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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등장한 ‘디지털 교도소’는 웹툰 ‘비질란테’의 주인공을 떠오르게 한다. 디지털 교도소는 성범죄자를 비롯한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범죄자는 150여명에 달한다. 사이트 등장 이후 개인정보 노출을 놓고 끝없는 논란이 이어져 왔고, 지난 3일 해당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고려대 재학생 정모씨(21)가 “억울하다”는 심정 토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돼 논란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는 “조주빈이 잡힌 이후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알리려고 사이트를 개설했다”며 “솜방망이 처벌로 가해자만 잘 사는 것을 보니, 범죄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신상 공개를 통해 피해자를 위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이트에는 하루 평균 2만명이 방문하지만, 방문자가 많은 날에는 30만명 이상이 찾기도 한다. 모든 범죄자의 신상 공개 기간은 30년이고 근황은 수시로 업데이트된다.
◇ 불법이지만 지지 늘어나…사법부 불신 때문
일반인뿐만 아니라 범죄자의 신상 공개 역시 엄연히 불법이지만 디지털 교도소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미약한 솜방망이 처벌이 사법체계 자체를 불신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박지윤씨(26)는 “여성이기에 성범죄자만큼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며 “디지털 교도소를 제재하려면 사법부부터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단체 역시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미흡한 사법체계로 가해자의 사회적 명예를 떨어뜨리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절박한 심정을 한 번이라도 이해해보라”고 호소했다.
◇ 확실치 않은 정보 공개…21세기 마녀재판 우려
반면 디지털 교도소가 모두에게 ‘비질란테’인 것은 아니다. 김도윤씨(30)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공범이라며 신상이 사이트에 공개됐다. 하지만 이는 동명이인에 대한 제보를 오인한 디지털 교도소의 실수였다.
또한 지난 7월 6일 디지털 교도소는 사망한 정씨가 텔레그램을 통해 이른바 ‘지인능욕’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신상이 공개된 정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이트에 올라온 신상은 내가 맞지만 그 외의 모든 내용은 허위”라며 적극 해명했다. 범죄 사실은 여전히 확인 중에 있지만 그의 신상은 이미 사이트에 공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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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온라인상의 무분별한 신상 공개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질타하며 실효성 있는 법적 처벌을 주문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디지털 교도소에 수감되는 게 두려워 성범죄를 안 저지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N번방 방지법이 제정됐지만 법원 판결이 이를 따라오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는 만큼 오는 12월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 발표에 시민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단체 관계자도 “우리는 신상공개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기는 걸 바라는 게 아니다”라며 “최종 목적지는 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는 사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