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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앙은행(ECB)은 오는 3일(현지시간) 추가 양적완화 방안을 내놓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할 전망이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08년 이래 처음으로 오는 16일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양대 축이던 ECB와 연준이 다른 방향의 통화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1994년 이래로 21년 만이며 1999년 ECB가 설립된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 ECB “저성장·디플레 위험” vs. 연준 “실물경제 튼튼”
ECB는 이번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양적완화를 시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ECB의 추가적인 양적완화책이 필요한 것은 유럽 경제가 낮은 물가상승률과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통계청(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물가 상승률은 10월 기준 0.1%에 불과하다.
9월 한때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내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나온 것을 고려하면 소폭 오른 셈이지만 여전히 목표치인 2%에는 크게 못 미친다.
유로존 경제성장률 역시 회복세가 둔하다.
올해 3분기 유로존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6% 성장했다. 직전 분기 대비로 환산하면 성장률은 0.3% 수준이다.
게다가 지난달 파리에서 일어난 연쇄 테러로 내수 위축 우려가 커지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이와 관련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기존의 국채 매입 프로그램 연장을 포함한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겠다고 수차례 시사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사정은 다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면서 고용, 성장률 등 실물경제를 나타내는 지표가 모두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10월 비농업부문 고용이 27만 1000명 증가하면서 올해 최고치를 찍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3분기 GDP 성장률 수정치도 전기대비 연율로 2.1%여서 시장 전망치에 부합했다. 직전 분기 성장률은 3.9%로 올해 미국은 줄곧 좋은 성적을 냈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핵심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증가율은 아직 1.3%(10월 기준)로 목표치인 2%에는 미달했지만 미국 경제가 견조해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경제 부양을 위해 지속해 온 ‘제로’(0) 금리 정책을 중단하고 연내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고 줄곧 시사해왔다.
연준은 이달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 유럽·미국 21년 만에 ‘제 갈 길’…그린스펀 쇼크 재발하나
유럽과 미국 중앙은행이 21년 만에 처음으로 정반대의 통화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시장의 불안이 한층 커지고 있다.
과거 유럽과 미국이 상반되는 통화정책을 펼칠 때에 국제 금융시장은 큰 폭으로 출렁거렸다.
1994년 5월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통일 이후 물가 안정을 위해 올렸던 기준금리를 낮췄다. 연 5.00%에서 4.50%로 기준금리를 조정한 것이다.
반면, 같은 달 연준은 저금리 시대를 마감하고 3.75%를 4.25%로 올렸다.
연준이 예고 없이 1년 만에 기준금리를 6.00%까지 빠른 속도로 올리면서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의 주식이 폭락했다.
미국 채권시장에는 ‘대학살(Bloodbath)’이라 불리는 채권가격 폭락 사태가 벌어졌으며 멕시코는 외환위기를 맞았다. 이를 당시 연준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의 성을 따서 ‘그린스펀 쇼크’라고 부른다.
현재는 중국 경기둔화로 세계 경제가 취약한 상태인데다 달러 강세가 두드러져 세계 경제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 유럽과 미국이 상반된 통화정책을 펼치면 양쪽 모두 원하는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유럽으로서는 돈을 풀어 물가가 오르기를 기대하지만 이 자금이 모두 미국과 달러 자산에 쏠릴 가능성이 크다. ECB로서는 막대한 자금을 풀고도 원하는 물가 상승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미국은 유럽의 양적완화로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실물경제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가장 불안에 떠는 것은 유럽과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금융시장이다.
ECB가 창립된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글로벌 불균형이 벌어지면서 전 세계 자금이 모두 미국으로 몰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럽 자금은 통상 신흥국의 젖줄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면 국제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한국 역시 영향을 받게 된다.
소시에테제네랄(SG)의 미찰라 마르쿠센 이코노미스트는 ECB와 연준의 정책 차별화가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앞으로 연준이 2018년초까지 기준금리를 2.75%까지 인상하는 반면, 그때까지 ECB는 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