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수위 강화 현실적 방안 촉구
기술 탈취 주장 10억 손배소 사건
허위 입증했지만 온라인 댓글 그대로
기업경영·그룹 이미지 타격 불가피
|
5일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은 온라인에서 접하는 정보의 진위 여부에 대해 우려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악의적 허위 및 미확인 정보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은 자칫 허위 사실로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전문대행사가 돈을 받고 실생활이나 체험을 빙자한 허위 리뷰를 작성하거나, 경쟁 업체를 비방하는 악성 댓글을 조직적으로 올렸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허다하다.
악성 허위 댓글로 인한 피해는 대기업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2016년 A사는 현대자동차가 자신들의 기술을 탈취했다고 주장하며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기술 탈취가 없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이에 사법부는 1심과 항소심·상고심에서 모두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기술 탈취 등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현대차는 소송이 진행된 기간 동안 '협력업체는 안중에 없느냐' 등 대기업을 향한 근거 없는 비방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기술 탈취 의혹은 벗었지만 악성 댓글은 고스란히 남아있고 작성자 중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가뜩이나 최근 국내 대기업 총수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이를 실천하는 '신 기업가정신'을 제1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지탄 받는 기업은 영속 할 수 없고, 지속가능한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커진 탓이다.
유명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의 감자튀김 이물질 의혹 사건 역시 악성 댓글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지난 2월 초 한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감자튀김에서 동물 다리가 나왔다'는 글이 게재됐다. 검은색 물체를 튀긴 듯한 사진은 "쥐 실험을 해봐서 보자마자 쥐 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일방적인 추정성 댓글이 달리면서 일파만파 확산했다.
당시 업체 측은 "감자에 튀김 옷을 입히지 않는다"며 법적 대응 등 강력 조치를 예고했지만 일부 매체가 네티즌 반응을 옮기며 매출과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사태는 게시글 게재 2주 만에 식약처가 "해당 물질은 감자가 튀겨진 것"이라는 공식 분석 결과를 내놓으면서 일단락됐다.
이밖에 1건 당 1000원을 받고 저질 제품을 '최고'라며 홍보해준 전문대행사가 적발되는가 하면, 댓글 알바를 고용해 경쟁 입시교육업체와 강사를 비난하는 댓글 20만여 건을 올리도록 한 유명 입시교육업체 대표 및 강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인터넷 댓글 창은 이미 악성 허위 정보와 편중된 여론조작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악의적 허위 정보 확산에 앞장서는 이들을 교통사고 현장에 경쟁적으로 달려가는 견인차에 비유해 '사이버 렉카(Cyber Wrecker)'라고 부른다.
재계 관계자는 "여과 되지 않은 악의적 정보로 실적이 좋아도 주가가 폭락하는 등 회사는 물론 선량한 주주들까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빈번하다"면서 "사이버 렉카에 대한 사회적 견제는 거의 전무한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실제 악성 허위 정보 또는 미확인 정보를 담은 비방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폐해에 비해 예방을 위한 규제와 처벌은 미미한 상태다. 형법 제314조에 따르면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등으로 업무를 방해했다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악성 댓글에 악의적 허위 사실이 포함돼 있는 경우라면 정보통신망법 상 명예훼손으로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도 가능하다.
하지만 막상 불특정 다수인 댓글 작성자를 일일이 특정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찾아내더라도 2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범의 경우 기소유예 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단순 일회성 댓글의 경우 사실상 처벌이 어렵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악성 댓글 규제에 찬성하는 등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폐해를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 여론이다. 규제 방식으로는 민형사상 처벌 수위 강화가 꼽힌다.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회적 불안감과 혼란을 야기하는 정보에 대해 삭제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모호한 기준 및 인력 부족 등으로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다.
특히 악성 댓글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재발 방지를 위한 경고 효과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현실적 규제 방안이라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미 플로리다 법원이 문제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 알선 사업을 하던 한 시민에 대해 '사기꾼'이라는 악플을 단 여성에게 무려 113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내리는 등 해외 국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시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2021년 가짜뉴스 및 악플방지법의 일환으로 고의적 허위 또는 불법정보 작성자에게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악성 댓글의 해악에 대해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라며 "불특정 네티즌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국가가 나서 적절한 구제 방안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