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부회장 9년만에 회장직 올라
집무실 본사 임원실층과 같아
'인재 중시' 신입공채도 직접 면접
글로벌사업·ESG·디지털경영 강화
김 회장은 여느 재벌 2세와 달리 밑바닥 현장에서부터 업무를 익힌 ‘31년 차 오너 금융맨’이다. 29살에 동원증권 명동지점 ‘대리’로 증권업계에 발을 들였고, 실무를 두루 익혔다. 가업을 잇기보다 미래 가치가 큰 증권사를 택했다. 2004년 동원그룹의 계열분리 당시 동원금융지주를 맡아 독립했다. 17년의 세월 동안 과감한 전략과 뚝심으로 몸집을 키웠다.
6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작년 말 기준 자기자본 규모(28개 계열회사 기준)는 14조원대로, 김재철 명예회장이 자본금 71억원으로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한신증권을 인수(1982년)할 당시 대비 1930배로 불었다. 핵심계열사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업계에서 순이익 선두를 다투는 대형증권사로 성장했다. 물론 쓴맛도 봤다. KDB대우증권과 현대증권 등 두 차례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영업점 직원의 사적 금전 거래로 인한 금융사고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지주의 성장에도 김 회장은 자기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월평균 10여 권의 책을 읽을 만큼 ‘독서광’이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밑바탕이 됐다. 김 명예회장도 지난해 지주 직원들에게 ‘워라밸 시대의 일의 의미’를 조명한 책을 선물했다. 또, ‘거화취실(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취한다)’을 추구한다.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으며, 혹여 따라나서면 “왜요”라고 되물을 정도라고 한다. 집무실은 지주 본사 임원실 층을 같이 사용하며, 임원들에게도 존댓말을 쓴다. 오너인데도 직접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 참여하며, 매해 대학 채용설명회 현장을 직접 찾는다. 코로나19로 지난해엔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김 회장의 꿈은 아시아 최고 수준의 투자금융회사다. 이를 위해 경쟁사인 미래에셋증권 대비 자기자본이 적고, 해외 성장 속도가 더딘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지난해 라임과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를 겪었던 만큼 리스크 관리도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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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전남 강진 출생인 김 회장은 동원그룹 맏아들이다. 부친인 김 명예회장은 특별한 혜택을 주지 않았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마친 그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가업승계를 하느냐, 다른 길을 개척하느냐였다. 김 회장은 미래 성장가능성을 보고 험로를 택했다. 뱃사람 경험을 생각하면 두려울 게 없었다. 업계 6~7위였던 동원증권(전 한신증권) 명동지점 대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영업점, 채권부, 기획실 및 뉴욕사무소 등을 거치며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가정도 꾸렸다. 아내 고소희 씨는 28대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고병우 씨의 딸로, 이화여대 전산학과 86학번이다. 자녀로는 1남 1녀(동윤·지윤)를 뒀다.
증권맨으로 실력을 갈고닦은 김 회장은 2004년, 홀로서기에 나섰다. 동원그룹의 계열 분리 당시 동원금융지주를 맡았다. 산하엔 사실상 동원증권이 유일했다. 이듬해 그는 외형확장을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당시 동원증권보다 큰 회사인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했다. 김 회장은 경영진이 제시한 가격보다 높은 금액을 써냈다. 대형 그룹사로 거듭난 결정적 ‘한 방’이었다. 그는 결정은 신중하게 하되,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냈다. 같은 해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2011년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에 오르며 독자적 경영체제를 굳혔다. 그는 지분 20.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아버지에 대한 예우차원으로 지난해 9년 만에 회장직에 올랐다. 그룹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이후 3년 연속 증권사 당기순이익 1위를 차지했다. 다만 작년엔 미래에셋대우에 1000억원 차이로 왕좌를 내줬다. 수익성지표인 지난해 ROE(자기자본이익률, 별도기준)는 10.8%로 대형사 기준 상위다.
◆ 공격적 사업확장…두 번의 M&A 좌절
김 회장은 증권업을 중심으로 사업영역을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11월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과 함께 금융위원회로부터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로 지정됐다. 같은해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단기 금융업(발행어음) 인가를 받아 흥행에 성공했다. 작년 말 기준 한국투자금융지주(28개 계열회사)의 자기자본은 13조7043억원, 자산규모는 68조2717억억원이다. 공정위 기업집단 지정 시점인 2009년 대비 각각 172%, 307% 늘었다.
한국투자증권뿐만 아니라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VC)인 한국투자파트너스를 비롯해 한국투자저축은행, 한국투자캐피탈,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 KIARA ADVISORS 등 6개의 자회사(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총 28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특히 국내를 넘어 글로벌IB를 목표로 해외 영토를 확장했다. 한국투자증권의 해외법인은 미국, 영국,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7곳에 있다. 2018년엔 홍콩법인에 유상증자 등을 단행하며 경쟁력 확보에 주력했다.
은행업에도 발을 뻗었다. 2016년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 설립 때 대주주로 참여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핀테크 시장을 선점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현재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28.6%)을 통해 카카오뱅크의 2대 주주로 있다. 같은 해 우리은행 지분 4%도 인수해 과점주주 지위에도 올랐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지분을 보유 중이다. 김 회장은 “은행, 증권, 자산운용, 벤처캐피탈로 이어지는 금융 풀라인업(full line-up)을 구축할 것”이라고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성장 과정에서 진통도 겪었다. 두 번의 M&A 실패를 경험했다. 2015·2016년 대우증권·현대증권 등 대형 증권사 인수합병(M&A)에 도전했지만, 경쟁사에 빼앗겼다. 이후 그는 몸집을 키우기보다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금융사고로 내부통제 미흡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2014·2016년 지점 직원의 고객돈 횡령 사건이 발생했고, 유상호 당시 사장은 금융사고 제로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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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CEO로 알려져 있다. 틈만 나면 수권의 책을 읽고, 경영 아이디어를 얻는다. 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가르친 독서교육이 밑바탕이 됐다. 특히 임직원들과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지주 본사 임원실 층을 같이 쓰며 다이렉트로 경영현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다. 매년 송년회에도 참여해 회사에 대한 애로사항을 경청한다. 회식 자리에선 ‘소맥(소주와 맥주)’를 즐겨 마신다는 후문이다. 코로나 여파로 작년엔 하지 못했다. 절약 정신도 몸에 배어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과거 몇 년 동안 구형 에쿠스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처분한 상태다.
또 그는 기업의 경쟁력은 인재에서 나온다고 봤다. 채용부터 양성까지 손수 챙긴다. 신입사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직접 질문을 던진다. 지주 한 관계자는 “화려한 스펙을 보기보다 회사에 들어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회사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지 등을 물으신다”고 말했다. 지난해를 제외한 매해 대학 채용설명회를 직접 찾아 대학생과 만났다. 김 회장은 현장에서 “우리 회사는 호화여객선이 아니”라며 “뜻을 높게 세우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의 좋은 점을 홍보하기 보다 “내 능력의 끝이 어딘지 시험해보고 싶은 분들은 지원하라”며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김 회장의 자본시장 개척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국내 유일의 증권 중심 금융지주회사 최고경영자로서 리스크 관리, 글로벌 신사업 확대, 인재경영, 디지털 혁신, ESG 경영 강화에 주력할 계획이다. 아시아 최고 수준의 투자금융회사로 키워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업계 일각에선 경쟁사 대비 적은 자기자본 규모를 늘려 M&A 등 투자 여력을 확대해 나갈 필요성을 제기한다. 순이익은 업계 1~2위지만 자기자본은 3위(5조6332억원)로 1위인 미래에셋과 3조원 이상 차이가 난다. 해외사업 역시 투자 대비 성장폭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조언이다. 다만 몸집보다 내실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주머니가 가벼울수록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며 “자본이 많아도 자본이익율이 떨어진다면 그게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 관계자는 “해외시장의 개척과 진출 확대는 그룹 성장 기반의 확충과 연결된 핵심 과제”라며 “해외 네트워크들을 체계적으로 점검, 정비하고 본격적인 협업 과 시너지를 강화함으로써 그룹 전체의 해외 수익 기여 비중을 단계적으로 높여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자기자본 확대와 추가 M&A 가능성에 대해선 “검토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현재로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