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 정보전쟁 시대… 이스라엘이 부러운 이유

[칼럼] 정보전쟁 시대… 이스라엘이 부러운 이유

기사승인 2024. 10. 10. 18: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2024091201001392400083961
류석호 칼럼니스트, 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지금 이란에서는 이스라엘 스파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정계에 깊숙이 침투한 적국의 스파이 때문이다. 이란 내 이스라엘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한 비밀부대의 책임자가 이스라엘에 정보를 제공한 첩자였다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전 대통령이 주장하고, 알리 하메네이 이란 국가 최고지도자가 주변인들에게 "더 이상 누구도 믿지 않는다"며 불안감을 보일 정도니까. 과연 적국에 공포와 상호 불신을 일으킬 만큼 이스라엘의 정보자산은 세계 으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달 17∼18일 이른바 이스라엘판 '통신 트로이 목마' 수법으로 레바논에서 무선호출기(삐삐) 등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통신기기 수천 대가 동시에 폭발해 3000명이 다쳤다. 이어 지난달 27일엔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 지휘부 회의가 열린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의 지하 18m 깊이 벙커에 약 80톤의 폭탄을 집중 투하, 수장 하산 나스랄라 등 헤즈볼라 지도부를 궤멸시켰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심어놓은 정보원으로부터 실시간 나스랄라의 거취를 제보받았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은 2006년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고전한 이후 해외정보기관 모사드(Mossad)와 군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절치부심 도·감청, 위치추적, 통신망 해킹 등 막대한 자원을 정보 역량 확보에 투입한 결과 헤즈볼라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7월 31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머문 이란 수도 테헤란의 숙소에서 미리 설치한 폭탄에 의해 암살당한 것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섭외한 이란 정예 혁명수비대(IRGC) 대원의 소행이었다는 것. 이란 심장부에서 발생한 이 사건 역시 모사드가 '휴민트(인적 정보)' 역량 등을 총동원해 벌인 고난도 공작의 결과였다.

이스라엘의 종횡무진에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정보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대외정보기관 모사드, 국내 담당 신베트, 군 정보국 아만, 사이버첩보전 담당 8200부대 등 정보기관들이 시각·음성 정보의 인공지능(AI) 분석, 음파탐지 등 첨단기법을 두루 활용하고 있다. 이슬람 무장조직 수뇌부와 요원들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추적하고 통신망을 장악한 결과가 '결심만 하면 어느 표적이든 제거할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사드의 부장(한국의 국정원장 격)을 지낸 샤브타이 샤빗이 모사드 32년 인생을 정리해 2020년 펴낸 '모사드의 머리(Head of the Mossad)'라는 역작이 있다. 샤빗은 책에서 "휴민트는 정보의 항공모함과 같다"고 표현했다. 시긴트(SIGINT·신호정보), 테킨트(TECHINT·기술정보), 오신트(OSINT·공개수집정보) 등 모든 정보가 최종적으로 의존하는 항공모함과 같은 전략자산이 '휴민트'라는 것이다. 모사드가 특히 휴민트 역량 향상에 지나칠 정도의 집착을 보이고 있는 이유다.

이스라엘의 세계 최고 정보기관 모사드 (Mossad, 히브리어로 기관이란 뜻). 2000년간의 디아스포라(이산·離散)를 끝내고, 2차 세계대전에서 홀로코스트를 겪은 후 1948년 건국의 꿈을 이룬 유대인들에게 안보와 생존은 동의어이다. 적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고조된 안보 의식과 건국 이래 전시 상황이 아닌 적이 없다는 긴박감이 오늘의 '모사드'를 만들어냈다.

모사드는 솔로몬왕이 언급한 구약성경 잠언 11장 14절('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을 모토로 삼고 있다. 손자병법의 마지막 편은 '용간(用間)'이다. 간첩과 첩자를 이용한 활동을 일컫는다. 이런 용간이 한순간에 국가의 운명을 바꾼 사례는 널려있다. 현대의 첩보전은 정보의 수집, 분석과 사실 판단, 기만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어느 하나가 부실해도 전투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서 첩보 조직은 전문성을 지향하고, 정치적 외풍을 경계한다.

우리의 정보전 태세는 어떠한가.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 기무사령부(현 방첩사령부)를 계엄령 문건, 세월호 사찰 의혹 등으로 몰아 사실상 해체시켰다. 최근 대북 첩보와 군의 특수작전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이 돈을 받고 중국 측에 비밀요원 정보를 넘기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 유출 정보는 수천 건에 달하며, 외교관 등의 신분인 화이트 요원은 물론,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블랙 요원 정보까지 망라됐다. 심지어 관련 자료가 북한으로 넘어간 정황까지 포착됐다고 한다.

이런 첩보망을 무너뜨리는 안보 참사가 빚어진 것도 군사보안을 관장하는 기무사의 무력화와 무관치 않다. 또한 정보사에서 이 같은 사달이 난 것의 근본적인 요인은 국정원의 대공보안정보 기능의 박탈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정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얼마 전 미국 연방검찰의 한국계 북한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기소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정보원의 허술한 정보 수집활동은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의 난맥상이다.

국가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도 지난 정부 시절 적폐청산 바람 속에 100여 명이 검찰조사를 받았고, 수십년 공들여 구축했던 대북·해외 첩보망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올 1월부터는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으로 대공수사권마저 공중분해 되다시피 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문 정부는 국정원을 전대미문의 치명적 위기로 몰아넣었다"며 "북한으로부터의 위기를 그저 수수방관하도록 함으로써 정보기관으로서의 정체성과 정보업무에 대한 직원들의 자부심, 직업정신을 본질적으로 훼손한 치명적 위기였다"고 비판했다.

일련의 사태는 대한민국 '정보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 급증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발 중동 '확전 위기' 등으로 전 세계적 첩보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잇따른 정보관리 실패에 대해 정보기관 내 기강 해이와 안보 의식 저하, 전문성 부족 등이 겹치면서 안보 위기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의 폭주 입법으로 2020년 12월에 일방적으로 폐지한 국정원의 대공보안정보 기능을 부활시켜야 마땅하다. 해외 정보망 및 대남 첩보망을 재건하는 데 최소 10년, 최장 20∼30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안보 인력에 대한 재교육과 전문성 강화, 안보 의식 고취 등 전방위적 종합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류석호 칼럼니스트, 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