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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현지매체 카오솟과 로이터통신은 전날 태국의 정치활동가 네티폰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수감 중이던 교도소에서 탐마삿 대학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당국은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할 것이라 밝혔다.
네티폰은 당국이 임시 보석 석방을 철회하고 법정 모독죄 등으로 1개월 구금을 선고한 지난 1월 26일부터 자신과 다른 활동가들에 대한 당국의 '자의적 구금'에 항의하며 정치범의 보석석방 권리와 사상의 자유를 요구하는 110일간의 단식 투쟁을 벌여왔다.
그는 앞서 지난 2022년2월 왕실 차량 행렬이 지나가는 가운데 거리에서 '왕실 차량이 거리를 지나갈 때 교통을 통제하는 전통이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느냐'는 여론조사를 진행했다가 왕실모독죄와 선동죄로 기소돼 구금됐다. 그는 당시에도 항의의 표시로 64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왕실모독죄'로 불리는 태국의 형법 112조는 왕·왕비·왕자 등 왕실 구성원을 모독하거나 부정적 묘사를 하는 행위 등을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붕'이란 활동명으로 알려진 네티폰은 태국의 군주제 개혁·왕실모독죄 폐지·정치범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는 단체인 탈루왕 소속으로 활동해 왔다.
판사 아버지, 변호사 언니를 둔 그는 법조인 집안에서 자라온 수재였다. 고등학생이던 2014년에는 잉락 친나왓 정부를 축출하려는 친왕실·보수성향 단체인 국민민주개혁위원회(PDRC)의 시위에 참여하는 등 보수적인 성향이었으나 2010년 친탁신세력인 레드셔츠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99명 가운데 무고한 노숙인이 포함됐단 사실을 알게 된 후 '정치적 죄책감'을 느끼고 왕실개혁 운동에 뛰어 들었다.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는 애도 성명을 통해 네티폰의 죽음은 "평화적인 반대 목소리를 침묵시키기 위한 태국 당국의 명백한 노력의 일환이자 민주화 운동가들의 자유를 가혹하게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충격적인 일"이라며 "이 비극적인 사건은 태국 당국이 모든 인권운동가와 부당하게 구금된 사람들의 기소를 취하하고 석방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태국인권변호사협회(TLHR)에 따르면 태국에선 2020년 이후 272명 이상이 왕실모독죄로 기소됐고 이 가운데 17명이 재판 전 구금 상태로 수감 중이다. 지난 2월 사전 구금된 탈루왕 소속의 활동가 2명도 현재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태국에선 왕과 왕실은 불가침의 영역으로 왕실개혁 등의 논의도 금기시돼왔다. 하지만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2020년을 기점으로 군주제 개혁·왕실모독죄 폐지 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이에 태국 당국과 법원도 왕실모독죄를 더욱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헌법재판소가 2023년 실시된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제1당에 올라선 전진당(MFP)의 왕실모독죄 개정 공약이 위헌이라며 개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