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법조 인생 도움 필요한 분들 대면"
소년범에 '10호 처분' 장면 지금도 회자돼
"나쁜 기억 아닌, 자신 돌아볼 기회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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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방영된 KBS 1TV 다큐멘터리 '위기의 아이들-소년, 법정에 가다' 속 한 장면. 당시 비행 청소년을 선처할 듯하다 소년법상 가장 강력한 처분을 내린 수원지법 소년부 박나리 판사의 모습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덕분에 '단호박 판사'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17년간 몸담은 법원을 나와, 올해부터 변호사로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25일 '제61회 법의 날'을 맞아 박나리 법무법인 대륜 최고총괄변호사를 만났다.
박 변호사는 평생의 법조 인생 중 절반은 법관으로 지내봤으니, 남은 반은 변호사로서 의뢰인을 돕기 위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그동안 보람도 있었지만 나머지 법조 인생은 도움이 필요한 분들과 직접 마주하며 돕고 싶었다"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화제가 됐던 '10호 처분'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사이다'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아이의 인생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봤나'라는 댓글도 있었다. 저도 걱정이 됐다"며 "이후 근황은 모르지만, 그때 기억이 인생에 있어 나쁜 기억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니 예전에 저에게 소년 재판을 받은 적 있다는 연락이 SNS를 통해 왔었다"며 "그 친구는 '재판 이후로 마음을 다잡고 건실한 사회인으로 자라 잘 생활하고 있다. 감사하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방송에 나왔던 친구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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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법부의 뜨거운 감자인 '재판 지연'에 대해선 "굉장히 답답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의견을 내비쳤다. 박 변호사는 "불구속 형사 사건은 첫 기일을 잡는 데만 1년 이상이 걸린다고 들었다. 사건 발생 이후 4년 이상 걸려 선고받기도 하는데, 너무 느리다. 하지만 해결을 위해선 전체적으로 구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판사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어떤 변호사로 남고 싶은지'에 대해 그는 "법정에 나가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전달하는 변호사를 원할 수도 있겠지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게 변호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의뢰인이 특정 부탁을 하더라도 의뢰인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단호하게 설득할 수 있는 카리스마도 필요하다. 의뢰인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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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판사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한 17년 정도 판사 생활을 했다. 27살에 시작해 지금 40대 중반이 됐는데, 한 60대까지 법조인으로 살아간다고 한다면 절반 정도 지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보람도 있었지만, 나머지 법조 인생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이용해 도움이 필요한 분들과 마주하며 직접 도와주는 삶을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와 변호사 업무 차이를 체감하고 있나.
"판사는 한 달 동안의 일정을 예측할 수 있다. 어떤 날 일하고 어떤 날 판결문 쓸지 예측 가능하고 조정할 수 있다. 변호사는 예상이 불가능하다. 상담도 갑자기 잡힐 수 있고, 재판 일정도 재판부가 정해주는 것에 맞출 수밖에 없다. 법원과 의뢰인에게 맞춰야 하는 '을'이 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재미는 있다. 판사는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주변에서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는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도와달라고 하면 거기에 응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부분이 잘 맞는 것 같다."
-소년부 판사 재직 당시 비행 청소년에 '10호 처분'을 내렸던 다큐멘터리 장면이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평소 재판할 때 그런 행동을 잘 하진 않는다. 당시 방송 촬영도 있었고, 아이의 어머니가 나오셨었다. 법정을 나가게 되면 아이가 어머니와 교감하거나 스스로 반성할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정해진 결론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선고를 내렸는데, 그런 부분이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당시 10호 처분과 관련해 기억나는 반응이 있다면?
"변호사가 돼 SNS를 시작하니 알아보는 댓글이 많이 달렸었다. 한편 '이후 아이 인생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라는 댓글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저도 걱정이 됐다. 그 친구가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친구 인생에 있어 나쁜 기억이 아니라 자기를 되돌아볼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 친구 외에도 최근 SNS를 통해 '예전에 판사님에게 소년 재판을 여러 번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재판 이후로 마음을 다잡고 지금 건실한 사회인으로 자라서 잘 생활하고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하더라. 참 다행이다 싶었고, 방송에 나갔던 그 친구도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소년 재판 외에도 보람 있었거나 기억에 남는 재판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형사단독을 처음 맡았을 때, 첫 무죄 선고 사건이 생각난다. 절도 사건이었다. 화장실에 물건을 두고 나왔다 다시 돌아가니 사라졌었고, 입구 CCTV를 확인하니 시간상 피고인이 물건을 갖고 나왔을 것이라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유일한 증거인 CCTV를 꼼꼼히 확인했지만, 유죄의 증명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선고 당시 피고인이 굉장히 고마워했던 장면이 아직도 생각난다. 진짜 억울함을 풀었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에 남는다."
-최근 사법부의 '재판 지연' 문제가 주요 화두로 거론되고 있다.
"형사 사건 항소심 재판은 피고인이 불구속 상태일 경우 1년 동안 첫 기일이 잡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구속 사건은 구속 기간이 있어 먼저 기일을 잡다 보니 계속 밀리는 것이다. 이러다 보면 최초 재판 시작 이후 4년 이상 경과되는 일도 많다. 범죄를 저지른 때와 시점이 너무 지나 정의구현 관점에서 지연되는 부분이 있다. 민사 같은 경우에도 1년 정도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굉장히 답답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다. 판사 개인이 힘쓴다고 될 일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구상해야 하는 부분이다."
-대륜 최고총괄변호사로서 '일반소송/중재센터장'을 맡았다. 어떤 업무인가.
"부동산이나 기업 등 특정 분류에 속하지 않는 일반 민사 사건들이나 중재 사건을 소속 변호사 적성이나 능력을 고려해 배당하는 등 후배 변호사들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지도하는 역할이다. 또 기업이나 당사자들 사이에서 소송으로 가기 전에 적절한 합의를 끌어 내는 역할도 맡았다. 법관으로서 해볼 수 없었던 일을 맡게 돼 새롭다."
-'어떤 변호사'로 남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면?
"의뢰인들은 결국 본인의 이익을 위해 싸워줄 사람을 원한다. 결국 '이기는 소송'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법정에서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전달하는 변호사를 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게 변호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의뢰인이 특정한 부탁을 하더라도 의뢰인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단호하게' 설득할 수 있는 카리스마도 필요한 것 같다. 의뢰인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