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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농막규제 같은 ‘입법’, 尹정부 국정철학과 맞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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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06. 12. 18:19

김이석 논설심의실장
최근 정부가 농막에서 숙박을 금지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을 예고하자 귀촌을 염두에 두고 시골에 땅을 사서 농막을 지어 사용하고 있거나 그럴 계획이던 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다음의 댓글도 그런 반발의 하나인데 여기서도 법과 입법을 특별히 구분해 쓰지 않음을 보여준다.

"농지 한 귀퉁이에 코딱지만 한 집 짓고 주말에 전원을 즐기겠다는 게 뭐가 그리 큰 죄가 되고 나라에 부담이 되는가. 농지라서 안 된다고. 법이 그렇다면 법을 바꿔야지. 이젠 국민들도 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게 하면 안 되나."

이렇게 사람들은 일상용어를 쓸 때 법(law)과 입법(legislation)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어느 것이든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댓글을 단 이 시민도 분명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함부로 고치거나 바꿀 수 없는 그런 '법'에 대비된 쉽게 고쳐도 상관없는 '입법'된 법이란 개념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오랜 진화의 과정 속에서 무수한 검증을 거쳐서도 살아남은 언어나 문법처럼 무수한 인간 행동의 결과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의도적으로 디자인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문법'과 '언어'는 함부로 변경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진화를 통해 발견한 '법'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입법, 즉 의도적인 법 만들기는 사람이 화염과 화약보다 그 파괴력이 훨씬 더 멀고 길다"면서 법과 입법의 구별을 강조했던 인물이 바로 20세기 사회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자유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던 하이에크 교수였다. 그는 "이 '입법'이란 최근의 발견물을 큰 해악을 낳지 않도록 통제하는 법을 아직 사람들이 익히지 못했다"고 썼다(하이에크, 〈법, 입법, 그리고 자유〉).

이런 농막 규제의 강화가 그렇지 않아도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에 귀촌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 경제학자들은 이런 규제의 강화가 농지를 가진 농민들에게도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곧바로 간파한다. 이런 규제로 귀촌을 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고 그만큼 농지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경자유전(耕者有田)이란 해묵은 헌법 조항이 논밭을 가진 농민들에게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수요가 줄어들어 그 농민들을 불리하게 하는 것을 곧바로 연상시킬 것이다.

여러 명이 사는 사회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규칙들을 진화시켜 왔고, 그 가운데 하나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의 소유물을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게 사용, 수익, 처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농막에서 잠을 자면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기에 농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장의 가격이 잘 작동하고 있고, 소유물을 지닌 개인들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의 생각대로 이를 쓸 수 있도록 허용될 때 다양한 기업가적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실험 속에서 소비자들이 더 선호하는 것들이 발견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이런 규제 강화의 입법안을 내놓기 전에 이것이 "화염과 폭약"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하이에크의 경고를 잘 새겼으면 좋겠다.

시장경제는 오랜 진화과정에서 발견한 '법'을 존중하는 사회, 그리고 규제입법에는 사람을 다칠 수 있는 폭약을 다루듯이 매우 신중한 그런 사회에서 꽃필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정철학을 높이 세워 올렸는데도 이런 입법안이 충분히 걸러지지 않은 채 나와서 놀랍다. "별 쓰잘 데 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나랏돈 빼먹는 시민단체 다 없애라"는 댓글이 자꾸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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