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문은 ‘몰락 앞의 탐욕’(Greed before the fall) 이라는 제목 아래 1면 머리기사를 유병언 전 회장의 죽음으로 시작했다. 또 12면과 13면 전체를 할애했다.
뉴욕타임스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날 학생들이 배가 기울어지자 처음에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다가 나중에 살아날 수 없음을 알고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며 스마트폰으로 작별을 고한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참사의 중심에는 ‘가장 기이한, 그리고 이제는 매도당하는’ 가족이 있다”면서 유 전 회장 본인은 사망하고 부인과 2명의 자녀가 구속된 사실을 전했다.
이 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 전 회장을 악마로 만들고 정부는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일명 구원파 신도들의 주장을 소개해 주면서도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검찰의 발표는 맞는 것 같다고 밝혔다.
유 전 회장 일가가 안전을 무시하고 세월호를 개조한 것이 비극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의 비극은 객실 및 갤러리를 추가로 설치한 데서 시작됐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배의 상단에 추가로 객실이 설치되면서 배가 바닷속으로 더 가라앉더라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효과가 있었다. 이 때문에 세월호는 정원보다 더 많은 승객을 태우고도 외견상으로는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유 전 회장 개인의 성장 및 세모그룹을 일군 과정도 자세하게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 ‘미켈란젤로보다 뛰어난 조각가’를 꿈꾸다가 고등학교에서 종교를 접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이후 카리스마를 갖춘 연설가로 교회를 만들어 신도들을 늘려갔으며 10만 명의 거대 교회로 성장시켰다.
교회를 바탕으로 유 전 회장은 사업을 키워나갔다.
1970년대 교회를 자금의 원천으로 삼은 그는 신도들에게 기부하거나 투자하도록 설득하면서 투자재원 조달이 쉽지 않았던 시절에도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1980년대에는 미니재벌로 성장했다.
뉴욕타임스는 유 전 회장이 이른바 오대양 사건이 터진 이후 감옥생활을 한 것도 소개했다.
32명의 집단 자살과 유 회장이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교회 신도들을 속여 신도들의 돈을 기업자금으로 활용한 사실이 적발돼 1991년부터 1995년까지 감옥에서 지냈다.
이 신문은 유 전 회장이 ‘아해(AHAE)’라는 이름의 사진작가로서 전시회를 했던 사실도 다뤘다.
그러면서 그룹 내 계열사뿐 아니라 신도들에게까지 팔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유 회장 일가가 세모그룹 계열사들의 돈을 개인 자동입출금기(ATM)로 활용했다는 검찰의 표현을 전하면서 미국에만 최소 800만달러어치의 부동산이 유 회장 일가 또는 계열사 명의로 돼 있다고 밝혔다.
또 수천만달러의 돈이 유 전 회장을 유명인사로 만드는 데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반면에 세월호의 안전 운항을 위해서는 지난해 2달러를 지출한 게 전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