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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프로복싱 바닥 쳤다...머지않아 인기 되찾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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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혁 기자

승인 : 2018. 11. 11. 15:00

중흥 이끄는 '전설의 주먹' 장정구·유명우·문성길
문성길, 장정구, 유명우 인터뷰
한국 권투의 전성시대를 주름 잡았던 문성길(왼쪽부터), 장정구, 유명우 전 챔피언들이 최근 서울 논현동 KBF 사무실에서 아시아투데이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송의주 기자songuijoo@
“한국 복싱, 내가 볼 땐 못살아나요.” 장정구(55·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가 ‘한국복싱의 부활’에 대한 질문에 특유의 시니컬한 어투로 답했다. 부산이 고향인 장 챔프는 무뚝뚝하게 대답했지만 그 본심에는 한국 복싱에 대한 염려가 담겨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침체를 겪기 시작한 한국 복싱은 2007년 한국의 마지막 챔피언 지인진이 벨트를 자진 반납하고 프로복싱 무대를 떠난 이후 10년이 넘도록 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권투인들은 지금이 한국 복싱의 최악의 시대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챔프들은 이제는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한국 복싱계는 영역을 넓히고 세계 복싱 기구와의 교류도 이어가면서 국제 무대에 다시 나설 날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8일 서울 강남구 대청중학교 특설 링에서 열리는 한국권투연맹(KBF) 주관 워리어스 인비테이셔널 KBF-KBM(복싱매니지먼트코리아) 라이벌전을 앞두고 ‘짱구’ 장정구, ‘작은들소’ 유명우(54·전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 ‘돌주먹’ 문성길(55·전 WBA 벤텀급·WBC 슈퍼플라이급 세계챔피언) 등 왕년의 챔프들이 최근 서울 논현동 KBF 사무실에 모였다.

◇ 국내 복싱 저변 다지는데 주력…가난한 운동이란 인식 개선해야

“저는 1982년 뉴델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지만 나이 서른 넘어서 군대 갔다 왔어요. 병역 문제로 시끄러운데 나도 국가에 소송 걸어도 되나요?”
문성길은 최근 불거진 축구선수 장현수의 병역특례 봉사활동 서류조작 논란에 대해 자신의 ‘군대간 썰’을 이야기하면서 크게 웃었다.

문성길은 1987년 3월 프로에 데뷔했다. 아시안게임 2연패, 한국 복싱 최초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따내며 아마추어와 프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던 챔피언이다. 그는 금메달을 땄지만 군대에 갔다. ‘병역 특례에 5년간 해당 분야 복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던 것을 몰랐다.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프로 데뷔 전까지 4년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한체육회도 병무청도 조건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억울했지요. 대한민국에 금메달 따고도 현역 입대한 건 나 밖에 없을 겁니다.”

챔피언들은 프로에서도 병역 면제 같은 혜택이 있으면 선수들의 진입장벽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유명우는 “과거에는 복싱으로 금메달을 따도 군대가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어요. 아직도 적지만 열심히 하려는 선수들이 있어요. 복싱판이 커지고 병역혜택 같은 동기부여가 있으면 더 큰 꿈을 갖는 선수들도 늘어날 거에요”라고 말했다.
문성길, 장정구, 유명우 인터뷰
KBF 서울 사무실에 모인 연맹 관계자들과 전 챔피언들. 문성길 챔프(왼쪽부터 시계방향) 김응표 한국권투연맹 부회장, 이인경 한국권투연맹 회장, 김성욱 전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 장정구 챔프, 유명우 챔프. /송의주 기자songuijoo@
이어 그는 “현실적으로 선수들 파이트머니 많이 주고 상황이 좋아지면 복싱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늘겠죠. 미래가 안보이니까 하는 사람이 없어요. 아마추어는 지자체에 팀이 다 있죠. 연봉 많게는 1억원씩 주니까 거기는 선수가 많아요. 하지만 프로로 오지 않으려 해요. 돈이 안되니까. 사업성이 확보돼야 한국 복싱이 살아날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프로 선수들은 아직까지도 생활이 어렵다. 한국챔피언을 해도 받는 파이트머니(대전료)는 약 300만원(실수령액 기준)에 불과하다. 이것이 10회전을 뛰는 한국 프로복서들의 현주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복싱체육관들은 살길을 찾았다. 전문 프로선수를 길러내던 링이 시민들의 다이어트와 건강관리를 위한 곳으로 바뀌었다.

장정구는 복싱에 대한 편견에 대해 꼬집었다. “복싱도 이제는 생활체육으로 바뀌었어. 즐기면서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체육관은 운영이 돼요. 하지만 선수할 사람이 없어요. 아직까지 복싱한다하면 못 먹고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꿈이 없고 목표가 없으니까 가르쳐봐도 이해하는 속도가 더뎌요. 연구를 안하니까.”

그는 골프선수 박세리(은퇴)를 예로 들었다. “박세리 선수가 미국여자골프 무대에서 우승하고 난 뒤 우리나라에 골프인구가 얼마나 늘었습니까. 세리키즈들이 자라난 지금 많은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잖아요. 미국과 일본처럼 잘사는 나라에서도 프로복싱은 여전히 최고의 스포츠에요. 부모세대들과 우리 세대들의 (가난한 운동이라는)인식을 바꿔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죠. 우리 자식세대, 손자세대에서나 인식이 바뀔까.”

◇ 복싱은 정신력…한국 복싱의 작은 불씨 키워내야

“신인 때 우리 관장님한테 다른 체육관서 운동하고 왔다고 1시간 반 동안 얻어 맞았어요. 얼마나 때려버렸는지 얼굴이 땡땡 부었었지요. 체육관에 오면 문이 안 열려있는데, 옆 체육관에 가니 사람도 바글바글하고 운동하기 좋은거에요. 그래서 옆 체육관서 했는데 거기 갔다고 얻어 터졌지 뭡니까. 그렇게 맞고도 다음 날 체육관에 운동하로 나갔어요.”

문성길은 신인시절 겪었던 이야기를 풀었다. 당시에 선수들은 세계챔피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운동했다. 그는 “우리 세대 복싱 선수들은 열심히 해서 크게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했는데 요즘 체육관에 입관하는 사람들은 복싱에 대한 꿈도 없고 그냥 좀 배워보자고 들어와요. 스파링도 안해보고 관두는 사람이 태반이라니까요. 복싱에 대한 각오와 생각이 우리 세대 때와는 달라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문성길, 장정구, 유명우 인터뷰
김응표 KBF부회장, 문성길 챔프, 장정구 챔프, 유명우 챔프. 김성욱 전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 이인경 KBF 회장. /송의주 기자songuijoo@
체육관과 프로모션을 운영하면서 KBF의 실무 부회장까지 맡고 있는 유명우는 선수를 육성하고 1년에 4~5회 대회를 개최하는 등 현재까지도 복싱계 일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선수가 되려고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대우도 못 받으면서 세계챔피언의 꿈을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꾸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선수들은 선배들이 응원해줘야죠”라고 말했다.

챔피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팬들을 위해 좋은 경기력을 우선 갖춰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유명우는 한국복싱이 암흑기에 처해 있지만 희망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다고도 했다.

“팬들은 이미 전문가 수준이 됐어요. 선수들도 지도자들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기량으로 좋은 게임을 보여야 팬들한테 어필할 수 있지 왠 만큼 해서는 안됩니다”라며 “한국 복싱이 많이 잊혀졌어요. 팬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는 시간도 투자도 선수들이 노력하는 모습도 어우러져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죠.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있어 희망은 있습니다.”
지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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