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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전규제 기준강화가 필요할 때

[칼럼] 안전규제 기준강화가 필요할 때

기사승인 2024. 09.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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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어떤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면, 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규정 속도가 시속 60㎞인데 많은 차량이 시속 100㎞로 운행한다면, 규정 속도를 50㎞로 낮추는 게 정답이 아니라 규정 속도인 60㎞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정답이다. 또 따지고 봤더니 사고가 많지 않은데도 사람들이 불안하게 여긴 것이었다면 규정 속도를 낮추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괜한 불안감을 없애는 것이 정답이다. 모든 차량이 60㎞로 운행하는데도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면 그때가 규정 속도를 낮출 때다.

즉 안전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전기준이 충분히 낮은데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안전기준을 낮추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기존의 안전기준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정답이다. 안전기준도 낮고 준수도 잘하는데 국민이 불안하게 느낀다면 안전기준을 더 높이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국민들의 막연한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정답이다. 안전기준이 낮은 것이 문제가 될 때가 바로 안전기준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고의 원인을 잘 따지지 않고 제도를 고친다. 국민이 불안해한다고 해서 안전기준을 높이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그것이 지난 정권의 원자력안전위원장이 하려던 일이었다. 안전기준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게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전기준을 높이려고 했던 것은 국민의 안전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닌, 정권의 요구에 부응해서 사업자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런 상식도 모르는 깜냥이 안되는 사람이 자리에 앉았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 원자력안전규제위원회(US NRC)는 안전기준을 강화하거나 신규 규제를 도입할 경우, 비용효과분석(Cost Benefit Analysis)을 하도록 하고 있다. 즉, 제도의 개선을 통해 얻게 되는 안전상의 이득과 비용을 비교해 이득이 많을 때만 제도를 도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필자가 과학기술처에 근무하던 1995년에도 이러한 비용효과분석을 의무화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이 비용효과분석은 사실상 쉽지 않다. 소요되는 비용은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한 안전상의 효과를 정량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어물쩍 비용효과분석을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사실 NRC의 비용효과분석도 살펴보면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도 하기는 한다. 그런데 우리는 포기하고 하지 않는 듯하다. 그럼에도 비용효과분석을 하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제도개선, 안전기준 강화에 신중하라는 뜻일 것이다.

필자가 대학교 다닐 때, 일반인의 방사선 피폭 제한치는 5mSv(밀리시버트)였다. 그런데 그것이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권고를 덜컥 받아들여서 1mSv로 낮췄다. 게다가 그것을 방사선 종사자만 출입할 수 있는 영역에도 일부 적용했다. 그 결과 방사선 차폐 등에 엄청난 비용을 초래하게 됐다. 피폭 기준이 5mSv인 경우에도 그것을 준수한다면 별문제가 없었는데 말이다.

우리 규제기관은 외국에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따져보지도 않고 얼른 도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기술 기반을 축적해야 하는데 그런 사정도 봐주지 않고 도입부터 한다. 예컨대 위험도 정보 규제는 1996에도 원년으로 선포된 적이 있지만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안전기준을 바꾸는 일은 지금이 그것이 필요한 때인지 확인하고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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