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에게는 통일이 있다”
글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편집자 주>
21세기 지구촌을 좌우할 4강국 미국, 중국, 인도, EU. 이 나라들의 21세기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이에 견주면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엄청난 기회를 갖고 있는 나라다. 바로 통일이다.
중국은 최근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중앙아시아의 조그만 영역과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건설하면서까지 영토를 넓히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노력은 세계 패권을 노리는 중국의 지정학적 계산 때문이다.
여기서 전망해보는 세계 4대 파워, 미국·중국·인도·EU 등은 당분간은 지정학적인 변경이 없다. 그러나 통일을 내다보고 있는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통일만 되면 지정학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온다. 폭발적인 국가성장이 가능해진다. 미래 10년과 21세기를 위해 한국이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할지가 분명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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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미래는 아직 어둡지 않다.
미국의 지정학을 보려면 영연방을 먼저 살펴야 한다. 대서양은 예나 다름없이 미국과 영국의 바다다. 미국을 싫어하는 이들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떠올리고 싶겠지만 영국은 아직도 미국의 친정이다.
캐나다는 대서양을 이어 북극 바다까지 조용히 지키는 WASP(White Anglo Sexon Protestant)의 사촌이다. 두 나라 말고 태평양은 또 누가 있을까. 호주와 뉴질랜드가 있다. 그들은 태평양만 아니라 말라카 해협을 비롯한 동남아의 바다 그리고 인도양과 남극 바다에 이르기까지 가장 넓은 바다 한가운데 자리 잡은 또 다른 영국이다.
19세기와 20세기를 보자. 세계사와 세계지도는 몸살을 앓았지만 앞서 말한 다섯 꼭지는 달라짐이 없다. 영국의 해가 지니까 미국의 해가 떠오르며 그 인연은 더욱 튼튼해졌다. 그를 웅변함이 6.25전쟁이다.
미국과 함께 영연방 나라들은 더운 피를 뿌리며 자신들이야말로 혈맹임을 드러냈다. 이들과 운명을 같이 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매우 짧은 한때에 이 혈맹과 맞선 적이 있었지만 그 뒤로는 그 품에 푹 안겼다. 앞으로도 일본은 <황인종 WASP>로 살 것이다.
21세기에 이 혈맹은 어찌 될까.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 없다. 다에쉬(Daesh=IS) 같은 조연들 덕에 더욱 그러하다. 20세기 전반과 후반에 독일과 소련이 이 혈맹의 한가운데에 덤비다 제풀에 스러졌다. 9.11은 무슬림이 그 뒤를 잇겠다는 선언이다. 골목대장 탈레반이 아닌 알카에다가 그 선언문을 읽은 지 고작 10년이 지나 다에쉬(IS)가 히틀러-스탈린을 이은 악마로 스스로 나서고 있다. 이들의 행패는 혈맹을 더욱 두텁게 만들어줄 뿐이다.
미국의 실력을 보자. 위기론은 때마다 있었다. 잊을 만하면 나타난 것이 ‘스푸트니크 쇼크’였다. 그 덕에 인터넷 시대의 MS에 이어 모바일 시대의 구글이 표준을 틀어쥐고 있다. 이제 미국은 홀로그램 시대와 인공지능-로봇 시대 그리고 나노-바이오 시대와 우주시대의 문을 가장 앞장서 거침없이 열어젖히고 있다. 그때마다 중국은 매우 훌륭하게 스푸트니크 쇼크를 때맞춰 연출할 것이다.
지지난 해 한미동맹 한갑자 - 60주년은 남다른 감동 없이 그저 지나갔다. 한국이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말 말고는 달리 쓸 말이 없다. 한국은 통일을 하자면서 이제야 TPP 막차를, 그도 무임승차 하려 한다.
북경에서 제 2의 황준헌이 나타나 다시 손에 조선책략을 쥐어주어야 이 우물안 개구리 버릇을 고칠 수 있을 것인가. 통일은 코리아 스스로 우물안 개구리 버릇을 고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지정학의 축복이다. 그러나 그 버릇을 못 고치면 자칫 재주만 부리다 곰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을 고를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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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IS를 넘어 남반구로 나아가라.
보기 좋은 떡이 꼭 먹기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난 몇 해 동안 유럽의 말뚝인 세 나라 즉,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그리고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톨레랑스’의 파산을 공식 선언했다. (다문화란 얼토당토않고 천박한 말이 한국의 수준을 상징한다.)
피의 금요일에 때맞춘 다에쉬(IS)의 테러는 그나마 남은 ‘셍겐조약’마저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이제 EU의 환상은 사라졌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매카시의 도움으로 얼뜨기들을 집으로 보내고 리버럴이 미국식 좌파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두 차례 전쟁으로 멍해진 유럽의 우파들은 식민지의 잇달은 독립의 손익계산서를 쓰느라 바빴다. 그들이 손을 놓은 사이에 유럽의 좌파들은 유럽이라는 울타리 안의 골목 상권이라도 지키자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 실험은 냉전 시대에 유럽의 체질을 스스로 고립주의로 기울도록 만들었고 탈냉전에 이르러 인류의 미래로 칭송을 받는 즐거움에 앞날을 내다보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렇다면 유럽의 미래는 없는가. 있다. 북반구 말고 남반구로 나아가라. 식민지 경영이 아니라 페니키아 사람들처럼 그들과 서로 도움이 되는 단골이 되어라. 어차피 ‘WASP’ 홀로 이 지구마을을 속속들이 감당할 수는 없다. 아프리카와 인디아와 남미는 미-중 두 나라만 놀기에는 너무나도 넓다. 그러려면 유럽 스스로 제국을 다스렸던 그 지정학의 안목은 이어가되 식민지로 땅 짚고 헤엄쳤던 ‘오래 된 유산’에 대한 탐닉은 아예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아프리카는 통째로 희망봉이 될 것이다. 유럽이 앉아서 장사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베리아 반도야말로 남미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관광에만 매달리면 스스로 빛바랜 과거가 될 뿐이다. 인디아는 아트만(atman)의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될 것이다. 오늘의 인디아보다 지나간 인디아를 더욱 눈여겨 볼 일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남반구는 굳이 유럽을 기다려줄 까닭이 없다.
어려움은 언제나 겹쳐서 온다. 상선과 군함으로 뒤덮였던 유럽의 바다는 보트피플로 늘 아수라장이다. EU의 틀에선 답이 전혀 없다. 먼 옛날 몇몇 나라들이 식민지들의 경계를 담합했듯이, 또는 이스라엘의 자리를 놓고 머리를 싸매었듯이, 톨레랑스의 파산을 선언한 그 나라들이 이제는 다에쉬(IS)의 장래를 놓고 정면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 나서기를 바라겠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만큼 유럽은 더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도리어 유럽이 매서운 결단을 일찍 내릴수록 남반구로 나아가는 단단한 발판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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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한당(漢唐)을 잊고 송(宋)이 되어라.
21세기가 차이나의 세기가 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스무 고개를 넘어야 한다. 먼저 소강사회(小康社會)를 이룸이다. 6천만과 6억의 생활수준은 아직도 하늘과 땅만큼 멀다.
다음은 자유로운 차이나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란 말로 언제까지 얼버무리고 갈 수 있겠는가.
끝으로 문명의 표준이다. 이는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여 될 일이 아니다. 쌓이고 쌓여 넘쳐나야 비로소 새로운 우주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쉽지 않다. 차이나는 지구마을의 공장이었고 이제 시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소강사회로 가는 길은 멀다. 내수로 풀어야 하는데 그는 곧 자유시장경제가 꽃핌을 뜻한다. 이는 부정부패와 함께 규제와 간섭이 사라져야 가능하다. 모두 다 손아귀에서 놓기 어려운 꿀단지들이다.
더하여 자유로운 차이나는 ‘일당 통치’와는 어울리지 않으며 문명의 표준 또한 ‘국사수정공정’ 식의 역사전쟁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차이나는 작은 것이 막히면 이를 뚫는 게 아니라 더 큰 것으로 덮어씌우고 있다. 그 또한 막히면 아예 콘크리트로 발라버리듯 덩치만 자꾸 키워왔다. 마침내 사회주의라는 이름과 가장 어울릴 수가 없는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침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해 뜨는 곳으로는 ‘신형대국관계’를 말하며 태평양을 나누자고 하고 해 지는 쪽으로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열어 유라시아의 땅과 인도양과 아프리카에 이르는 바다에 차이나루트(China Route)를 새기겠다 한다.
차이나다운게 무엇일까. 강한성당(强漢盛唐)일까. 아니다. 그는 송宋나라에서 찾아야 한다. 한당(韓漢)관계 2천년을 보라. 한미동맹과는 겨룰 수 없는 고려와 몽골의 동맹을 짓부순 것은 군대가 아니라 주자학이라는 새로운 문명이었다.
아직도 수많은 한국인들을 세뇌시키는 삼국지는 송나라의 작품이다. 북경 중남해의 공산당 지도부들의 자식들이 죄다 미국 유학을 가있듯 코리안에게도 가서 살고 싶은 매력이 넘쳤던 나라가 송나라다. 송나라는 오늘 코리안들의 밑바닥에 도사린 차이나의 브랜드로 천년을 넘어 살아있는 것이다.
게다가 오늘 차이나는 그때 송나라처럼 약하지도 않다. 거꾸로 요나라나 금나라보다 원나라만큼 힘센 나라가 되어있다. 그럼에도 강한성당(强漢盛唐)을 이야기하고 바다 한가운데 없던 활주로나 만들고 있으니 보기에 딱할 뿐이다.
두 번째 우주정거장 ‘천궁2호’를 쏘아올리고 IMF SDR에 위안화가 들어갔다고 티벳과 위구르와 타이완과 몽골과 베트남이 차이나를 매력이 넘치는 나라, 살고 싶은 나라로 생각하겠는가.
한족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패도’와 ‘왕도’를 고를 수 있는 힘과 패를 가졌다. 부디 용기를 가지시라. 무엇을 고르는가에 따라 21세기가 차이나의 세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그리 두려워하는 일치일란(一治一亂)의 세기가 될지 가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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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는 대륙에 버금 갈 만큼 넓다 하여 아대륙(亞大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인디아는 영국의 작품이다. 다시 말해 영국의 침략으로 오늘의 인디아가 태어난 것이다. 그때까지 인디아에는 데칸고원을 위아래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나라들이 피고 지었다.
코리아는 인디아를 지나치게 모른다. 먼저 마하바라따와 라마야나가 있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보다 여덟 배 더 긴 이 서사문학은 고대신화의 세계를 모은 박물관이다. 오늘도 영화 아바타를 비롯한 온갖 문학예술-대중문화의 마르지 않는 샘이다.
다음으로 힌두에서 자이나와 불교에 이르는 ‘깨달음의 종교’들이다. 유일신앙 문명의 충돌로 피곤한 인류에게 인디아는 마음의 쉼터다.
그럼에도 인디아는 갈 길이 참으로 멀다. 가즈니부터 자그만치 5백여 년 제노사이드의 비극을 겪었으며 오늘날에도 무슬림과의 심각한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또 아직도 케케묵은 카스트에 그대로 얽매여 있다. 다시 말해 힌두나 무슬림이나 똑같이 몸은 21세기지만 그 사상은 업그레이드 되지 않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비록 한 나라이지만 그 안은 수천 년 그래왔듯이 모두 따로따로다. 그래서 카스트도 한때는 말이 되었겠지만 더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함께 갈 수 없다.
아니 미래에도 카스트가 있어야 한다면 인디아에게 미래는 없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부디 그 길을 열기를 바란다. 카스트가 사라져도 ?tman이 꽃필 수 있음을 보여줄 때 인디아는 환상이 아니라 미래문명으로 거듭 날 것이다.
미래문명은 정신문명이다. 인공지능과 유전자혁명 그리고 무한에너지의 시대가 열리면 사람은 참말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노동의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그 시대를 누가 이끌 것인가. 미국일까 유럽일까 아니면 차이나일까. 모두 아니다.
아직은 초라하지만 인디아가 깨어나면 ‘바다의 길’은 새로운 천년문명의 요람이 될 것이다. 인류의 고향임에도 역사시대에 처음 올라서는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와 유일신앙의 텃밭인 중동지역- 아랍과 페르시아를 거쳐 인디아와 북방 초원지대만큼 뿌리 깊은 역사문화를 자랑하는 아세안까지 인도양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둘러서 있다.
통일대한민국은 이 인도양 권역의 업그레이드를 도와야 할 것이다. 이들의 ?tman으로 홍익인간이 꽃필 수 있도록 함께 함이 곧 ‘바다의 길’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업보(Karma)를 씻어내게 될 것이다. 쉽지 않다. 하지만 인류의 미래를 바라는 투자다. 그 글로벌 컨소시엄의 도우미로 통일대한민국이 나서기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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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대한민국에만 주어진 지정학의 축복
저물어가는 올해는 해방 70돌이자 분단 70돌이기도 하다. 일제시대가 코리안들을 죠센징(반도인)으로 세뇌시켰다면 분단은 한 발 더 나아가 코리안들을 섬 사람들로 만들었다.
반만년 역사에서 오늘처럼 코리안들이 우물안개구리가 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눈뜬 봉사처럼 눈앞에 다가온 미래조차 보지 못하고 심지어 두려워하고 있다.
대한민국 말고 이웃나라 사람들의 눈으로 봐라. 김정은 반역도당은 이제 언제 무너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에 이르렀다. 학문이랄 수도 없는 쓰레기 이론이자 스톡홀름 증후군보다 더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내재적 접근론’에 그만큼 코리안들이 오래 중독되어온 탓이라 본다. 두려움은 두 가지다. 하나는 깨어질까 두려운 ‘평온한 일상’이다. 이 또한 1997년 환란 뒤로 사라진 망상이다. 서민들일수록 거꾸로 판이 크게 흔들려야 없던 사다리도 생기는 법이다.
또 하나는 외세의 개입이다. 참으로 어리석다. 이승만 대통령을 보라. 나라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국력에 6.25의 불구덩이에 떨어졌음에도 미국의 조야를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달래며 나라를 지켜내었다.
오늘 우리의 힘과 발언권을 어찌 그때와 겨룰 수 있나.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곧장 압록강과 두만강에 해병대를 보낼 일이다. 부드러운 한마디와 함께. “전략적 동반자관계인 친애하는 이웃나라에 폐를 끼칠 수 없다.” 앞으로 그 누구든 참으로 그리 무섭고 늘 6자회담만 읊조릴 참이라면 외람되이 나랏일에 나설 일이 아니다. 자칫 사팔뜨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통일은 축복이다. 지구마을 그 어느 힘센 나라인들 지도가 바뀔 곳이 어디가 있나. 이제까지 우리는 분단에 시름시름 앓았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에게는 지정학의 축복만이 남아있다.
그 순간 코리안은 섬 사람을 벗어나서, 죠센징을 벗어나서 말 그대로 지구마을 사람이 된다. 아시아-태평양에 왼발을 담그고 유라시아에 오른발을 딛고선 ‘큰사람’을 보라. 두한족열(頭寒足熱)이라고 북극을 베개 삼고 남극을 내다보니 사라진 황룡사 9층 목탑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조선이 들어서자마자 한 짓이 아랍 사람까지 북적거리던 벽란도 국제시장을 문 닫은 것이다. 그때부터 자그만치 6백여 년. 바다는커녕 만주로도 돈 벌러 못 나가고(비즈니스맨의 이름은 장사치 또는 시정잡배였다.) 오로지 반도인으로 사대부들을 모시고 살아야 했던 우물안개구리. 그 버릇이 남아 아직도 정주영-이병철을 따르지 않고 그저 공무원이 될 꾀만 부리는 애늙은이만 넘치는 나라. 그래서 통일대한민국은 젊은이들의 놀이터다. 마음껏 꿈을 펼쳐라. 홍익인간의 천년문명. 그대들이 그 주인공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