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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협조적 규제가 안되는 이유

[칼럼] 협조적 규제가 안되는 이유

기사승인 2024. 08.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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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어떤 사람이 교통법규를 위반해서 교통경찰로부터 딱지를 떼이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비슷하게 위반한 다른 운전자는 봐주고 넘어가는 상황을 그려보자. 우리 사회에서는 아마도 '저 사람은 놔두고 왜 저만 잡아요?'라고 묻고 싶을 것이다. 아마도 교통경찰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당신은 당신만 생각하면 됩니다. 당신이 위반한 것이 맞지요? 그러니까 스티커를 발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맞는가? 억울해 보이지만 맞다. 교통경찰의 역할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교통경찰이 교통법규를 위반한 모든 운전자를 다 잡아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본다면 다른 운전자는 놔두고 나만 잡는다면 문제가 된다. 그러나 교통경찰의 역할이 적은 인원으로 교통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 법규위반을 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본다면 범법자의 일부에게 딱지를 떼는 것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모든 운전자의 딱지를 떼다가는 길이 막힐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면 더 그렇다. 범법한 모든 사람을 잡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교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수단이다.

도로에 경찰이 나와 있기만 해도 우리는 모두 모범운전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 끼어들기도 안하거나 조심스럽게 하고 과속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교통경찰의 역할은 위반자에게 딱지를 떼는 것보다 그냥 도로에 나와 있어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원자력안전규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본다. 사업자의 위반을 모두 찾아내서 벌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업자가 감시를 받고 있는 점을 염두하면서 일을 하도록 함으로써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안전규정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년 365일 가운데 원자력안전위원회 뿐만 아니라 소방서·지자체 등으로부터 200일 이상 검사를 받는다. 검사를 받는 것이 일상인 셈이다. 게다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부지내에 사무실을 마련해 원자력발전소 규제관을 그리고 기술지원을 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규제원을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언제든 원전의 심장부까지 바로 들어갈 수 있다.

교통경찰이 상시로 서 있는 도로와 마찬가지다. 이들은 감시도 하고 또 한수원이 어떤 일을 할 때, 규정이 의심스러우면 사전에 상의를 할 수도 있다. 물론 소수의 인원이 파견되기 때문에 필요하면 본부의 기술부서에 검토를 요청할 수도 있다. 이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수행되는 수시검사는 그래서 원자력안전을 지키는데 매우 중요하다. 또한 사업자가 작업을 수행하기전에 규제자에게 보고하고 검토받는 과정에서 안전을 한번 더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제도적 준비가 목적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업자가 현장규제자에게 스스럼 없이 가서 안전에 관한 사항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것이 오래동안 관행처럼 진행되고 있다면 이를 보고하고 상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잘못된 관행을 드러냈을 때 규제자가 딱지를 발부하려고 덤빈다면 사업자는 침묵할 것이고 잘못된 관행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의 목적이 분명해 지면, 적발과 처벌중심이 아니라 협조적 규제관계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국민을 위해서 더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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