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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현장중심의 규제실종

[칼럼] 현장중심의 규제실종

기사승인 2024. 07.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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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원자력안전법을 살펴보면 허술한 느낌이 든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말들로 원자력시설의 안전을 규제한다. 예컨대 '원자력시설은 안전한 지역에 설치해야 한다'는 식이다. 규제지침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어떤 수치가 어떤 값을 초과하면 안되고, 미만이면 되고 하는 식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다 이유가 있다.

뻔한 제품이라면 규제지침을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매번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면 지침을 구체화하기 어렵다. 원자력시설은 맞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뭐가 얼마여야 한다고 규정화할 수 없다.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도 다른 방식으로 설계해 안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에서는 심사자의 공학적 판단이 허가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원자력발전소는 '모든 학문(All-logy)'이라고 부를 만큼 원자력공학은 물론 기계·화공·전기·제어·건설·구조 등 각종 학문이 동원된다. 그렇다면 규제자도 이 모든 부문을 포괄해야 한다. 그래서 한 명 한 명의 규제자가 소중하다.

규제기준이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의 규제자가 자기 판단을 통해 허가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는 매우 취약할 수 있다. 이 구조에서 올바른 규제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현장규제자가 역할이 중요하다. 해당분야의 지식이 없는 입장이라면 전문가에게 믿고 맡기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대신 어떤 문제나 부도덕이 발생한다면 철저히 응징해서 이를 막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상급자의 상급자 또 그 상급자를 넘어선 감독기관, 감독기관의 상급자 그리고 최정점의 원자력안전위원이 현장규제자에게 어떤 기준으로 허가를 주었는지를 매번 따져묻는다면, 또 현장규제자의 공학적 판단을 위원회장에서 납득시키기 어렵다면 현장규제자는 어떤 판단을 할까? 현장규제자는 이런 상황을 편안히 넘어가기 위해 원자력안전위원이 만족할만큼의 강한 규제를 찾을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이 보기에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의 규제를 부과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과규제가 누구에게 좋은 일이냐는 것이다. '대중의 건강과 환경보로'를 넘어선 규제로 조금더 안전해졌을 수 있지만 산업적 경쟁력은 크게 훼손되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우리가 수출한 4기의 원전은 전세계의 원자력전문가에 의해 규제됐다. 당시 기술력이 없었던 UAE 정부는 전세계에서 원자력전문가를 모아 우리가 수출한 원전의 안전성을 심사했다. 우리는 이들이 제시한 질문서 하나 하나에 답하며 안전성을 확인시켰다. 필요한 경우 실험을 다시 해서 입증을 하거나 계산을 다시 하고, 계산의 가정치와 전제조건이 무엇인지도 설명했다. 당시 고용된 전문가들은 몸값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없는 질문도 만들어냈다. 나라가 달랐기 때문에 관심사나 중요하게 여기는 점도 달랐다. 이 모든 것에 답한 결과가 바라카 원전이다. 이 일을 총괄했던 영국인 전문가가 영국으로 돌아가 우리 원전을 추천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국내에 건설하려는 원전은 철근과 콘크리트 물량이 바라카 원전보다 30% 많아졌다고 한다. 현장 규제자의 최강 규제를 부과한 결과일 것이다. 이게 바람직한 규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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