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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포용적 K-복지모델 ‘안심소득’

[칼럼] 포용적 K-복지모델 ‘안심소득’

기사승인 2024. 07. 1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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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서울시복지재단 대표이사)

한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국가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졌고, 이는 국민통합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한편으로 산업구조의 재편, 기술 발달, 가족해체 혹은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과 같이 새로운 사회적 위험과 사회구조적 변화의 과정에서 전통적인 경제적 취약 계층뿐만 아니라 기술 발달로 인한 실직자, 불완전고용 노동자, 디지털정보 취약 계층, 고립 가구 및 가족 돌봄 청년과 같은 새로운 약자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외형적으로 확대되어 제도적으로 선진국에 비해 손색없는 틀을 마련하였고, 저소득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소득 보장도 꾸준히 개선되었다.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21년 10월에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까다로운 수급 조건으로 광범위한 비수급 빈곤층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보장 수준도 불충분하다.

수급자를 선정할 때 소득과 함께 반영하는 재산 기준도 지나치게 높아 창신동 모자의 안타까운 죽음과 같은 고독사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의 확산과 AI 자동화를 계기로 일자리 없는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크게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얼마 전에 유럽을 방문하여 전문가들로부터 확인한 현실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전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2016년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던 스위스와 2017~2018년 기본소득을 실험한 핀란드에서 기본소득은 더 이상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을 주도한 헬싱키 대학의 힐라모 교수는 기본적으로 기본소득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사람들의 기대가 너무 높아서 독일이나 핀란드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국가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들 국가에서 사회적 관심이 예전보다 낮아졌고, 정치적 지지 세력이 약해져 기본소득을 추진할 동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독일도 베를린에서 조건 없는 기본소득(UBI)실험이 진행되고 있으나, 힐라모 교수는 현재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정파는 녹색당 정도인데, 녹색당의 지도부에도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많아 독일에서 기본소득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였다. 독일노총(DGB)도 디지털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의 해결책으로 제안된 기본소득을 거부한 바 있다.

현재 기본소득 실험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은 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일부 저개발국과 미국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150개 이상의 지방정부에서 기본소득이 실험되고 있으나, 이는 코로나 팬데믹과 AI의 등장이라는 상황에서 유럽의 복지국가에 비해 취약한 미국의 사회안전망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에서 실험 중인 기본소득은 실제로는 저소득층이나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자산조사에 기초하여 지급되는 전통적인 사회부조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부분적 기본소득이라 하더라도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초래할 위험이 있고, 기존의 비수급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도 없다.

그리고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가 주장한 바와 같이 시민은 노동을 통해 사회적 인정을 받고, 민주주의의 책임 있는 주권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이들은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하게 된다. 호네트는 기본소득으로 소외 계층의 '사회적 고립과 고립의 과정'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음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서울시에서는 기존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대체할 '안심소득'을 실험하고 있다. '안심소득'은 프리드먼의 '음 소득세'를 이론적 기반으로 하지만, 기존 복지제도를 해체하지 않고 보완하고 간소화시킨 점에서 프리드먼의 '음 소득세'와는 차이가 있다.

힐라모 교수는 원래 핀란드에서 기본소득 연구 컨소시엄에서 부분 기본소득, 완전 기본소득, 음의 소득세, 참여 소득과 같은 네 개의 옵션이 제안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실업 급여를 받는 실업자로 한정되었다고 설명하면서, 4가지 모델에서 가장 기대가 컸던 모델이 '음 소득세'였으나 실험을 하지 못한 점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힐라모 교수는 완전 기본소득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관대한 최저보장소득을 제안하였는데, 이는 '안심소득'과도 친화성을 가진다.

'안심소득'은 기준 중위소득 85% 이하 가구에 대해 부족분의 50%를 지원함으로써 기존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비해 지급 대상과 지급액을 대폭 확대한 제도이다. 하후상박형으로 설계되어 정의로우며, 보다 관대하고 포용적인 한국형 기초보장 체계이다.

이와 함께 기존의 까다로운 수급 기준이 완화됨으로써 복지 사각지대의 해소와 경제적 이유로 인한 고립 혹은 고독사 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안심소득'의 성과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노동 공급의 효과에 관해서는 장기적인 관찰이 필요하지만, '안심소득' 수급 후 근로가 증가한 가구도 있고, 근로를 줄인 가구도 발견되었다. 근로가 감소한 원인은 가족 돌봄, 아동 육아, 질 좋은 일자리를 위한 취업준비 및 질병 등의 이유 때문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소득보장과 함께 돌봄 서비스, 직업교육과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하게 연계되어야 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좋은 일자리에서 근로함으로써 복지의존에서 벗어나게 되고, 근로활동을 통한 사회적 인정을 받아 사회적 관계가 강화되고, 나아가 사회적 갈등의 완화와 국민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복지제도에서도 선진국의 모방이 아닌 포용적 K-복지모델인 '안심소득'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상철 (서울시복지재단 대표이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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