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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은 일리가 없지 않다. 자본주의라고 하면 사회주의 성향의 학자들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체제'로 잘못 정의해 왔기에 아직 이런 인식에 젖은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자유시장 옹호자인 루트비히 미제스는 생산수단의 개인적 소유를 특징으로 하는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이를 부인하는 '사회주의'와 대조시켰었다. 또 그는 저축을 통한 자본의 축적이 경제성장에 핵심적이라고 강조했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자본주의란 용어를 함부로 버릴 수는 없다.
이에 더해 자본주의란 말과 깊은 연관을 가지는 '자본' 개념은 소득, 저축, 투자 등의 개념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경제학 연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경제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가상적 사례(김이석, 《시장경제원론》 46-51)를 살펴보자.
갑돌이는 1시간을 투입하면 1개의 코코넛을 수확한다. 그는 하루 10시간을 투입해서 하루 10개를 수확하고 하루 10개를 소비했다. 그러다가 혹시 일을 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서 약간의 배고픔을 참고 하루 8개만 소비하고 2개를 '저축'한다. 25일간 그렇게 하면 50개의 코코넛을 비축한다. 그렇게 비축하고 나서는 당일 수확한 10개를 모두 소비해도 50개가 계속 비축된다.
이제 그는 2일간 코코넛 따는 장대를 제작한다. 코코넛 따는 일을 못했기에 10개씩 이틀간 20개가 소비되고 30개가 비축된다. 그러나 코코넛 장대(생산재, produced means of production)를 이용하면 시간당 5개를 수확할 수 있다. 그래서 하루 4시간만 일해도 코코넛 20개를 따고 코코넛이 더 많이 비축된다. 코코넛이 100개 비축될 때 20개로 소비를 늘린다면, 그는 100개의 비축을 유지할 수 있다.
코코넛 장대가 1주일 후 수선이 필요하다면, 8일째 7시간을 들여 종전 성능이 회복된 장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날 코코넛 따기는 물론 하지 못했다. 다음부터 매일 1시간씩 투자해서 7일마다 성능이 회복된 장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갑돌이는 자신의 소득보다 적게 소비함으로써 미래소득의 급감에 대비하는 기금을 쌓는 '저축'을 했다. 일정 시점에 쌓인 기금에 대한 가치평가가 '자본'인데 이를 투입해서 그는 자본재(장대)를 생산해 그의 노동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는 총소득을 모두 쓰지 않고 순소득(net income)만 소비함으로써 자본재의 성능을 유지했다. 그가 이보다 더 많이 저축했다면 '자본축적'을 한 것이고, 반대로 이보다 더 많이 소비했다면 '자본소비'를 한 것이다.
위의 가상 사례는 간단하지만, 생산성과 여가의 증가 등 자본주의에 관해 많은 것을 설명한다. 이 사례는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로 혹은 화폐가 도입된 체제로 확장될 수 있다. 갑돌이는 이제 저축한 게 없어도 다른 사람이 저축한 것을 '빌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저축을 통해 '자본'이 축적되어야 이를 현명하게 투자할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저축은 더 이뤄지지 않았는데 시장이자율을 조작해서 더 투자하게 만들면 조만간 저축이 없었다는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게 미제스의 경기변동론의 핵심적 메시지다.
이런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자본주의란 용어를 유지하면서 왜 자본축적이 중요한지 제대로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