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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주년 광복절 ‘김성재·박익성’ 등 121명 독립유공자 포상

제79주년 광복절 ‘김성재·박익성’ 등 121명 독립유공자 포상

기사승인 2024. 08. 1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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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민보 1937년 2월 11일자 신한민보. 쿠바 하바나 지방회 성립 과정을 보여주는 기사다. 미국 지역보다 한인 인구수가 적은 쿠바 지역의 지방회 설립은 한인들의 일치단결 및 독립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김성재 선생은 지방회 설립 당시 서기에 임명돼 활동했다. /국가보훈부
국가보훈부는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김성재·박익성 선생 등 121명에 대해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14일 밝혔다.

김성재 선생은 쿠바 이민 2세 출신으로, 1930~40년대 쿠바에서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서기, 하나바지방회 청년부장, 재큐한족단 서문 정서기 등으로 활동했다. 김성재 선생은 쿠바지역에서 한인들을 규합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는데 앞장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면서 임시정부의 승인과 쿠바한인들의 권익향상에 앞장섰다. 선생이 활동했던 재큐한족단은 1943년 4월 쿠바 하바나 지방정부 후원 하에 창립, 쿠바한인 사회를 대표하고 항일 투쟁 의지를 대외에 천명하는 단체로 활동했다. 선생은 이민 2세임에도 불구하고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을 이어가면서 임시정부 지원과 교민의 권익향상에 힘썼으며, 대(代)를 이어 독립운동에 헌신한 대표적 사례다.

박익성 선생은 1907년 11월부터 경남 거창과 전북 무주 일대에서 신명선 의진에 참여해 항일 활동에 필요한 군수품 등을 모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박익성 선생은 1909년 3월경 일본군에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파옥 도주해 다시 궐석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형기 통산 징역 15년을 받았다.

1938년 서울에서 일본의 민족차별정책을 반대하고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다 옥고를 치른 이종세 선생(애족장), 1909년부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인국민회 오브랑지방회장 등으로 활동한 고덕화 선생(건국포장), 그리고 1919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3·1만세운동에 참여해 만세를 부른 원순본 선생 등 원주 원씨 일가 11명(대통령표창)에 대해서도 독립유공자 포상이 이뤄진다.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121명이며, 이 중 건국훈장 38명(애국장 3, 애족장 35), 건국포장 10명, 대통령표창은 73명으로 포상자 중 생존 애국지사는 없다. 건국훈장과 대통령표창은 제79주년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후손에게 수여된다.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포상된 1949년부터 이번 광복절까지 1만 8139명이 독립유공자로 포상되며, 이 가운데 건국훈장 1만 1776명, 건국포장 1529명, 대통령표창 4834명이고, 여성은 663명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나라사랑 정신이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었음을 기억하고, 보훈이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핵심 가치가 될 수 있도록 한 분의 독립운동가라도 더 발굴하고 포상하는데 만전을 기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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