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함께 숨쉬는 젊은 예술공장, 인천아트플랫폼
개항과 함께 인천은 우리나라 물류유통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당시 막대한 수출입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갯벌을 매립하고 그 위에 수 십 개의 창고형 건물을 지은 것이 지금의 해안동 일대인데, 자칫 흉물스런 근대의 기록으로 남을 뻔한 이곳이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공장으로 변신했다. 이름하여 인천아트플랫폼. 떠나고 떠나오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플랫폼 풍경처럼 이곳도 예술을 사랑하고 창작의 열정으로 가슴 뜨거운 이들이 떠나고 떠나온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일반적인 미술관들과 달리 창작 중심의 공간이다. 짧게는 3개월부터 길게는 1년까지 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머물며 창작에 열중한다. 간혹 일반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작업실을 공개하고 작품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는 적극적인 작가도 있지만, 대개 매년 봄에 마련되는 입주작가 프리뷰전과 겨울에 이뤄지는 결과보고전을 통해 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회도 일반적인 회화나 조각, 설치미술뿐 아니라 뉴미디어와 연극, 문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에서 재기발랄한 신진작가들을 만날 수 있어 꽤 신선하다. 주말이면 인형극과 현대무용,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공연들이 이어지는데,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실험적인 작가와 유명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어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물론 인기드라마 <드림하이(2011)>의 촬영지로 사용될 만큼 감각적인 건축물과 조형물, 통유리 너머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만으로도 이곳에선 충분히 즐거운 반나절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입장시간 및 입장료: 일~목요일 10:00~18:00/금?토 10:00~20:00(전시기간 중), 무료
주변 먹거리: 인천아트플랫폼은 차이나타운과 인접해 먹거리가 다양한 편이다. 하지만 인천 사람들이 즐겨 먹던 맛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걸어서 10여분 거리의 신포시장을 찾아보자. 신포시장 최고의 명물로 꼽히는 닭강정(신포닭강정 032-762-5800)은 바삭하게 튀긴 닭을 매콤한 청양고추로 맛을 낸 소스에 버무려내 달콤하면서도 칼칼한 끝맛이 중독성 강하다. 쫄면의 원조로 꼽히는 신포우리만두(032-762-5800)와 40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동공갈빵(032-764-3449) 등 인천의 오랜 먹거리들을 이곳에서 모두 맛볼 수 있다.
홈페이지: www.inartplatform.kr
배를 대는 다리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은 배다리마을. 과거 바닷물이 마을 입구까지 드나들던 이곳은 땅을 메운 후에도 밀물 때면 비릿한 갯내음이 밀려들고 갈 곳 잃은 갈매기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한다.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되고 본격적인 조선 침탈을 시작한 일본인들에게 쫓겨난 사람들이 흘러들어 터전을 잡은 것이 지금의 금창동·창영동·송현동 일대, 즉 배다리였다. 이후 시장이 들어서고 학교도 지어졌다. 인천항에 기대어 하루를 벌어먹는 인부들이 모여들며 꽤 번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서 시간은 멈춰버렸다. 당시의 좁은 여인숙 골목이며 허름한 담벼락이 그대로 현대와 공존하는 이곳의 시계는 도무지 서두를 생각을 않는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새 학기가 되면 교과서와 참고서를 구입하기 위해 찾아오는 학생과 가난한 지식인들로 붐볐던 배다리 헌책방골목은 한때 3~40여개의 책방이 즐비했다. 그러나 지금은 겨우 대여섯 곳의 책방만 남았다. 찾는 이도 오랜 단골이 대부분이라 낯선 여행자의 방문은 단번에 알아보는 눈치다. 부산의 보수동 같은 지역명소까진 아니더라도 빛바랜 책 한권에 마냥 행복했던 시절을 함께 추억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그래도 노력마저 멈춘 것은 아니다. 배다리의 오랜 터줏대감인 아벨서점은 2층 공간을 활용해 정기적으로 시인들을 초청, 낭송회가 열리는 ‘시 다락방’을 운영 중이다. 1920년대에 가동을 시작해 그 유명한 인천 막걸리 ‘소성주’를 제조하던 양조장엔 문화공간인 스페이스빔이 들어섰다. 이곳에선 사진과 미술, 건축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회는 물론 마을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교실도 운영 중이다.
혹여 볼거리가 부족하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학교이자 인천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었던 영화학교와 19세기 말 미국 감리교회가 파견한 여자 선교사들의 합숙소로 이용됐던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 건물이 지척이다. 모두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근대건축물 특유의 독특한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주변 먹거리: 배다리마을에 왔다면 꼭 한번 들러봐야 할 맛집이 있으니 바로 개코막걸리(032-773-6011)다. 찌그러진 주전자에 나오는 막걸리와 파전이 뭐 그리 대단할 건 없지만 이 곳에서 젊은 시절을 모두 흘러 보낸 주인장은 그 자체로 배다리의 역사다. 조혁신의 소설집 <삼류가 간다>에도 ‘개코막걸리네’란 단편이 등장할 만큼 사람냄새 그득한 곳이다.
은밀하게 그러나 위대하게, 열우물길 벽화마을
행정구역상 명칭은 십정(十井)동, 그래서 이름도 어여쁜 열우물이다. 이름 그대로 예전에 이곳에 열개의 우물이 있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한겨울에도 따뜻한 김을 내뿜는 우물이 있었다하여 열우물이라고도 한다. 뜻이야 어찌되었든 그만큼 사람 사는 정겨운 풍경이 꽤 오래전부터 이어지던 동네겠다.
이웃에 자리한 미끈한 고층아파트 단지와 달리 이 동네엔 허물어진 담벼락과 낮은 슬라브 지붕, 이리저리 얽힌 콘크리트 계단이 마구잡이로 놓여있다. 경사도 만만치 않아 몇 번이나 숨을 골라야 한다. 재개발이 임박해지면서 빈집도 제법 눈에 띈다. 그런데 이런 동네에 저마다 카메라 하나씩 둘러맨 여행자들이 꽤나 들락거린다. 삭막하기만 했던 열우물이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소문이 나면서다. 최근엔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팬들의 발걸음이 잇따르고 있다.
열우물길 벽화마을의 시작은 한 공공미술가가 마을에 작업실을 차리면서부터다. 그림을 통해 희망을 나누는 거리미술가들의 모임인 ‘인천희망그리기’를 운영하고 있는 이진우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철거를 앞두고 흉흉해진 마을에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그는 자비를 털어 주인 없는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곧 허물어질 마을에 웬 그림이냐며 타박하던 어르신들도 멋스럽게 변신한 담장을 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떤 이는 남몰래 자신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슬쩍 건네고 갔다.
그렇게 마을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본격적으로 벽화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험한 계단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로 변신했고 골목 어귀마다 정답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이 그려졌다. 콘크리트와 페인트가 얼기설기 말라붙은 담벼락엔 푸른 나무가 가지를 뻗고 탐스런 해바라기가 꽃을 피웠다. 동네 꼬마들의 동무가 되어줄 앙증맞은 고양이와 강아지들도 여기저기 장난스레 숨었다.
스산한 동네 풍경에 잠시 멈칫거리던 걸음도 벽그림들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 아무리 허름하고 너절해도 이곳은 분명 사람 사는 동네라고, 담장에 그려진 색색깔 벽화들이 이야기하는 듯하다.
주소: 인천 부평구 상정로 50(인천상정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