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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배임죄 폐지, 옳은 방향이다.

[칼럼] 배임죄 폐지, 옳은 방향이다.

기사승인 2024. 06. 2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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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배임죄 폐지'의 작은 공을 쏘아 올렸다. 한국이 '기업인 처벌공화국'으로 지탄받는 데는 배임죄가 큰 역할을 해 왔다. 그런 점에서 배임죄는 폐지되어야 하는데 이 금융감독원장이 배임죄 폐지론에 불을 당겼다.

배임죄는 재산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재산죄로서, 그 본질은 신임관계에 기초한 타인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여 재산상 손해를 입히는 데 있다. 그런데 신뢰 문제는 윤리적 문제이므로, 이를 범죄로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약혼했다 파혼하면 신뢰를 저버렸으니 감옥에 가야 하나?
배임죄는 여러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형법 제355조 제2항에 배임죄, 제356조에 업무상배임죄를 규정하고 있는 외에, 상법 제622조에 '이사 등 임원의 특별배임죄'가 규정돼 있고, 이 외에도 특정경제범죄법 제3조에 가중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형법과 상법상의 배임죄 법정 최고형량은 10년 '이하'의 징역인 데 비하여, 특정경제범죄법에는 이득액이 50억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이득액이 5억 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여, 하한형을 규정하고 있다.

보통 하한형은 중범죄를 다스리기 위해 입법된다. 이로써 배임죄는 살인죄의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중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득액이 4억 9990만원이면 특정경제범죄법이 적용되지 않고, 거기서 10만원만 넘으면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는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이 법률이 제정된 1980년대 50억원이면 큰돈이지만, 현재 한국의 경제규모에 비추어 50억원이면 기업에게 그다지 큰 금액이라 하기 어렵다.

특별법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특정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등에 업고 국회가 무언가 한다는, '보여주기식' 입법으로 '태완이법', '민식이법'처럼 급히 제정되는 경우가 많다. 급히 만들다 보니, 기존 법률과 정합성(整合性)이 떨어지고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날림 입법이 되고 말지만, 한 번 만들어지면 없애기는 무척 어렵다.

특정경제범죄법 역시 본래 1980년대 초 대규모 어음사기사건을 계기로 금융인들을 강하게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지만 지금은 금융인보다는 기업인을 잡는 법률로 진화됐다. 배임죄는 무죄율이 높다. 202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횡령·배임죄의 무죄율(1심 기준)은 5.8%로 전체 형사사건 무죄율(3.1%)의 두 배에 달한다. 이는 잘못된 기소가 많았다는 징표다.

특정경제범죄법 제3조에는 형법 제355조 및 제356조에 정한 범죄를 가중처벌 하라고 돼 있고, 상법 제622조 위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런데 이사 등 기업의 임원을 배임죄 혐의로 처벌하고자 하면 상법에 특칙이 있으므로 '특별법 우선 원칙'에 따라 일반 형법이 아니라 상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임원에게는 특정경제범죄법이 적용되지 않아야 옳다. 상법 제622조 위반에 대해서는 특정경제범죄법에 가중처벌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법체계상의 허점 때문에 기업 임원을 기소할 때 상법 위반을 이유로 기소하는 게 아니라, 일반 형법(제355조와 제356조) 위반을 이유로 하면서 특정경제범죄법에 따른 가중처벌을 요구한다. 이는 '특별법 우선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기업 임원의 배임행위는 상법에 따라 처리돼야 하며, 전체 형사법 체계에 맞지도 않은 특정경제범죄법이 먼저 폐지돼야 한다.

문제는 특별배임죄를 없애기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천하의 악법이라도 한번 입법되면 폐지하기는 입법하기보다 몇 배나 어렵다. 우선은 특정경제범죄법 폐지가 정답이지만, 이 법률의 폐지가 실현되기 전에 먼저 배임죄를 다루는 검찰과 법원의 태도에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고 본다.

먼저 검찰은 배임죄를 이유로 하는 기소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물론 고소·고발 건이 접수되면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수사 후에는 혐의가 다소 명확하지 않더라도 기소 판단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행일 수 있다. 이런 관행을 수정할 수 있는 것은 법원이다. 법원은 배임죄를 '침해범'으로 인식해야 한다. 현재 배임죄는 '위험범' 내지 '위태범'으로 파악하여 추상적인 위험성만 증명하면 처벌한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이를 취득하게 하여"라는 표현은 법익을 침해한 경우로 해석되는 것이 어법에 맞다.

따라서 "배임죄는 위험범이 아니라 침해범으로 보아야 하며, 배임죄를 위험범으로 파악하는 것은 형법규정의 문언에 부합하지 않는 해석이다"라는 대법관 박보영, 대법관 고영한, 대법관 김창석, 대법관 김신의 별개의견이 있다(대법원 2017. 7. 20. 선고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 배임죄는 실제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처벌하는 위태범이 아니라, 법률 문구에 맞게 실제 손해를 가했어야 처벌한다는 위 별개의견이 맞다고 보며, 그것이 죄형법정주의원칙에 맞는 해석이라 본다.

다음으로, 범죄의 성립에는 고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법원은 '미필적 고의'만 있어도 처벌한다. 미필적 고의는 특정한 행동을 함으로써 어떠한 결과가 반드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때,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내심의 의사를 법관이 사후에 정확히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명백한 고의를 확인할 수 없는 이상, 배임죄로 의율함에 있어서 법원은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추론하여 죄를 묻는 일을 삼가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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