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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과 북한 양국의 견제와 압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우선 북한은 한소 수교에 반발해 당시 모스크바에 있던 대표단 전원의 철수 카드를 꺼내들면서 소련 당국을 압박했다. 미국 역시 한소 수교로 한미 관계가 소홀해질 수 있다면서 걸프전 지원 문제를 거론하는 등 한국을 견제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미국을 끈질기게 설득해 한소 수교를 이뤄냈다. 이는 한국 외교 역사상 최대 성과로 꼽힌다. 한소 수교는 곧 1992년 한중 수교로도 이어졌다. 이어 30년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됐다. 나아가 한반도 평화 관리의 튼튼한 기반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군인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 외교에는 '통찰'이 있었다. 국제 관계의 변화를 빨리 읽고 주도적 대응을 하는 외교 전략이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 북방 외교를 통해 한국은 외교적으로 고립된 '섬'에서 벗어나 글로벌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국 외교부가 지난 9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항의했다. 전날 이뤄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만찬회동에서 싱 대사가 한 발언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외교부의 싱 대사 초치는 몇가지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 없지 않다. G8 회원국을 지향하는 국가의 외교 답지 않다는 지적들이 필자의 주변에 많은 것을 보면 그렇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를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지금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대중국 무역적자는 갈수록 늘어나 한국 경제를 옥죄고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단체여행 해제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서민경제와 밀접한 여행, 숙박, 음식, 유통 산업 등이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과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정말 적절하지 않다.
싱하이밍 대사는 중국 내에서는 대표적인 지한파이자 친한파로 유명하다. 그는 4번째 한국에 근무하는 중국 외교부의 대표적인 '한국통'이자,김치를 누구보다 좋아해 부인이 직접 김치를 담가 먹을 정도이다. 그는 또 북한에서 대학을 나오고 근무하기도 해 끈끈한 대북 대화 채널을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중국의 고위 외교관으로 손꼽힌다. 그가 그동안 중국 외교부 내 강경그룹에 맞서 한국의 입장을 많이 옹호해온 것은 외교가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싱 대사를 초치했다는 것은 중국 내 최대 친한파를 잃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세번째 지적 역시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제 정세를 보면 미국, 유럽, 일본 등이 중국에 밀착하는 흐름에서 한국만 소외될 가능성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얼마전 히로시마(廣島)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대중국 접근법인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말이 나왔다. '위험 줄이기'라는 뜻이다. 중국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해온 '분리'라는 의미의 '디커플링(decoupling)'보다 외교적으로는 더 온건한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중국과의 전략 경쟁과 경제 협력을 함께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테슬라를 비롯해 JP모건, 엔비디아 등 미국 대기업들의 수장들이 중국으로 향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같은 행보를 보였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마치 앞뒤 가리지 않는 '돌쇠'처럼 미국의 반중국 정책에 첨병 노릇을 한다면 진짜 시쳇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필자도 지난 6일 정대철 헌정회장과 함께 주한 중국 대사 관저에서 싱 대사와 만찬을 함께 했다. 그날 싱 대사는 한중 관계에 대한 걱정과 한중 경제협력의 중요성, 한중 공공외교의 강화 등을 강조했다. 그의 말에서는 한중 우호에 대한 깊은 철학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한국은 반도국가이자 분단국가라는 숙명을 타고 났다. 지경학적인 조건은 우리에게 외교의 통찰을 요구하고 있다. 외교가 이 나라 생존과 번영의 핵심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의 외교적 통찰과 추진력이 더욱 생각난다. G8 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외교의 통찰을 기대한다. 그것이 한국이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이 칼럼의 내용은 개인의 의견입니다. 반론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