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인들의 경우 의혹이 제기된 시점을 기준으로 공소시효가 만료됐거나 성 전 회장이 자살 직전 남긴 메모 외에는 뚜렷한 금품전달 증거나 진술들이 나오지 않은 상태인 만큼 이번 검찰 수사의 성패가 두 사람에 대한 수사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성 전 회장은 사망 직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자필 메모에 ‘홍준표 1억’이라고 썼다. 그리고 이완구 전 총리의 경우 메모에는 따로 금액을 적지 않고 이름만 적었지만 자살 직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전 총리를 ‘사정 대상 1호’로 지목하며 2013년 4월 자신이 선거사무소를 찾아가 직접 3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이 전 총리의 소환조사를 하루 앞둔 13일 이 전 총리의 최측근인 김민수 비서관을 소환해 조사했다. 김 비서관은 이 전 총리의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된 당시 선거 캠프에서 자금관리 등 선거 실무를 맡았던 인물로 의혹이 불거진 이후 이 전 총리의 전직 운전기사 윤모씨를 회유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 중간 전달자 유무 가장 큰 차이
검찰 수사와 관련해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중간 전달자의 유무다.
홍 지사의 경우 공여자인 성 전 회장과 홍 전 지사 사이에 성 전 회장의 최측근인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끼어있다. 검찰은 그로부터 자신의 부인과 함께 쇼핑백에 돈을 담아 국회 의원회관으로 홍 지사를 찾아가 돈을 전달했다는 진술까지 확보해 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 전 총리의 경우 지난 2013년 4월 4일 부여 선거사무소에서 이뤄진 두 사람의 독대 자리에서 돈이 전달됐다는 것으로 공여자와 수수자 사이에 개입된 제3자나 목격자가 없는 상황이다.
이는 돈이 전달됐느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있어 큰 차이를 갖는다.
재경 지검의 부장검사 A씨는 “이 전 총리가 ‘성 전 회장을 알고 지냈고 만난 적도 있지만 돈은 안 받았다’고 하면서 검찰에서 조사 받을 때 변호사 참여하에 묵비권을 행사하면 최초 공여자인 성 전 회장이 이미 사망한 상황에서 돈을 전달했다는 다른 진술이나 증거 없이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점은 홍 지사도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지적했다. 당시 홍 지사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달리 검찰에 자신의 일정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상대방이 자살한 이 전 총리와 달리 나는 돈 전달자로 지목된 사람이 말을 지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리와 달리 중간 돈 전달자로 지목된 윤 전 부사장의 진술을 깨트려야 하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때문에 이 전 총리의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해서는 초기부터 과연 2013년 4월 4일 문제의 장소에 두 사람이 같이 있었는지, 독대가 이뤄졌는지에 집중됐다. 일단 검찰은 참고인 진술과 차량 위성항법장치(GPS) 기록 등을 통해 두 사람의 동선을 확인, 사건 당일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 이완구 전 총리 혐의 입증 쉽지 않아
하지만 문제는 검찰이 두 사람의 만남을 입증하더라도 과연 ‘만났다는 건 돈이 전달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한지다. 아무리 선거를 치르는 시기였고, 통상 그 같은 만남이 이뤄질 때 정치자금이 전달되는 게 관행이라 해도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수사나 기소를 정황만으로 밀어붙이긴 어렵기 때문이다.
A씨는 “성 전 회장이 다시 살아나거나 아니면 성 전 회장의 집사가 그날 얼마를 어디서 찾아서 어디서 비타 500박스를 구해서 혹은 쇼핑백 봉투에 넣어서 어디서 만나 전달했다는 정도의 진술이 나오지 않는다면 혐의 입증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검사 B씨는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어차피 통상의 뇌물사건에서 돈을 받은 사람은 부인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검찰은 이 전 총리에게 전달됐다는 돈을 준비하는데 관여한 사람 등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될 텐데 여러 가지 정황상 아귀가 맞으면 기소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렵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처음 ‘3000만원 수수’ 의혹이 제기됐을 때 “돈을 받은 증거가 하나라도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한 이 전 총리의 대응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대검 소속 C부장검사는 “이 전 총리가 ‘검찰에 가서 말하겠다’거나 아니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다’는 식으로 뜬구름 잡는 얘기를 했어야 되는데 너무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바람에 이후 본인 진술과 다른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의혹을 부풀린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D검사는 “이 전 총리가 그렇게 말했을 때는 검찰이 죽은 성 전 회장 외에는 증거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거나, (수사 관련) 검찰 내부 정보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백성문 변호사(비앤아이 법률사무소)는 “홍 지사 사건의 경우 현금 1억원의 존재는 일단 확인이 됐고, 윤 전 부사장의 배달사고가 있었는지 아니었는지가 문제되는 상황인 반면, 이 전 총리 사건은 현금의 존재 자체가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검찰 입장에서는 현금이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그 돈이 어떻게 마련됐고 어떤 형태로 전달됐는지 등을 모두 입증해야 하는 만큼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아직 돈이 전달된 시기가 2013년 4월 4일인지 7일인지 확실하게 특정하지 않고 있는데 일단 이 전 총리 측에서는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 주장을 하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일단 만났어야 그 다음에 돈이 오갔다는 사실을 검찰이 입증할 수 있는데 결국은 돈을 전달했다는 성 전 회장의 수행비서 금모씨 진술의 신빙성에 따라 결과가 갈릴 것 같다”고 내다봤다.
◇ 상대적으로 적은 수수액…영장 청구 가능성에서도 차이
이 전 총리의 수수액이 3000만원으로 비교적 소액이라는 점도 홍 지사와 다른 점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1억원 수수 의혹이 제기된 홍 지사에 대해서도 그동안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영장 청구 기준을 ‘2억원 이상’으로 설정했던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때문에 이 전 총리의 경우 검찰이 참고인 진술이나 GPS 기록 등 증거를 통해 금품수수 사실을 입증하더라도 불구속 기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검사 출신 변호사 E씨는 “수수액이 3000만원이면 설사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니라 뇌물수수로 간다 해도 특가법이 적용되는 거도 아니고 형법상 뇌물죄 사건인데, 국세청장 같은 공무원도 아닌 정치인 신분에서 그 정도 돈을 받았다면 구속영장을 청구할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차이 때문인지 두 사람은 검찰 수사에 대한 대응도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홍 지사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수시로 공개하고 검찰 조사 직후에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적극 해명에 나선 것과 달리 이 전 총리는 퇴임 이후 일체 수사 관련 언급을 자제한 채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수사팀은 두 사람에 대한 검찰 수사는 원래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홍 지사를 조사하면서 돈을 받은 일시, 장소를 특정해 묻지 않은 것 역시 피의자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사건에서의 통상적인 수사기법이라는 게 검사들의 얘기다.
검찰로선 다른 6명은 둘째 치고 일단 홍 지사를 구속시키거나 최소한 두 사람을 기소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야 최소한의 수사 성과라도 건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홍 지사의 경우 과연 법원에서 윤 전 부사장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 돼 유죄가 선고될지, 이 전 총리의 경우 기소 자체가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