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 매출증가율 0.9%, 전 세계 평균 6.0% 보다 크게 떨어져
이 같은 위기는 시장에서 바로 반영되고 있다. 한국경제를 이끄는 양대 축인 삼성과 현대차가 나란히 3분기 실적에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자동차·전자·화학·중공업 등 대부분 영역에서 중국의 저가 전략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중국의 샤오미와 일본의 도요타 등이 삼성과 현대차를 위협하고 있다. 나머지 산업군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중국보다 우위에 있던 기술격차도 근소한 차이로 좁혀졌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포위된 기업들은 투자 감소로 잠재성장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10일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성장 속도가 미국, 일본 등 전세계 제조업의 평균보다 못 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증가율, 영업이익률 등이 모두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세계 경기 둔화 등을 고려하면 제조업 등 수출업체는 앞으로도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제조기업의 성장속도 해외기업에 뒤처지기 시작했다’라는 보고서를 보면 2010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494개 기업과 전세계 64개국 1만5254개 상장기업을 분석한 결과 국내 제조업이 전세계 제조업에 비해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부진했다. 평균치가 아닌 중앙값을 비교한 것이다.
국내 제조업의 매출증가율은 2010년 15.8%에서 올 상반기 0.9%로 낮아졌으나 다른 나라는 14.0%에서 6.0%로 떨어지는 데 그쳤다. 수익성도 떨어졌다. 국내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올 상반기 4.4%였으나 다른 나라 제조업은 5.2%로 더 높았다.
이와 관련해 2040년경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OECD 분석을 보면 한국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할 우려가 큰 만큼 2030년 후반이면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며 이같이 내다봤다.
김 연구위원은 저성장 고착화 요인 중 하나로 기술경쟁력 저하에 따른 제조업의 위축 가능성을 꼽았다. 그는 “한국의 기술수준은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77.8 수준에 불과하다”며 “과학기술 경쟁력은 미국에 4.7년 뒤지고 있고, 중국과 비교해서는 1.9년 정도만 앞서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최근 중국이 기술경쟁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는 데다, 특히 최근에는 일본 기업들도 엔화 약세를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어 수출시장을 중국과 일본 기업이 급속히 잠식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백윤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도 제조업에서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한국을 따라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백 교수는 유엔국제제조업경쟁력지수를 인용해 2000년 한국과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 순위는 11계단 차이를 보였지만 10년 만에 불과 3계단 차이로 좁혀진 상황이라고 밝혔다. 2000년대 전반에는 한국이 중국 특수로 산업경쟁력을 끌어올렸지만 2006년 이후에는 중국의 투자 확대를 발판 삼아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급상승했다는 분석이다.
백 교수는 “한국 기업이 강점을 가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은 개방형 기술생태계에서 제품 주기가 짧고 경쟁이 치열해 경쟁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며 “단순한 ICT 분야의 개별 기술 개발보다는 ICT 산업과 의료의 결합 같은 기술·산업 간 융합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근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산업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업 인수합병(M&A)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일례로 삼성이 초기에 샤오미를 인수했더라면 선제적 방어가 이뤄졌을 수 있다”며 “우리 기업에 진짜 위협은 같은 방법으로 경쟁하려는 후발 기업이 아니라 다른 패러다임을 들고 나오는 후발자여서 이런 기업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OECD와 주요경제기관들은 이달 들어 한국경제 성장률을 낮추고 있다. OECD는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7%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5월 전망치(4.2%)보다 0.4%포인트나 떨어뜨린 것으로 하락폭은 주요국 중 가장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