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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 law드뷰] “육지 다녀오면 생계가 위험하죠”…울릉도 영상재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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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혁 기자

승인 : 2024. 12. 01. 16:00

11월 19일 포항지원-울릉도 영상 증인신문 실시
지난 2022년 12월 중계시설 설치 이후 첫 시행
"몇분 재판 위해 며칠 허비…자영업 생계에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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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9일 경북 포항에 위치한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1단독 법정에서 송병훈 부장판사가 울릉도와의 영상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임상혁 기자
"잘 들리시나요?" "네 잘 들립니다" "그럼 증인 신문 시작하겠습니다"

법정 왼편 대형 모니터에 4개의 화면이 띄워져 있다. 화면에는 법복을 입은 재판장과 검사, 정장 차림의 변호인 얼굴이 하나둘 나온다. 재판에 익숙하지 않은 듯 긴장한 얼굴도 화면 한편에 등장한다. 바다 건너 220km 거리가 무색하게 대화가 실시간으로 이뤄져 마치 법정에 함께 있는 듯하다. 모니터 앞에 말을 하는 것이 처음엔 어색해 보였지만 금세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지난달 19일 경북 포항에 위치한 대구지법 포항지원에선 형사1단독 송병훈 부장판사 심리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등 혐의를 받는 A씨의 1심 공판기일이 열렸다.

이날 울릉도 주민 B씨와 C씨의 증인신문이 '영상재판'으로 이뤄졌다. 지난 2022년 12월 울릉도에 영상재판 시설이 설치된 이후 약 2년 만에 처음 열린 것이었다. 영상재판은 재판 당사자가 재판에 직접 출석하는 것 대신 화상으로 참여하는 방식의 재판을 말한다.

형사재판은 기본적으로 직접 출석이 원칙이지만, 재판장의 허가로 B씨와 C씨는 영상재판 시설이 설치된 울릉등기소에서 화상으로 재판에 참석할 수 있었다. 형사소송법 165조의2에 따르면 증인이 멀리 떨어진 곳 등에 사는 등 직접 출석하기 어렵다고 인정될 때 법원의 허가로 영상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이들은 현재 울릉도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데, 재판이 열린 포항까지 가는 데만 반나절이 소요되고 배편도 한정적이라 왕복에 거의 3일을 써야 한다. 이에 "하루에 벌 수 있는 생계비를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재판부에 호소하자 영상재판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신문은 각각 10분씩 이뤄졌다. 화상 통화 특유의 끊김이나 지연 현상 없이 실시간으로 문답이 이뤄져 증인이 직접 출석한 것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목소리가 울리거나 작게 들려 중간 중간 되묻는 일이 있었다. 변호인이 증거 문서를 제시할 때 화면 전환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었다.

송 부장판사는 재판이 끝난 직후 "처음 진행하는 것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일반 증인신문처럼 원활히 진행된 것 같아서 다행"이라며 "다만 서증을 비추기 위한 화면 전환에 시간이 걸리는 등 조금 버벅거리는 면이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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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경북 울릉군 대구지법 울릉등기소에서 김대성 울릉등기소 계장과 백승빈 변호사가 영상재판을 시연하고 있다. /임상혁 기자
◇"20년간 몇분 재판 위해 몇시간 뱃길…영상재판 계속 활용돼야"

울릉도 주민들은 이번 영상재판 시행에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20여년간 재판 단 몇 분을 받기위해 시간을 들여 육지로 가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영상재판은 1995년 '원격영상재판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는데, 이듬해 2월 울릉도와 경주지원을 이은 것이 국내에서 처음 열린 영상재판이었다.

하지만 느린 인터넷 속도 등의 문제로 시행 6년 만에 중단됐고, 영상재판 시설이 있던 울릉등기소가 2000년대 초반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이후 지난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에 따라 민·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영상재판 범위가 확대됐다. 그러다 2022년 하반기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도서지역에 대한 영상재판 시설 확대 방침을 세우면서 다시 시설이 들어섰고, 이날 처음으로 활용된 것이다.

울릉도에서 나고 자란 김대성 울릉등기소 계장은 "B씨와 C씨 같은 경우 하루 하루 일을 놓치면 거의 몇 백만원이 날라 갈 정도로 손해를 보는 상황이었다. 물론 형사사건 증인 여비로 몇 십만원이 나오지만 부족한 수준"이라며 "주민인 입장에서도 영상재판이 잘 이뤄져서 좋다. 간단한 증인 신문 정도는 계속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진 영상재판이 활성화돼 있는 상황은 아니다. 주민이 적어 재판이 이뤄지는 일이 잘 없을뿐더러, 신청 가능 대상도 형사 재판의 경우 변호인을 제외하면 '증인'으로 한정돼있어 피고인 등 당사자들은 재판에 직접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민사 재판은 원고, 피고 등 당사자의 신청이 가능하다.

현재 영상재판 시설이 설치된 도서지역은 크게 울릉도, 백령도, 흑산도 세 곳이다. 각각 △백령도 2022년 8월 30일 △울릉도 2022년 12월 22일 △흑산도 2023년 9월 13일 순으로 설치됐지만, 시행 건수는 현재까지 5건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백령도에선 2022년 9월 23일, 10월 7일, 10월 31일로 세 번 시행됐다. 울릉도는 이번 B씨와 C씨 두 번이 처음이었다. 흑산도는 설치 1년이 넘도록 아직 한 건도 시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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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백승빈 변호사(왼쪽)와 김공규 울릉등기소 소장이 경북 울릉군 울릉등기소에서 아시아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상혁 기자
울릉도 최초이자 유일의 변호사인 백승빈 변호사는 "이번 재판은 저에게 아주 귀감이 될 사례 같다"며 장점이 많은 영상재판이 앞으로도 적극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정말 의자에 엉덩이만 잠깐 붙이고 오는 간단한 사건도 많은데, 그런 것 하나를 위해 몇 시간 걸려 육지로 나가는 것이 주민들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또 법조인과 달리 일반 주민들은 '법정'이란 공간 자체가 불편하고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거주 지역에서 증언하는 것이 비교적 편안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법원행정처는 향후 도서지역 증인의 사건 수 및 증인의 출석편의를 고려해 영상재판이 필요한 도서지역을 추가로 발굴하고, 영상증인신문을 위한 중계시설을 확대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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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릉군에 위치한 대구지법 울릉등기소의 모습. /임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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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울릉등기소에 배포한 노트북에 영상재판 프로그램이 실행 중이다. /임상혁 기자
임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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