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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왜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는가?

[김이석 칼럼] 왜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는가?

기사승인 2024. 09. 2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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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심의실장
올해는 1944년 3월 영국에서 처음 발간된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이 출간된 지 80주년이 되는 해다.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올랐기에 전 세계 자유주의 성향의 연구소 사이트들은 이를 기념하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 이 책은 필자가 번역했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소박하지만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이를 기획한 김행범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노예의 길'은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을 재천명한 것으로 잘못 소개되기도 하지만, 저자인 하이에크가 책에서 규정했듯이 '정치서적'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책의 내용이 비록 경제학을 바탕에 깔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민주주의, 법의 지배 등 정치학과 법학 등의 주제들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면서 하이에크가 이 책에서 울린 경고음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느낀다. 여전히 '다수결 만능주의'에 물들어 사법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등 '법의 지배'가 흔들리고 있는 것도 그렇고, "현재 또는 미래 세대들이 자유롭게 써야 할 돈을 세금이나 국채발행 등의 형태로 진정한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쓰려고 하는 것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서 특별히 눈길이 갔던 장(章)은 10장 "왜 가장 사악한 자들이 최고의 권력을 잡게 되는가?"였다. 이 장에서 하이에크가 주목한 이들은 전체주의 나치 독일 등에서 악명을 떨쳤던 이들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4·10 총선에서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많은 이들의 지탄 속에 자격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던 이들도 결국 공천을 받아내고 당의 지지를 업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10장은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유명한 말로 시작한다. 이는 전체주의 사회, 절대 권력의 추구, 그리고 도덕적으로 보아 가장 문제가 많은 사람이 최고 권력을 잡는 것 사이에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노예의 길'에서 하이에크는 가장 큰 규모의 강력한 집단이 최선의 사람이 아니라 최악의 사람들에 의해 형성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든다. 우선 개인의 지적, 도덕적 능력이 높을수록 취향이 세분화되므로 독창성과 독립성이 낮은 수준으로 내려와야 대규모의 동질집단을 만들 수 있고, 강한 자기 확신이 없는 이들이라야 긍정적 과제보다는 적에 대한 혐오, 부자들에 대한 질시와 같은 네거티브를 계속 틀어주면 쉽게 따라 온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유태인이, 러시아에서는 쿨락(부농)이 그 적대의 대상이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국가의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함부로 침범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당시 지식인들 대부분에게 가장 중요했던 사회개혁의 과제였다. 그러나 자신들이 이상적이라고 보는 상황을 강제로라도 창출하고자 했던 전체주의자들에게는 오히려 개인들에게 그들의 목표를 명령하고 지시하도록 할 무한한 권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결과 권력에 대한 숭배가 전체주의자들의 특징이 되었다.

그 결과 보통의 사회에서는 속이거나 훔치는 것, 고문하거나 신뢰를 배반하는 것과 같은 도덕적 규칙들은 전시(戰時)와 같은 특별한 상황일 때 잠시만 유보되기도 하지만, 이런 도덕적 규칙들이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소위 '전체의 선(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문자 그대로 못할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전체주의 국가에서 국가 운영의 유력한 조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도덕적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적 신념을 가진 사람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자리에서 멀어지는 반면, 기존의 도덕적 관점에서 최악으로 분류될 사람들이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비록 나치와 공산당과 같은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 출현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제 우리나라의 현 상황으로 돌아와 다시 묻게 된다. 지난 총선에서 도저히 국회의원 감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던 이들조차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노예의 길》 10장은 이렇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국민들 다수가 존중하는 도덕률이 있고, 민주주의 정당이라면 이런 도덕률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다. 왜 더불어민주당 혹은 그 대표는 이런 가치들을 무시해야 할 만큼 중요한 목적이나 목표가 있어서 기존의 도덕에서 볼 때 최악인 인물이라 할지라도 이를 가장 충성스럽게 실천할 인물을 공천해서 이들에게 권력을 쥐어줄 필요가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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