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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코리아글로브 공동 광복 70주년 특집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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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기자

승인 : 2015. 01. 02. 07:00

'백성'도 '시민'도 아닌 '국가적 개인'이 새로운 문명 만들자
신년대담2
아시아투데이 박성일 기자 = 신년대담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창현 금융연구원장,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오른쪽 아래부터 시계방향)


출연자(가나다 순)
1.김명섭 연세대 교수(국제정치)
2.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3.양승태 이화여대 교수(정치사상)
4.윤창현 금융연구원장
5.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장소 및 일시
2015년 1월 1일 본사 7층 회의실

아시아투데이와 코리아글로브는 광복 70년을 새해를 맞아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진단하는 특집좌담회를 열었다. 다음은 그 내용 전문
김명섭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
양승태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새롭게 건설한 70년이 되면 그 시대가 대략 융성기가 된다. 창업세대라는 것이 민심도 잃고 사람도 많이 죽게 되고 새로운 기반을 닦으려다보면 여러 혼란을 겪는다. 그러나 70년이 되면 3세대로 넘어가서 안정된 분위기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구상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는 융성기가 시작된다.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 융성기 때 온갖 사회문제가 폭발적으로 드러나고 있고 국가 경영차원에서 감당을 못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 미래를 이끌고 새로운 국가생활을 창조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왜 우리가 이런 상황에 있는가 그 자체가 사실 오늘 논의의 주요 주제가 될 것이다.

한국과 동북아 문제는 일단 세계사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동북아 지역에서 진행된 가장 의미 있는 문명충돌이 19세기 일어났던 거대한 중화질서와 서구문명간 충돌이다. 이것이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번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것인가. 과거에 대한 진정한 성찰 속에 미래에 대한 요소를 발견하면서 진정한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

양승태
김명섭 연세대 교수.
김명섭

“2014년에 한국 정치외교사적으로 기억한다면 아주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사건이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세월호 사건이고 하나는 통합진보당 해산이다. 세월호 사건은 산업화의 치부, 통진당 사건은 민주화의 이면 치부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이다.

통진당 사건의 경우 민주화라는 흐름 속에서 보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경고하고 했지만 그냥 덮어버리고 왔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2015년까지 이어져오는 것인데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축을 국내적인 시각에서만 보지말고 세계사적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갈등을 넓은 틀에서 볼 수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분법이 아니고 두 세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던 측면을 보고 세계적인 틀에서 볼 때만, 좁히면 유라시아의 틀에서 볼 때 유기적인 연관관계가 드러난다.

우선 우리는 2015년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1945년 이전의 70년을 봐야 한다. 1875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조약이 체결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천도열도를 일본이 다 차지하게 되고 사할린은 러시아가 차지하게 되는 교환이 이뤄진다. 일종의 중요한 하나의 선이 그어지는게 1875년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나. 바로 1년 후에 일본이 강화도로 치고 들어오게 된다.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어느정도 세력선이 확정됐기 때문에 그 다음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선이 바로 조선반도였다.

그런데 우리는 1876년 개항과 강화도 조약만 가르친다. 그것이 근대화 시작이라고 가르쳤다.조약은 아니고 조·일수교조교였는데 체결된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서서히 우리가 세계사적 흐름 속으로 들어간다.

2015년은 또 다른 의미에서 빈 평화체제 수립 200주년이다. 1815년 이후 100년간 평화가 시작되는 빈 평화체제가 나폴레옹 전쟁을 끝내면서 수립됐다. 그것이 수립되는 기초는 국제법, 국가간 약속에 기초해서 우리가 서로 전쟁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말로써 전쟁을 멈췄다는 것 그것을 조약을 통해 확정했다는 것이다. 국제법적 의미에 있어서 평화체제 속으로 우리가 들어갈 것이냐 그 전 전쟁상태로 들어갈 것이냐 하는 중요한 세계사적 흐름과 만나게 되는 것이 1875~6년 상황이었다. 광복 70주년에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광복 이전 70년의 역사다. 광복이 어떻게 왔냐고 하는 것을 다시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세동점은 한국사나 역사교과서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다. 서세동점이라는 역사를 우리가 이분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복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서세동점은 인위적으로 서양 백인 영·미권 문명의 확장과 그것에 대항하는 동양문명을 이분법으로 본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이것이 나중에 대동아공영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상이었고, 놓치고 있는 포인트가 러시아 쪽으로부터 내려오는 또 다른 서양이 있었다는 것을 봐야 한다.

이 시기 역사를 너무 서세동점으로 보면 인류학적 접근방법을 놓치게 된다. 이 당시에 존재하고 있던 또 다른 복합이 한족과 만주족간 투쟁의 역사였다. 1850년대 등장했던 태평천국 운동에서도 내걸었던 것이 멸만흥한이었고, 1911년 신해혁명에 의해 청나라가 무너질 때 혁명의 중요한 구호도 멸만흥한이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중화민국이 참전국, 승전국이 됐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국제적 목소리를 갖게 됐고 그래서 청제국이 가지고 있었던 광역을, 한족이 중심이 된 중화민국이 그대로 계승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 시기 광복 이전의 역사를 볼 때 어떠한 이분법적으로 보지 말고 복합적으로 보면 새로운 역사들이 보이게 된다. 그런 것을 가지고 2015년 앞으로의 70년을 봐야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광복 이후 70년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사건은 6·25전쟁이라고 본다. 정전협정에 의해 사실상 정지가 되고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긴 평화의 시기를 살고 있는데 이것을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 질서를 만들어 낸 것은 전쟁 중에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다.

조약이 1951년에 체결되고 발효됨으로써 샌프란시스코조약 체제 안으로 1972년 중·일관계 정상화, 1979년 미·중수교가 이뤄지면서 체제가 공고화되는 것이 70년의 역사였다. 저는 이 공고화 70년의 역사가 흔들리고 있다고 본다.

흔들리는 동인은 중화문명의 힘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중화문명은 서세동점의 역사 관점에서만 보려고 한다. 중국 공산당은 쳐들어오는 서양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가장 중요한 축이었다는 것이 중국 공산당의 공식사관이고 부분적으로 맞다. 일본 서양 제국주의에 맞섰던 주축이 중국 공산당이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과거 70년을 보면 1945년 이후 70년도 그것만 가지고 보게 된다. 그 사이 존재했던 만주족의 소멸이나 작은 민족들의 갈등 문제 등은 그대로 사장돼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다시 돌려서 중화문명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은 복합적인 시각에서 봐야지 서세동점 시각에서 서양 제국주의가 물러가고 동양이 우리끼리 뭔가 해보자는 이분법적으로 가면 아마 대한민국에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질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누가돼야 하는가. 결국 민주화를 추동해왔던 각 개인들이다. 민주주의를 이끌어 낸 것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라고 본다. 개인의 인권, 개인의 자유를 추구했던 개인들의 에너지가 모여서 집단이 된 것이지 하나의 덩어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양승태

“동북아 질서의 중요한 축으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말했다. 그런데 현재 동북아 문제를 시끄럽게 하는 주요 인물이 아베 일본 총리다. 이 사람이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호사카 유지
아시아투데이 박성일 기자 = 신년대담 -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호사카 유지

아베가 집권하면서 특히 2013년이 되면서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도전하는 한마디를 던진 것이 ‘침략이라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학술적으로도 정해진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유엔에서 1970년대부터 침략을 계속 정의해왔고 거기에 일본팀도 참여했다. 2010년에는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일단 정의를 내놨다. 침략은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여러 형태로 침범하는 것이라는 정의가 있다. 일본도 참가해서 도출해냈는데도 아베는 침략의 정의가 없다고 한다. 다 알면서 하는 말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 위패가 있는데 아베는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 본질을 모르는 일본정치인이 어디 있나. 알면서 하는 것이다. 아베정권이 이제 헌법 개정도 할 수 있는데 군대가 부활되면 미국과는 같이 싸운다 그런 식으로 확실하게 싸우기 시작한다.

일본은 또 1945년 이후 처음으로 2013년 12월 국가안보전략이라는 책자를 펴냈다. 이 책자에서 일본의 아시아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북한을 적국으로 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적국은 중국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한미일 공조가 중요한데 한국과는 이견이 많다. 이 부분은 특히 독도 문제를 중심으로 설득해 나가기로 한다고 돼어 있다.

일본은 현재 한일관계가 문제가 있지만 한국을 설득해 나가면서 해결해 나가겠다. 그렇게 해서 한미일 공조로 중국을 무너뜨려야 한다. 이건 중국이 G2에 올라간 이후부터다. 일본은 과거에는 G2에서 미국 다음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 그렇게 못되고 있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국을 무너뜨리면 다시 한번 강한 일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아베신조 내각의 가장 중요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집단자위권 문제도 미국에서 강하게 요구한 것이 아니다. 미국을 붙잡기 위해 일본에서 하겠다는 식으로 미국을 끌어들인 것이다. 미국의 적국이 있는 곳은 아시아다. 다른 곳에 미국의 적국이 사라졌다.

2015년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일본은 계속 망언을 할 것이다. 그건 국민교육이다. 일본 국민들만 세뇌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자민당은 국회 3분의 2를 확보했기 때문에 헌법개정, 국회의원 찬성으로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 그 다음은 국민투표다. 그때 헌법개정해도 된다는 사람이 50% 넘으면 개정해서 자위대를 자위군·국방군으로 정식적으로 만들 수 있는 행보를 이제 시작한 것이다.

2015년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이 무라야마·고노담화를 대신할 수 있는 ‘아베 담화’를 8월 15일에 내놓겠다고 거론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승태

“이제 국내 정치문제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국내정치에서 국제정치상황을 어떤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현재 정치인들의 평소 여러 가지 담론이나 글들에서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는가. 김석규 이사께서 그런 면에서 정리를 해달라”

김석규
아시아투데이 박성일 기자 = 신년대담 -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김석규

“2014년이 갑오년이었다. 옛날식 60갑자로 따지면 1894년부터 1953년까지 60년, 1954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갑자였다. 올해 새로운 갑자가 시작된다. 첫 번째 갑자 60년에서 우리는 익숙했던 소중화 질서에 머물며 그것을 붙잡고 있다가 비극을 맞이했다. 그 다음 갑자 60년에서 우리는 국가가 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6·25 끝날 때까지 시기는 ‘백성’에서 ‘국민’으로 거듭나는 시기였다. 1954년 새로 시작하는 갑오년부터는 ‘한강의 기적’이 있었다. 또 87년 민주혁명이라는 민주주의 신화가 있었다.

세번째는 한류다. 코리아라는 브랜드로 세계를 휘저을 수 있다는, 아직 조잡하지만 그런 경험 자체를 오랜만에 한번 느껴본 것이다. 이 3가지를 틀로 해서 한강의 기적과 민주주의 신화, 한류라는 바탕위에서 1954~2013년 두 번째 갑자는 ‘국민’이 ‘시민’으로 거듭나는 시기였다.

2014년 갑오년부터 2073년 3번째 갑오가 시작됐는데 이제는 시민에서 개인으로 가야한다. 옛말대로 하면 사람이라는 말뜻 그대로 ‘홍익인간’의 가닥을 잡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아마 2015년에는 중국이 큰 선물을 줄 것이다. 동북공정을 넘어서는 역사왜곡이다. 중국은 한족 중심으로 공식역사서를 재편찬하고 있다. 유수한 대학에서 작업을 거의 완료했다고 한다.

13억의 나라에 새로 중국 중화문명의 시각으로 책이 다 깔릴 것이다. 그것이 번역돼서 세계로 나갈 것이다. 한국의 학계에서도 대응하고 언론인도 대응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중동으로 인도로 아세안으로 한반도로 연결되는 문명 소통과 역사를 재현하는 것으로 시진핑과 아베 총리의 화두에 답을 줘야 한다. 그것은 바로 유라시아 대륙이 해양으로 연결되는 ‘바다의 길’을 21세기에 재현하고 그 종착역으로 한반도를 설정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앞으로 민주화 세대들에게 우리가 만들어나갈 통일된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화두를 던져야 한다.

통일시대는 한반도 자체가 ‘메갈로폴리스’ 아니겠는가. 옛날과 전혀 다른 도시국가가 될 것이다. 하나의 시공간 생활단위로 지구마을과 어떻게 잘 어울려 놀 것인가를 던져줘야 한다. 그 다음은 전혀 달라지는 생활양식, 가족·결혼·교육·육아·일자리·노후 등 이런 화두를 던져야 한다. 이야기 판을 바꾸는 것 그것이 3번째 갑오에 나라의 운을 바꾸고 미래세대 운을 바꾸고 이웃나라와의 판을 바꾸는 새로운 답변이다.

양승태

“각 국가의 행동반경과 운영전략을 크게 제약하는 것이 재정문제와 금융질서다. 이 문제에 대해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윤창현
아시아투데이 박성일 기자 = 신년대담 - 윤창현 금융연구원장
윤창현

“지난번 북경포럼 세미나에 참석했더니 중국 교수 한 분이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1944년 얄타체제와 브레튼우즈 체제는 낡았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외교질서인 얄타체제로 분단이 되었고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금융질서인 브레튼 우즈 체제로 들어가 45년 이후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후 우리 경제에서 가장 큰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이 1985년 미일간의 프라자합의다. 이 사건 이전까지는 우리나라가 세계경제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것이 조금 힘든 상황이었다.

이 때 일본 엔이 1달러당 240엔을 하다가 120엔이 되는 놀라운 조정이 일어났다. 미국이 일본을 심하게 다뤘던 것 같다. 1000원이 500원이 됐는데 만약 우리나라 수출기업이 이런 상황을 겪으면 다 망한다.

그런데 일본은 플라자 합의를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일본이 힘들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기간동안 혼신의 힘을 기울여 중화학공업을 육성했는데 중화학공업들이 철강·자동차·석유화학·반도체 등 일본과 거의 비슷한 구조다. 일본이 A급을 만들고 한국이 B급을 만들정도까지 왔는데 플라자 합의 이후 A급 일본제가 너무 비싸지니까 B급 한국산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1986년이 강화도 110년이다. 그런데 1986년 개항 후 처음으로 110년 만에 무역흑자를 냈다. 이후 그동안 쌓아왔던 역량이 극대화되면서 급격한 경제발전이 이뤄졌다. 2000달러 수준이었던 국민소득이 그 다음부터 1000달러씩 올라가게 된다. 1986년 2000달러부터 시작해 매년 올라가서 1995년 1만1000달러가 됐다.

80년대 후반 경제성장 결과로 나타난 1인당 GDP 상승이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계속 됐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가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뒷통수를 맞는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죽어가던 좌파가 다 살아났다. 외환위기를 당하니까 자본주의 세계화하다보니 엉터리가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 극복과정을 보면 결국은 세계화를 통해 이룩한 기본적인 경상수지 흑자, 수출을 많이 하고 수입을 줄여서 달러를 벌어 빌려온 달러를 갚고 외환보유고 쌓는 방식으로 극복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네 번째는 글로벌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경제 위기’는 많은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대한민국이 그동안 잘해왔던 장점들이 단점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노령화문제가 심각하다.

그동안 많은 노력과 많은 힘든 가시밭길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해냈고 그것을 상당히 즐기고 있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갈 미래는 경제적으로 가시밭길이고 걸어보지 않은 길이다. 지도에 없는 길이 많고 생각하지 않았던 내용들이 상당히 구체화되고 있다.”


양승태

“노령화 문제와 국가재정문제 등이 닥치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 현재 정치권에서 또 경제담당 사람들이 어떤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고, 구상하고 모색하는 정책적 대안이 장·단기적으로 어떤지?”

윤창현

부동산은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과 비슷해진다. 생산가능 인구수가 줄어들고 있다. 묘하게도 부동산 하락이 생산가능 인구의 하락과 겹쳐 있다. 이제는 부동산이 투기적 재화가 아니고 옛날과 같은 수익을 줄 수 없다.

그런데 아직도 국회에서는 부동산 투기라는 말이 입에 달려있다. 환경이 바뀌면 정책도 빨리 바뀌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관료들은 상황이 바뀌는데 정책이 안 바뀐다. 부동산 정책도 이제 겨우 부동산3법이 통과됐는데 빨리빨리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의 변화 속에서는 정치권도 먹고사는 문제와 노령화에 모든 초점을 맞춰서 초첨을 바꿔야 한다.

신년대담2
아시아투데이 박성일 기자 = 신년대담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창현 금융연구원장,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왼쪽부터 시계방향)
양승태

“국가적 위기상황인데 제대로 인식을 하고 있는가. 국회의원 등이 노령화 문제에 대해 해결점을 모색하고 있는가.”

김석규

“안타깝게도 별 생각이 없다. 지금 여야 눈길은 곧 있을 20대 총선인데 거기로 쏠려 있어서 내각에서 조금 신경쓰지 야당은 전당대회 한다고 암담한데 정치권에 역할을 맡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신 옛날과 달라져서 바깥의 시민사회 목소리가 커지고 미디어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외부에서 질문과 목소리를 던지면 정치권이 그것을 받아서 소화하니까 이런 구조에 기대를 해볼까 한다.”

양승태

“동북아의 역사 흐름에서 일본의 도전이나 미국의 동북아 개입도 한계가 있다. 이를 광복 70년 대한민국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진단하면?”

김명섭

“광복 70년, 무엇이 광복되었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1945년 광복 이전의 70년을 봐야 광복 70년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미래의 70년을 볼 수 있다. 광복 시점에서 한국은 ‘조선’이었다. 우리가 봤을 때 광복 이전 이후 70년을 나눈다고 했을 때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조선’에서 ‘한국’으로의 변화다.

앞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표준을 배우는 것도 좋았지만 우리 스스로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학문을 만들어야 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주체는 백성도 아니고 시민도 아니고 개인이다. 스스로 하게끔 만들어주는 것이 교육이다. 개인들이 모여서 우리 한국을 새롭게 만들어가야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양승태

“대한민국 출연 자체가 세계사 큰 흐름 속에서 동서양 문명의 충돌과 전파, 여러 변형들에서 이뤄진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핵심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것이 혁명적인 것은 인간 자기발전의 시작인 것이다. 국가차원에서 자기발전이 일어나야 하는데, 개인이 단순한 외톨이 고립된 자체가 독자성을 갖는 개인이 아니라 개인이 ‘국가적 개인’이다. 개인 속에 국가생활의 보편적 요소가 일어나고, 누가 그것을 양성하는냐는 교육의 문제다.

결국 새로운 지식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 운동 속에서 새로운 국가 생활에 대한 진지함이 일어나고 진정한 삶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새해가 앞으로 70년 전환점이라는 것이 그 모색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70년 100년, 연속적인 국가 비전을 철두철미한 자기 반성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


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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