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억씨(사진 오른쪽)와 고월숙씨 부부가 서울시 영등포구 구립영등포노인복지관에서 운영 중인 시니어행복발전센터를 찾아 제2의 인생을 위해 카메라를 배우고 있다. |
이씨 부부가 복지관을 찾은 것은 정년 퇴직 후의 삶에 대한 설계를 좀더 구체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직 현직에 만큼 100세 시대를 앞둔 상황을 직접 느끼지 못하면서도 서로에게 말 못하는 제2의 인생에 대한 속내를 밝혔다.
서울대에서 30여년간 국제교류업무를 맡고 있는 이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휴직을 했는데 부인의 간병으로 몸이 많이 호전돼 그동안 관심이 있었던 카메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복지관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옛날에 구입한 카메라가 있는데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휴직을 하기 전 제2의 인생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아픈 몸을 추스르고 나니 정년퇴직 이후의 삶이 걱정이 되더라. 일을 그만두게 되면 소일거리로 사진을 찍고 다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말에 아내 고씨도 공감하는 눈치였지만, 이씨의 속내는 금방 들통났다.
이씨는 “정년 퇴직 이후 취미생활도 좋지만 생산적인 일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직 아내한테 한 얘기는 아닌데…”라고 운을 뗀 뒤 “일본식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그동안 자신이 계획한 제2의 인생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일본에는 좌석이 10개 정도 밖에 안되는 선술집 이자카야가 있다. 저녁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와서 얘기를 나눈는데 보기 좋더라”며 “아내의 동의가 전제돼야 하지만…”이라며 아내를 처다봤다.
이씨는 “매출에 연연하지 않고 손해만 보지 않는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나”라고 덧 붙였다.
이씨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아내 고씨는 당황스러워하면서 “아직 제2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치료가 우선 아니겠나”라고 말을 돌렸다.
하지만 이씨가 “아프면서 요리프로그램을 많이 봤고, 레시피를 보고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만드는 방법은 비밀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웃음)”며 “카메라를 배우는 것은 요리를 만들어 멋있는 사진으로 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고씨도 숨겼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고씨는 “내가 간호사 출신이다. 최근 노인복지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르신을 위한 장기요양보호시설을 운영하고 싶다. 또 내 힘이 닿는데까지 간호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음식점 계획이 반대에 부딪치자 “내가 딸 2명이 있는데, 제2의 인생으로 음식점을 개업할 지 여부는 자식에게 물어보는게 좋을 듯 싶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상억 씨는 퇴직 이후 부인과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그러면서도 부부는 자식들이 결혼하고 나면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노후를 위해 쓰겠다는데는 동의했다.
이씨는 “먼저 퇴직한 선배들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자식들 사업을 도와주느라고 재산을 처분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라며 “부모로서 자식을 대학교까지 공부시켜주면 되지, 재산을 물려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씨도 “자식을 나와 별개로 봐야지 나의 일부로 보면 자식한테도, 나 한테도 안 좋다. 결혼할 때 전세금 등을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겠지만 더는 안 된다”고 동조했다.
이씨 부부는 100대시대를 앞둔 현실에 대해 “농사를 짖는 시골분들은 초고령사회가 되더라도 힘 닿는데까지 농사를 하면 돼 별 문제가 안 되지만 도시에 살았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이어 “퇴직을 앞두긴 했지만 그래도 젊다보니 제2의 인생에 대해 소홀한 면이 있었는데, 아내와 상의해 봐야 겠지만 시골 다방과 같은 형태의 일본식 선술집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