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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1일 “싱가포르와 러시아가 올해 수교 50주년을 맞는다”며 “양국 관계는 경제 분야에서 번창했으며 벨루소프 CEO의 기업가 정신은 싱가포르가 구축하고자 하는 목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전했다.
벨루소프 CEO처럼 많은 러시아인들은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심지어 시민권을 얻거나 영주권을 취득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에 있는 러시아 기업은 2016년 기준 650개다. 2004년 14개, 2011년 286개였다. 싱가포르와 러시아 간 무역량 또한 2016년 33억달러(약 3조5000억원)에서 2017년 57억달러(약 6조원)로 급증했다. 1년 만에 24억달러(약 2조5000억원)가 늘어난 것이다.
러시아 대사관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은 4500여 명이 넘는다. 2004년 400명에서 11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최근 이중간첩 독살 의혹, 미국 대선 개입 논란 및 사이버 공격에 대한 미국의 새 대러 제재 등 러시아 정부의 국제활동에 관한 국제사회 차원의 엄격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에 있는 러시아인들은 환대를 받는다고 SCMP는 전했다.
안드레이 타타리노프 싱가포르 주재 러시아대사는 “러시아는 싱가포르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한 파트너로 골랐다”며 “러시아인들은 아주 좋은 사업 기회가 널린 싱가포르를 비즈니스하기에 편한 장소로 여긴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를 떠나 타국에서 살던 러시아인들조차 혁신적인 싱가포르 정부에 대한 선호 때문에 싱가포르로 왔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와 러시아의 끈끈한 관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對) 아시아 외교 정책을 재조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SCMP는 분석했다. 오랜 기간 제국이었던 러시아는 작은 나라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2003년부터 5년간 러시아 주재 싱가포르대사를 지낸 마이클 테이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 가운데 특히 싱가포르의 중요도가 제일 떨어졌다”며 “싱가포르는 브루나이처럼 석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캄보디아나 라오스처럼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도 러시아에 관심이 없던 건 마찬가지였다. 테이 전 대사는 “주류 언론이 옛 소련 정보기관인 KGB나 부패 등을 거론하며 러시아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싱가포르 기업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며 “사실상 러시아는 정치적 상황에 의해 복합적으로 더 악화하고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러시아와의 비즈니스 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다. 테이 전 대사가 만든 2006년 연례 콘퍼런스인 러시아-싱가포르 비즈니스 포럼(RSBF)이 양국 비즈니스 관계의 길을 열었다. 그는 “러시아 기업인들에게 RSBF가 그들을 다르게 볼 수 있게끔 할 기회라고 설득했다”면서 러시아인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상징성 있는 일을 선호하는데, 이것이 그들의 기업가 면모를 돋보이게 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의 노력은 일부 러시아인들의 생각과 맞물려 성과를 내는 데 속도가 붙었다. 서방 제재와 경제 성장 둔화 때문에 더 나은 기회를 모색하던 고학력에 중산층인 많은 러시아인들이 관심을 보인 것이다. 러시아에서 창업했으나 경기침체로 2012년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 벤처캐피탈·사모펀드 업체 라이프의 투자이사 이고르 페신은 “러시아는 폐쇄된 국가”라며 “우리는 세계적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싱가포르에 오지 않았으면 그렇게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싱가포르로 이전하기 전에 다른 국가에서 일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면서 “싱가포르는 국제 허브이며 이러한 국가는 세계에서 매우 적다”고 덧붙였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2016년 “싱가포르 스카이라인에 적어도 하나쯤은 러시아 정교회의 돔이 생길 날이 오길 기대한다”고 했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면 그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SCMP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