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시장 맞춤 GPU 전략 가속
신기술 구체적 성과 위한 행동 필요
삼성 사법 이슈에 일정 악영향 우려
◇골든타임 톱니바퀴…숨가픈 '오너의 시간'
26일 재계에 따르면 내년은 팬데믹 이후 달라진 반도체 판도를 가늠 할 중요한 성적표가 다수 공개된다. 올 3분기 누적으로만 12조원 넘게 적자를 낸 반도체 수익을 얼마나 큰 폭으로, 빠르게 회복하는 지가 첫번째다. 또 글로벌 공급과잉 중 경쟁사 SK와 5% 미만으로 좁혀진 D램시장 점유율은 다시 예전처럼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을 지, 차기 각축장이 될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누가 선점하느냐가 주목 할 포인트다.
증권가에선 내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올해 7조원대의 4.5배가 넘는 33조원 규모로 전망하고 있다. 감산 이후 시장에 풀린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며 회복 중인 반도체 판매단가, 생성형 AI가 떠오르며 급격히 수요가 늘고 있는 고가의 HBM 사업의 영향이다.
향후 삼성 성적표가 '어닝 서프라이즈'냐 '어닝쇼크'냐는 리더의 역량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이재용 회장이 올해보다 더 바쁜 일정을 소화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외 큼직한 반도체 생산거점의 완공을 기념하는 자리를 직접 찾는 현장경영은 기본이다. 국내에선 평택 공장의 네번째 팹인 P4의 외관공사를 올 연말 마무리 하고 내년 상반기 첫 가동할 전망이다. 경기침체 여파와 인프라 사정 등으로 착공일정이 당초 계획보다 지연됐지만 P5, P6 건설을 위한 부지도 마련 된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에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170억달러(약 21조원) 규모 파운드리 공장 건설이 한창이다. 초미세 4나노 공정의 반도체가 양산 될 이곳은 내년 하반기 가동에 들어간다. 미국 현지 빅테크 기업들을 고객으로 삼아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이 3배 이상 벌어진 TSMC와 한판 승부를 벌일 핵심 거점이다.
커지는 생성형 AI 시장에 맞춘 삼성의 GDP(GAA·D램·패키징)전략은 내년 본격화 된다. 기존 대비 전력효율이 70% 좋아지고 대역폭과 속도까지 높인 온디바이스 AI 특화 HBM 양산을 시작하는 동시에, 3나노 GAA 2세대 공정으로 시스템반도체 영역에서 승부를 봐야한다. 여기에 첨단 패키징 공정으로 특유의 경쟁력을 쌓아야 하는 게 과제다. 실제로 HBM 생산능력은 내년 2분기께 지금의 약 3배 규모로 키우기로 하고 설비 증설이 한창이다.
제품 경쟁력을 쌓았다면, 세일즈가 필수다. 이 회장은 내년 엔비디아·AMD 등 빅테크 기업 이외에도 테슬라와 글로벌 완성차업체까지 다양한 글로벌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총력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미래 먹거리를 찾아 투자하는 결단의 시간도 필요하다. 올해 이 회장은 미래기술사무국에 이어 미래사업기획단을 잇따라 신설하고 단장 자리에 전영현 삼성SDI 이사회 의장을 앉힌 바 있다. 10년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의지다. 반도체와 배터리·로봇·AI·XR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발굴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곧 대규모 M&A를 단행하겠다는 예고 이후 2년째 이를 구체화 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이 독자 개발한 AI 신기술은 내달 중순 첫 공개되는 갤럭시S 24에 담긴다. 폰 하나로 실시간 통역이 가능한 신세계를 열겠다는 구상이다. 경쟁사 보다 한발 앞선 혁신으로, 폴더블과 함께 애플을 이겨 낼 비장의 무기로 꼽힌다. 모든 IT 기기를 하나로 묶어 앱 하나로 통제하는 '스마트싱스' 청사진과 세계 보급률 1위 TV 플랫폼으로 스트리밍 시장을 열어 수익을 내겠다는 거대한 계획도 구체적 성과를 내기 위한 액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회장이 글로벌 전략회의와 사장단 회의 등을 열어 전 계열사와 머리를 맞대고 역량을 짜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재계가 입을 모은다.
◇운명의 1월 26일…최대복병은 사법리스크
미국·중국·EU 등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자국 산업육성책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비집고 자리 잡지 않으면 시장에 발도 디딜 수 없게 된다. 제품을 팔고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선 글로벌 원료·부품 공급망을 완전히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AI가 바꿔가는 생활 트렌드를 발빠르게 따라가며 시장을 주도까지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오너가 반드시 발로 뛰어 챙겨야 할 일이다.
100년 삼성 기반이 될만한 중대한 업무가 산적했지만, 이 회장의 내년 숨가뿐 일정의 시작은 1월 26일 있는 선고부터다. 첫 단추가 끼워지지 않으면 모든 일정에 악영향을 주거나 차질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재계에서 나온다.
지난 11월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이 승계를 위해 부당하게 진행됐다는 게 검찰 해석으로, 이 회장은 "개인의 이익을 염두에 둔 적이 없다"고 최후진술서 10분간 설명했다.
이 회장 최후진술에는 삼성의 속 타는 현실이 그대로 담겼다. 이 회장은 "지금 세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고 우리는 그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며 "글로벌 공급망이 광범위하게 재편되고 생성형 AI 기술이 반도체는 물론 전세계 사업에 영향을 끼치는 등 상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술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기업가로서 지속적으로 회사에 이익을 창출하고 미래를 책임질 젊은 인재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기본적 책무가 있다"며 "부디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한 바 있다.
재계에선 이 회장 선고 향방이 삼성 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변곡점이 될 정도의 중차대한 문제로 보고 있다. 송덕진 금융연금보험부동산연구원 원장은 "올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이벤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며 "이렇게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삼성만큼 트랜디해야 하는 회사가 투자와 경영적 판단이 지연되면 결국 시장을 잃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송 원장은 "이재용 회장이 얘기한대로, 온전히 역량을 집중할 수 있어도 부족할 판에 또다시 역량을 흐트러뜨릴 상황을 만들어선 안된다"며 "이건 삼성을 넘어 국가 경제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