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화 기자] 여의도를 흔히 ‘증권밭’이라고 일컫기도 하지요. 국내 유수의 증권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 여의도입니다. 여의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랜드마크라면 여의도우체국 옆에 우뚝 서 있는 한국거래소를 들 수 있습니다. 한국거래소 안에 들어가면 바로 청동 조각상을 볼 수 있는데요, 황소가 곰을 뿔로 받고 있고 곰은 벌러덩 넘어지고 있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조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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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의 황소상. 현재는 노조 파업중으로, 황소상 앞에 피켓들이 놓여 있어 형상을 제대로 살펴보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
거래소를 왼쪽에 끼고 쭉 들어가면 양옆에 도열해 있는 증권사들을 볼 수 있는데요.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대신증권사 앞에도 큰 황소상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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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증권 앞 황소상. 황소상 아래에서 제작자 김행선씨의 이름과 형상의 이름 '황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구현화 기자 |
대신증권에서 조금만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한국거래소와 함께 한국 증권가를 떠받치는 기관인 금융투자협회가 있지요. 이 금융투자협회 앞에도 잘생긴(?) 황소상이 서 있습니다. 얼마 전 MBC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세계 일주 편 중 ‘스페인’ 편을 찍으려 황소상을 물색한 끝에 금투협 앞 황소상 앞에서 촬영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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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협회 앞 황소상. 잘 생겼나요? 출처=구현화 기자 |
과연 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등지에 황소상이 서 있는 이유는 뭘까요? 장기간 상승장을 의미하는 ‘bull market’이 바로 황소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장기간 약세장은 ‘bear market', 즉 곰을 가리키죠. 황소는 뿔을 이용해 상대를 들이받는 공격을 한다고 하죠? bull market은 황소의 이런 공격법처럼 시장이 위로 올라가는 상승장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곰이 공격을 할 때는 상대를 잡아 땅으로 내리꽂기 때문에 bear market은 하락장을 의미하게 됐다고 합니다.
또다른 설에 의하면 1800년대 미국에서 곰 가죽을 팔던 상인들이 가격 하락을 예상할 즈음 구매자들에게 높은 가격으로 예약 판매해 폭리를 취하던 데서 ‘bear market'이 유래했다고 해요. bull은 예전에 화폐를 가리키던 'bulli'라는 말에서 유래해 ‘돈을 많이 버는’ 상승장을 의미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이러저러한 연유로 거래소 안 동상은 황소가 곰을 쓰러뜨리고 있는 모양을 취하고 있는 거랍니다. 이렇게 황소가 곰을 쓰러뜨리고 있는 장면을 포착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하다고 하네요. 그만큼 한국거래소의 상승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전 세계적으로도 증권가에서 황소상은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증권거래소 앞에도 금방이라도 앞발을 짚고 일어날 듯이 근육이 불끈불끈한 실물 크기의 역동적인 황소상이 있습니다.
이 황소는 디 모니카라는 이탈리아 예술가가 1987년 정크본드 붕괴와 함께 나타난 증시폭락이 다시는 재현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몰래 갖다놓았다고 하죠.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화가 난 미국 시민들이 시위를 벌인 장소도 바로 이 황소상 앞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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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권거래소 앞 황소상. 출처=플리커 |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는 다른 데보다 앙증맞고 귀여운 황소상과 곰 상이 있습니다. 얼마 전 2월경 미국 증권거래소와 독일 증권거래소가 합병한다는 소식으로 ‘두 황소의 합방’이 증권맨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두 황소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나아갈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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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의 황소와 곰상은 다른 곳의 황소, 곰상과 비교하면 조금 귀엽습니다. 출처=위키피디아 |
최근 미국을 호령하는 중국 상하이 금융가에도 붉은 황소상이 있는데, 미국을 의식해선지 미국 월가 황소를 만든 제작자에게 부탁해 거의 똑같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황소와 비교하면 황소가 쳐다보는 방향만 약간 다르고, 중국인이 좋아하는 색인 붉은색을 칠했습니다.
홍콩의 증권거래소에도 황소상이 있는데, 생긴 것이 영락없는 물소라고 합니다. 얼마 전 홍콩 증시가 폭락할 때 홍콩 사람들이 “황소가 아니라 물소라서 주가가 떨어진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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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증권거래소 앞 황소상. 물소같이 생겼나요? 출처=플리커 |
BRICs를 대표하는 인도 증권거래소에 있는 황소상은 중개인들이 이 동상의 방향을 바꾸자고 요구하는 홍역을 치렀다고 하죠. 유명한 점성가가 "황소상의 엉덩이가 사무실을 향해 있는 것은 불길한 징조"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황소장, 즉 상승장에 대한 욕구는 큰가 봅니다.
지난 화요일 코스피지수가 2130.43으로 장을 마감해 종가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하죠. 지난 1일 세운 종전 최고치 2121.01을 장 개시 이틀만에 또 다시 경신한 겁니다. 일본 대지진과 중동사태 등 해외 악재를 넘어섰고, 외국인들의 ‘사자’ 열풍이 불고 있어 이달 중에 2,200선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하네요. 황소가 계속해서 뿔로 치받는 형상입니다. 앞으로 한국 황소가 계속해서 힘을 써 줄지, 지켜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