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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정의 컬처&] 대지를 품고 환경을 조각하는 작가, 최옥영

[윤현정의 컬처&] 대지를 품고 환경을 조각하는 작가, 최옥영

기사승인 2024. 06. 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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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예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의 특성상 많은 전시를 보고, 많은 예술가를 만나는 편이다. 지금까지 만난 작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단연 최옥영 작가다. 그의 인생과 작품은 단지 인상이 깊은 수준을 넘어 경이롭고 존경스러웠다. 우리나라에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고, 왜 이런 사람이 아직 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아쉽기도 했다.

최옥영 작가는 필자가 만난 유일한 '대지예술가'다. 대지예술은 말 그대로 자연의 넓은 표면을 캔버스 삼아, 흙, 돌, 콘크리트, 금속 등의 소재를 사용하여 만드는 거대한 작품으로 규모도 클뿐더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접근하기 매우 어려운 영역 중의 하나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작가님을 직접 만나기 전에 필자는 그가 매우 좋은 집에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대지를 캔버스 삼아 예술을 하는 운 좋은 사람일 거라는 선입견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스스로 하나하나 일궈가며,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열정과 돈을 예술에 쏟아내고 있었고, 과연 이만한 작업이 가능하기는 할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규모의 작품들은 이미 작업실과 수장고로 쓰고 있는 폐교와 공장을 가득 메워, 또 다른 수장고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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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엇인가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1만번 이상의 반복이 필요하다. 1만번 이상을 반복한 후에야 무엇을 하든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처럼, 그의 작업실에는 1만번 이상을 그려낸 그의 열정과 끈기가 담긴 작품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대부분 규모가 매우 큰 조형예술과 대지예술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힘들 뿐 아니라, 사진과 영상으로는 그 감동의 1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했다. 그는 여느 다른 작가들처럼 본인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애쓰지 않았고, 유명해지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팔기 위한 작품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열정과 돈을 '작품'에 태울 수 있는 것일까? 작가의 이런 순수성은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경이롭고 겸허하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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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작가의 초대개인전이 영은미술관에서 열려,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관을 찾았다. 과연 그의 거친 대지예술을 어떻게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 안에 담아냈을지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미술관에서 만난 작가의 작품은, 넓은 대지와 작업실에서 만난 작품과는 또 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현대적인 유리와 무심한 듯 툭툭 이어 붙인 철-프레임, 무채색의 거친 오브제와 글라스에 비친 생생한 그림자의 대비는 어떤 것이 작품이고, 어떤 것이 배경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하슬라의 건축을 닮은 글라스 프레임, 그 안에 펼쳐진 자유로운 상상의 작품들. 그 둘의 오묘한 조화를 위해 큰 창으로 비추는 빛까지. 자연과 건축, 작품이 어우러진 작가님의 거대한 대지예술을 작은 미술관에 옮겨 놓은 듯했다. 보는 시간, 보는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과 빛과 공간, 작품의 완벽한 조화를 보며 머릿속에 온갖 물음표가 생겨났다. 과연 어디까지가 의도된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우연인 것일까? 작가는 이 모든 신(scene)을 상상하고 디자인한 것일까? 예술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내가 만난 가장 예술가다운 예술가. 그의 작품이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의 대지 위에 펼쳐지기를, 100년 200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많은 이들에게 순수한 열정과 예술혼이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시인·아이랩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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