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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벌칙강화의 역설

[칼럼] 벌칙강화의 역설

기사승인 2024. 07. 04.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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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죄가 무거우면 처벌도 강화된다. 그리고 처벌을 강화하면 죄를 덜 짓게 된다. 여기까지가 상식적으로 기대되는 일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

우선 죄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도둑질이나 사기의 경우에 죄를 짓는 사람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에는 처벌을 강화해해 이득보다 처벌의 무게가 커지면 죄를 덜 짓게 된다. 뇌물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법을 어기는 것이 의도가 아니라 과실에 의한 것이라면 처벌을 강화해도 범법이 줄지 않을 것이다. 의도나 의식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원전과 같은 대형 시스템을 운영하다가 보면 잘못된 관행 또는 의도하지 않은 착오로 인해 범법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범법 행위가 줄어들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도리어 처벌의 수위를 높이지 않아야 한다.

필자가 과학기술처에서 원자력안전규제를 수행하던 1996년에는 원자력과 관련된 최고의 벌금이 3000만원이었다. 아무리 30년 전의 물가가 낮았다고 할지라도 원전에 대한 벌칙이 고작 3000만원에 불과한 것은 너무 낮다는 주장이 주기적으로 제기됐다. 그래서 처벌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처벌수위에 대해 주기적인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처벌를 강화하지 않았다.

당시의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원자력발전사업자인 한국전력공사(현재는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는 공기업이라는 점이다. 범법을 하는 경우에 특정인이 이득을 편취하기 위하여 범법이 발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또한 벌금을 부과한다 하더라도 그 벌금이 크건 작건 개인에 미치는 영향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이었다. 벌칙을 받게 되면 공기업에서는 승진제한 등 불이익이 매우 심하다. 특히 연공서열에 의한 승진이 많은 공기업에서는 공(功)에 의해서 승진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과(過)가 없어야 한다. 조직사회에서 승진을 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에게는 큰 손실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죄를 범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았다.

가장 크게 고려한 점은 벌칙이 과도하면 잘못된 관행이 발견되었을 때, 은폐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원자력안전규제의 목적은 원자력시설의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죄지은 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원자력시설의 안전성 향상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안전규제의 목적이 권선징악이나 응징이 아닌 것이다.

2011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분리해 독립되고 신규직원을 뽑기보다 다양한 부처에서 근무하던 공직자들이 원자력안전위원회로 옮겼다. 그렇게 하면서 이전 정부에서의 경험과 관행이 원자력안전위원회로 이전됐다.

그 가운데는 같은 규제지만 목적이 상이한 규제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원자력에 대한 이해가 희석됐을 것이다. 벌칙을 강화하면 도리어 문제를 은폐함으로써 규제의 목적에 반하게 될 수 있다. 법적 제제의 수위는 죄의 종류와 목적에 맞도록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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