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경제를 뒤흔든 '국정농단'과 '경제 민주화'의 태풍을 지나 다시 기업가 정신이 요구되는 복합위기의 시대가 왔다. 대통령은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라고 했고 내리막 국면을 맞은 수출을 플러스로 반등 시키자며 18개 정부부처가 다 머리를 맞댔다. 환경부·복지부·기재부 같이 기존 산업통상자원부와 조율 과정에서 삐그덕 거릴 수 있는 부처들이 규제 개선과 지원에 무조건적 협력을 약속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몰아치던 대기업 때리기가 멈추면서 기업을 대하는 태도는 정권 교체 이후 180도 급변한 듯 보인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사회적 시각에 대한 부담은 채 가시지 않은 모양새다. 해체 이후 아직 부활하지 못한 일등기업 삼성의 '미래전략실'과 재계 맏형이라 불리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는 대목이 그렇다.
우리나라 수출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지난해 4분기 무려 69% 고꾸라졌다. 그룹 차원의 역량을 한 데 모으고 대규모 M&A까지 기획 할 미래전략실의 필요성이 안팎에서 터져 나오는 이유다. 숙제인 투명한 지배구조 재편은 전 그룹사를 일사불란하게 컨트롤 해야 가능한 영역이다.
허창수 회장이 사의를 표하며 또한번 존폐기로에 놓인 전경련은 사실 긴 시간 한국 재계를 대표해 온 정통성을 갖고 있다. 미국·일본 등의 정·재계 인맥과 네트워크는 일개 기업이 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두터운 정보력과 의전 노하우는 무거운 정부보다 긴밀하고 은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아웃리치 로비활동을 벌일 수 있다.
미국의 반도체지원법과 칩4동맹, IRA(인플레이션 저감법) 법안이 재계를 뒤흔든다. 경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윤 정부가 진짜 나서야 할 지점이 여기에 있다. 불모지 대한민국이 제조업 강국, 첨단산업 중심으로 뛰어오른 과정을 떠올려보자. 이병철·정주영의 불도저 DNA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등장할 수 있을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정경유착' 시선 두려울 수 있지만, 밀고 당기고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려면 때때로 부대끼고 얽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