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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원로 정치학자 김용호 “지구당 부활? 수도권 패배 거듭한 與 풀뿌리 조직 형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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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기자

승인 : 2024. 05. 29. 14:22

한국정치학회장 지낸 김용호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평생 한국 정당정치 연구…"풀뿌리 조직 형해화 된 한국 정당"
"국민의힘 수도권 패배 고착화, 지구당 폐지 영향도 분명 있어"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현인(賢人) 좌담회
김용호 서울대 아시아연구원 방문교수 /송의주 기자
평생 정당을 연구해온 원로 정치학자 김용호 전 인하대 교수는 29일 "국민의힘이 수도권 선거에서 참패한 원인 중 하나로 '지구당'이 없어진 영향이 있다는 분석은 일리 있는 얘기"라며 "총선 패배가 거듭된 정당일수록 지역 내 풀뿌리 조직이 형해화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전 교수는 이날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중앙당의 지역 조직으로 법적 지위를 갖는 지구당과 현재의 당원협의회는 조직 관리 측면에서 비교하기 어렵다"며 "지구당이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아무런 대안 없이 정당의 풀뿌리 조직이 사라졌다는 면에서 부작용이 크다"고 말했다.

과거 정당은 '중앙당-시도당-지구당' 구조로, 전국 254개 지역구에 각 정당의 지구당 사무실이 운영됐다. 하지만 전국 사무실을 운영하는 만큼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이 컸고, 2002년 '차떼기 대선 자금' 사건으로 비리의 온상이라는 이미지까지 덧씌워졌다. 지구당은 이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력한 정치개혁 드라이브 속에 2004년 한국 정당 역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10 총선 출마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도권, 청년 정치인들의 정치 진입을 위해 지구당 부활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며 주목받고 있다.

김 전 교수는 "지구당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나왔다"며 "지구당이 없으니 선거 때만 당의 지역 조직이 '떳다방'처럼 운영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선거를 1년여 앞두고 원외 예비후보들은 '산악회', '연구소', '포럼' 등의 이름으로 사무실을 낸다. 현역 의원이 아니면 정치 목적의 지역 사무실을 운영하는 게 불법이기 때문이다.
현역 의원은 지역 사무실, 후원회 운영이 가능하고 매년 1억5000만원의 후원금도 걷을 수 있다. 선거가 있는 해엔 이 후원금 액수가 3억원까지 늘어난다. 김 전 교수는 "현역이 아닌 원외 정치인이 지역에 이름을 알리기도 어려운 구조가 지난 20년간 고착화됐다"며 "2020년 총선에서 수도권 참패를 기록한 국민의힘이 이번에도 진 것은 이런 폐해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구당 부활에 대해 고심해왔다고 한다. 김 전 교수는 "지구당이 워낙 돈이 많이 든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으니,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사무실을 기초단체 의회 건물에 두자는 제안이 나왔었다"며 "임대 비용만 해결되도 부담이 줄어드니 선관위에서 검토해왔는데 입법부, 국회가 문제였다"고 했다. 현역 의원들로선 원외 경쟁자의 활동 거점을 마련해주는 지구당 부활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김 전 교수는 지구당이 갑자기 없어지며 생긴 부작용에 대해 "과거엔 영남정당도 호남에 지구당을 유지했고, 호남정당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그럴 사람도 없고 유지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보니 각 정당의 지역 색채도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당의 조직 동원력이 약화되면서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강해진 점도 국민의힘에 약점이 됐다고 봤다. 김 교수는 "요즘 사람 동원이 가장 잘 되는 곳은 시민단체고, 여론 형성은 언론이 힘을 발휘한다. 사람들을 활발하게 동원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정당 조직은 상대적으로 약화돼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중 시민단체와 더 끈끈한 곳은 진보정당이다. 그러니 진보정당의 힘이 선거 때 더 강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김 전 교수는 "지구당 부활만 살펴보기 보단 현실 정치의 전체적인 틀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정당 제도, 선거 제도, 정치자금 제도가 다 맞물려있어 다 바꿔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지구당 부활이란 세련되지 않은 표현보단, 정당의 풀뿌리 조직이 형해화하고 있어 여야 모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하는 게 어땠을까 싶다"며 "풀뿌리 조직이 살아있어야 유권자들과 선거 때만 대화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소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구당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인식을 고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원로의 조언이다.

한편 김 전 교수는 서울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했고 외교안보연구원과 한림대를 거쳐 2002년 2월 인하대로 옮긴 뒤 사회과학대학장 겸 행정대학원장, 한국정치학회장,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 외교부 정책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최근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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