마찬가지다.

단일면적으로 동백나무가 가장 많은 곳이 거문도라는 걸 말해주듯 발길에 차이는 게 동백꽃이다. 처음엔 꽃을 밟기가 미안할 정도지만 결국엔 피해갈 수 없을 만큼 많다.

목넘어 갯바위 지대를 지나 1km 동백숲길을 따라가면 거문도등대다.

거문도등대는 인천 팔미도등대 다음으로 1905년 남해안에서는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2006년부터 새 등대가 길을 비추고 있다. 등대 끝에는 관백정(觀白亭)이 있는데 백도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거문도 남쪽에 거문도등대가 있다면 북쪽엔 녹산등대다.

녹산등대를 따라가는 길은 사뭇 다르다. 초지로 이뤄진 부드러운 능선 길이 등대까지 이어진다. 섬이 동백나무들 차지인데 반해 이곳은 초지가 넘실댄다. 이유는 초등학생 3명이 고구마를 구워먹겠다고 한 불장난으로 다 태웠기 때문이란다.

이곳엔 인어해양공원이 들어서 있다. 육감적인 자태를 드러낸 신지끼동상이 인상적인데 상체는 여성, 하체는 물고기인 인어다. 초승달을 타고 앉았고 손엔 돌을 들었다.

섬 주민들은 신지끼를 수호신으로 여겼다. 큰 풍랑이 일어나기 전날 어김없이 나타나 절벽에 돌을 던져 이를 알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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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초등학교 옆에 있는 영국군 묘지. 당시 10명이 사망했는데 지금은 3명의 무덤만 확인되고 있다.
◇영국군 묘지와 일본 신사가 있는 섬

거문도는 열강들이 제집 드나들 듯 한 흔적들이 곳곳에 있다.

1885년 영국 해군은 군함 3척과 수송선을 동원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2년간 거문도를 무단 점거했다. 영국 해군은 거문도를 해군성 차관의 이름을 빌어 ‘포트 해밀턴’이라 불렀다. 당시 기지를 운영하던 영국군은 해군사병과 해병대원 10명이 사망하자 이곳에 묻었다.

영국군 묘지가 있는 까닭이다. 1886년 사망한 두 명과 1903년 사망한 병사는 비문에 적혀있어 알지만 나머지는 알 길이 없다.

러시아는 1854년 황제 특사 푸자친이 기함 팔라다호를 타고 거문도에 상륙해 11일간 머물렀다.

일본은 1907년 기무라 타다시다로가 거문도로 이주한 후 많은 일본인들이 몰려들어 마을이 형성됐고 지금도 신사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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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나로도~거문도를 운행하는 줄리아 아쿠아호.

◆여행메모

△가는 길= 여수까지 가는 길은 KTX가 편하다. 여수엑스포역에서 여객터미널로 이동해 이곳에서 거문도행 배편을 이용한다. 줄리아아쿠아호가 하루 두 번 운행하고 2시간20분 걸린다. 평일은 오전 7시40분 거문도로 들어가고 10시30분에 돌아온다. 금·토·일은 오전 7시40분, 오후 1시10분에 거문도로 간다. 운임은 3만6600원.(061-650-6001~2).

△백도 유람선 관광= 백도 유람선 관광은 20명 이상이면 수시로 운항한다. 가격은 2만9000원. 소요시간은 왕복 3시간. 섬에 오르는 것은 금지돼 있어 섬 주위를 둘러보고 그대로 나온다. 거문도여객선터미널(061-666-8215)

△패키지 상품= 기쁨투어(거문도관광여행사, 061-665-7788)는 KTX, 거문도 유람, 백도 관광, 민박(2인1실), 식사 등이 포함된 1박2일 패키지 상품을 판매한다. 박춘길 기쁨투어 사장이 고향인 거문도를 알리기 위해 알차게 만든 상품이다. 가격은 26만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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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철인 거문도 갈치는 귀하신 몸이 됐다. 경매가 몇일 만에 한 번 이뤄질 정도여서 상품 10kg에 34만~37만원 한다.
△쉴 곳= 면사무소(061-659-1257)가 있는 고도에 모텔과 민박 등이 몰려 있다. 요금은 3만원 정도다. 거문도 등대(061-666-0906)에서도 무료로 숙박할 수 있다. 이용 신청은 희망일 2주 전 여수지방해양항만청(yeosu.mof.go.kr)에서 받는다.

△먹거리= 거문도 음식은 전라도 특유의 독특한 맛에 섬 문화가 곁들여져 감칠맛이 있다. 해풍쑥으로 아침상을 내주는 섬마을식당(666-8111)과 싱싱한 횟감으로 유명한 충청도횟집(665-1986) 등이 알려져 있다.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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