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변작 중계기 등 등장…가족 납치 '시나리오'까지
작년 피해액 5천억 넘겨…경찰 "의심 사례 경찰 신고"
|
# 지난달 50대 여성 B씨는 딸이 대출 보증을 서서 납치됐다는 한 남성의 협박 전화를 받고 5000만원을 갈취당했다. 이 남성은 B씨에게 자신이 연락하는 지정 시간에만 휴대폰을 켜두게 했다. 주변인과 연락을 단절시켜 보이스피싱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법이다. B씨는 딸이 납치된 상태에서 화를 당할까 그의 말대로 이행했다. 남성의 지시에 따라 현금을 인출해 서울의 모처에서 5000만원을 전달하고 숙박업소에서 하루를 보낸 뒤에야 자신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단순히 전화나 문자만 이용하던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이 발신번호 조작 등 첨단 기술과 함께 유출된 개인정보를 토대로 치밀하게 짜인 '시나리오'형 범죄로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경찰은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응하고자 전국 경찰서에 피싱 전담팀 신설을 추진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경찰 대응보다 범죄 수법이 한 발 더 앞서며 시민들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보이스피싱 범죄는는 초기 편취수법인 '계좌이체형'에서 2019년 6월을 기점으로 '대면편취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포통장 집중 단속과 계좌 지급정지·인출지연 등 규제 강화로 범행이 어려워진 데 따른 결과다.
실제로 2018년 계좌이체 범죄 건수는 3만 611건이었다가 2022년 2161건으로 14배가량 줄어든 반면, 대면편취는 2018년 2547건에서 2022년 1만 4053건으로 약 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이스피싱 피해액의 경우 2018년 4040억원에서 2021년 7744억원으로 최다치를 기록하다 지난해 5438억원으로 피해 규모가 오르내림세를 반복하고 있다.
|
경찰청 관계자는 "국민 대부분이 보이스피싱 범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 당할 거라고 방심하지만, 개인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철저하게 시나리오 연습을 거친 숙련자들이 최첨단 기술까지 동원하며 당신을 목표로 삼으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라며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기관일 경우 보이스피싱일 가능성이 큰 만큼 의심되는 사례의 경우 경찰에 꼭 신고를 해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첫 보이스 피싱 범죄는 2006년 5월 인천에서 발생했다. 이 당시 한 시민은 국세청 직원 사칭 전화를 받고 현금 800만원을 범인 계좌로 송금해 피해를 입었다. 이 일을 시작으로 국내에선 전화 또는 문자를 이용하는 기망수법의 보이스피싱이 주를 이루다 검사·경찰 등 수사기관 및 금융감독원 사칭, 정부지원금·대출을 빙자하는 등 정부·금융기관을 사칭하는 수법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