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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로] ‘DB하이텍’ 흔드는 KCGI… 행동주의펀드의 민낯

[여의로] ‘DB하이텍’ 흔드는 KCGI… 행동주의펀드의 민낯

기사승인 2023. 06. 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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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 DB하이텍 주가는 요동쳤다. 지분 7%를 사들인 행동주의펀드 KCGI, 소위 강성부펀드 영향이다.

행동주의펀드는 타깃 기업의 지분을 사들인 후 의결권 행사와 주주제안, 경영진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사업 환경을 개선, 기업의 가치를 정상화 하는 걸 목표로 한다. 기업 경영에 문제가 있으니 주주 차원에서 가장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배당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액 주주들의 권리도 찾겠다는 취지다.

그럼 행동주의펀드는 기업을 살리는 백기사일까. 좋은 지배구조가 높은 수익으로 이어질까. 회사의 미래에는 긍정적일까.

DB하이텍을 들여다본다. KCGI의 첫번째 요구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김준기 창업회장에 대한 퇴진이다. DB하이텍에 애착이 큰 창업주를 물러나라고 하니, 회사로선 참으로 들어주기 어려운 주문이다.

문제의 창업회장 퇴진은 과연 기업 성적표와 연결될까. 브랜드 이미지가 실적과 직결되는 DB손해보험 등과 달리 기술력으로 커 나가야 하는 전형적인 B2B 반도체 사업에서 요구되는 건 오너의 뚝심과 신뢰다. DB하이텍은 애초부터 오너의 의지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회사였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10년 넘게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 댔다. 그룹이 어려워져 구조조정에 들어가 상당 자산을 팔아야 했지만 DB하이텍만큼은 애지중지 해 왔다. 재계에서 드물게 실제로 오너가 35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기까지 했다

결실을 맺기 시작한 건 2014년 창사이래 첫 흑자를 내면서다. 2년전에서야 비로서 매출 1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영업이익은 7687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부진한 실적을 문제 삼기 어려운 이유다.

주가는 어땠을까. DB하이텍 주가는 2018년말 1만850원에서 19일 현재 6만4900원으로 지난 5년간 약 600% 상승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업종의 삼성전자가 83%, SK하이닉스가 79% 뛴 폭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괄목할 성장을 해 왔는지 알 수 있다. 3월말 KCGI의 DB하이텍 지분매입으로 DB하이텍 주가는 장중 한때 8만3600원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이후 거품이 꺼지며 6만원 초반에서 횡보중이다. KCGI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각기 다른 소액주주들이라해도 고배당 등 이해가 맞으면 결집할 수 있다. 다만 회사 미래를 담보로 사업 방향을 자의적으로 요구하고 경영권 자체를 흔드는 건 문제가 있다. DB하이텍은 성장 잠재력이 큰 회사다. KCGI가 픽 한 배경일 수도 있다. 산업부 기자로서 우리 반도체 생태계를 걱정한다. 글로벌 파운드리 10위 기업의 현실은 잠재력이 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고객을 찾고 사업 방향과 투자를 결정해야하는, 밸런스 있는 기업 경영이 요구되는 시기에 소모적 분쟁에 역량이 낭비될 수 있어서다.

기업에 대한 지나친 '흠집내기'로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고 경영권마저 위협받게 되는 상황도 우려한다. 경영권 불안요소는 장기적으로 안정적 공급을 기대하는 고객사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기 충분한 요소다. DB하이텍의 다수 거래처가 해외에 포진돼 있다는 측면에서 특히나 그렇다. 자칫 이번 사태가 DB하이텍에 대한 외국 투자가들의 투자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이제 막 8인치로 돈을 벌기 시작한 마당에 당장 12인치 파운드리 사업에 나서라는 요구도 무책임 해 보인다. 감당하기 힘든 투자가 있어야 하고 성과는 장담할 수 없어서다. 이미 20년 이상 사업해 온 전문가들이 내린 경영적 판단이다.

현대차가 과거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의 요구대로 천문학적 배당에 나서며 재원을 다 소진했다면 지금 글로벌 전기차 시장 3위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수소차·자율주행과 UAM에 이르는 여러 신사업 투자는 이어올 수 있었을까. KCGI, 더 나아가 주주들의 과도한 입김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이쯤되서 행동주의펀드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만나서 얘기하자 해놓고 날짜까지 잡는 와중에 돌연 맹비난에 나섰던 그 여론 플레이 배경을 떠올려 본다. DB가 어떻게 반응했든 KCGI는 지상과제인 사익추구를 위한 시나리오 대로 갈 수 밖에 없었을 거란 뒷말이 무성하다. 정말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기만일까. 마땅한 카드가 없는 '행동주의펀드'가 무작정 공격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그 내면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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