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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화 위해 싸웠던 참전용사 희생과 헌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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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혁 기자 | 박주연 기자 | 김서윤 기자

승인 : 2024. 06. 06. 16:33

[르포] 전쟁기념관 가보니
"직접 눈으로 보고 들으니 안보현실 와닿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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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한 중학생이 회랑 전사자 명비에 새겨진 해외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바라보고 있다. /박주연 기자
벤 알드리지, 토마스 앨런, 존 블런트.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새겨진 참전용사의 이름을 바라보던 작은 소녀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스리지 못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그 아들·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고 쓰여진 글을 나지막이 되뇌던 소녀는 유엔(UN)군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손으로 가리키며 머나먼 타국에서 자유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그들의 헌신에 감사함을 전했다.

6일 현충일에 찾은 전쟁기념관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의 영웅'을 조용하고 엄숙하게 추모하고 있었다. 혹독했던 전쟁의 기억, 그 기억을 통해 교훈을 얻고, 미래 세대가 통일을 이루기 위한 밑거름이 되고자 안보 교육의 장으로 1994년 6월 10일 문을 연 전쟁기념관은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전쟁기념관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국군용사들과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녹아있는 추모공간이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 본관 왼쪽과 오른쪽으로 'ㄷ'자처럼 이어진 회랑엔 전사자 명비가 200여개 세워져 있다. 이 명비에는 창군이래 전사한 국군과 경찰 약 17만명과 유엔군 참전용사 약 4만명 등 21만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전쟁기념관을 찾은 유엔군 참전용사들과 참전용사 유족들은 전사자 명비를 보며 크게 놀라워하며 감사해 하고 있다. 한국을 여행 중인 미국인 매튜 리브니체크씨(22)는 "6·25전쟁 당시 미군의 사망자 수가 3만6000명이 훌쩍 넘는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희생된 용사들의 수를 보면서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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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보이는 6·25전쟁 상징 조형물. 이중 탑은 청동검과 생명나무의 두가지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는데 청동검은 유구한 역사와 상무정신을, 생명나무는 한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뜻한다. /김서윤 기자
전쟁기념관 정문을 들어서니 높다랗게 서있는 6·25전쟁 상징 조형물이 맞이했다. 청동검 모양의 6·25탑과 38인의 호국군상이 시선을 끄는 이 조형물은 6·25전쟁 정전 50주년을 맞아 2003년 설치됐다. 가족들과 함께 이 곳을 방문한 문성진씨(48·전북 익산)는 아이들에게 조형물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문씨는 "아들이 최근 인천상륙작전 영화를 보더니 한국 전쟁을 궁금해했다"며 "현충일을 맞아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우리나라가 어떤 분들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는지 직접 알려주고자 전쟁기념관에 왔다"고 말했다.

전쟁기념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최근 늘고 있다. 전쟁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누적 관람객은 107만7017명으로 역대 최다규모다. 현충일을 맞은 이날은 어린이집 4~5살 유아들부터 초·중학생들까지 단체로 전시실 구석구석을 돌며 각종 전쟁 유물을 관람하고 참전용사들을 추모했다. 목운중학교 1학년 강은우양(13)은 "전쟁기념관에서 미사일을 실제로 보니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커서 놀랐다"며 "눈으로 직접 보니 한국전쟁에서 많은 용사가 희생을 치렀다는 것을 알게 돼 애국심이 더 커졌다"고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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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대형장비실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이 전시된 탱크를 살펴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김서윤 기자
북한의 군사적 위협 수위가 높아지면서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는 관람객도 있었다. 경기 광명에서 왔다는 황모씨(38)는 "우연한 계기로 전쟁기념관에 왔다가 수 많은 희생자 명단을 보면서 엄숙함을 느꼈다"며 "최근 오물풍선과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접하고 나니 우리나라라 아직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국방과 안보는 피부로 몸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쟁기념관엔 선사시대부터 우리 민족이 겪은 대외 항전의 역사와 일제강점기, 6·25전쟁, 베트남전 파병까지 근·현대 전쟁사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이날에도 수많은 관람객들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을 기리는 '호국추모실'을 시작으로 고조선시기, 삼국시대 등 시대별 고대 한반도의 무기와 전쟁사를 담은 전쟁역사실, 광복이후 6·25전쟁 발발의 배경부터 전쟁 경과, 휴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은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대형장비실 등에서 우리나라 전쟁사를 체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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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 6·25전쟁실에 전시된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한 고 이우근 학도의용군이 쓴 편지의 일부분. 고 이우근군을 비롯한 학도의용군 71명은 1950년 8월 10일 포항여중에서 북한군 제5사단을 상대로 11시간을 버텨내며 우리 육군 3사단이 재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이 이야기는 영화 '포화속으로'로 재현됐다.
6·25전쟁 시 유엔군의 지원을 받았던 우리나라는 이후 해외파병을 가기도 했다. 1964년 발발한 베트남전쟁에 대한민국 청년들은 총을 메고 전장으로 향했다. 이날 해외파병실에서 만난 방효길씨(77)는 지하동굴 전시장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방씨는 "1968년부터 2년간 베트남 닌호아에서 파병생활을 했었다.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 때 나는 고작 21살이었다. 전쟁이 고됐었지만 다행히 살아 돌아왔다. 당시 기억을 잊지 못해 매년 6월 6일이면 전쟁기념관을 찾아온다"고 말했다.

전쟁기념사업회는 이날 기념관 평화의광장에서 그림대회와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부스 등을 마련했다. 육군 1군단의 태권도 시범과 해병대 군악·의장 행사도 열었다.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은 "현충일에 전쟁기념관에 와서 나라 사랑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많은 어린이들이 참여해 현충일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환혁 기자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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